1. 그들은 책임을 공유하지 않는다.
순간 인사팀장이 나지막이 ‘누가 되지 않도록….’ 되뇌는 것을 보았다. 202X년 2월 인사팀 회식 자리였다.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 인사팀 발령이 한 달 정도 지난 늦은 환영식이 있었다. 나를 제외한 서너 명의 발령자들의 재치 있는 포부와 함께 박수와 웃음이 이어졌지만, 나의 소극적인 소감에 회식 장소였던 족발집에는 숙연함까지 느껴졌다. 입사 후 줄곧 기획 근처에서 보고서, 계획서, 분석 등 업무만 하다 경험도 역량도 없는 인사처 발령은 무척 당황스러웠다. 인사업무는 관심도 적성도 없다고 생각했고, 사실 조직이란 게 경력관리ㆍ적성고려ㆍ적재적소가 기본 아닌가? 도저히 눈에 들어오지 않는 법률, 시행규칙, 조례, 사규, 내규, 부록 등으로 미칠 것 같은 한 달이 지난 시점 다짐했다. “그래 구멍만 되지 말자.” 그런데 스스로 구멍임을 증명하는데 얼마 걸지 않았다.
그해 여름에 대형 사고를 친 것이다. 담당업무는 임원임용이었는데, 이는 상급기관, 사장 포함 임원들, 높은 간부들의 관심으로, 항상 철저한 보안과 절차가 생명이었다. 공고절차, 지원자격과 심사, 위원회 구성과 운영 등 나에게는 정말로 어려운 프로세스를 하루하루 해나가고 있었다. 그러다 A 지원자의 자격 여부가 쟁점이 된 일이 있었다. 당시 나의 최선은 (지금은 부끄럽지만) 나보다 다양한 지식과 많은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이었다. 나도 나름 철저했기에 네 명에게 비공식적으로 자문했다. 첫 번째 전임자, 두 번째 상급기관 담당자, 세 번째 감사실, 네 번째 타기관 담당자. 다행히 답은 너무나 명확했다. 자격 여부에 대해 모두 ‘별도 심의 필요’라는 공통의견을 주었다. 재차 확인하는 팀장님을 안심시키고 스스로 촘촘한 업무태도를 대견해하며 일을 진행 시켰다. 그렇게 ‘별도 심의’ 기간을 고려하여 위원회가 다음 달 확정된 주말이었다. 부모님 집에서 점심 식사 중, 불길한 전화가 왔다. 팀장님이었다.
“○대리 주말에 미안한데, 2년 전 비슷한 경력의 B는 별도 심의 없었는데, 이번에는 왜 하는 거지?” /
“○과장님, ○주무관, ○차장님, ○팀장님이 하는 게 맞다는 데요…. 다시 알아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다른 사람한테 들은 거 말고, ○대리 생각은 뭐야?, 뭐가 맞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잘 아는’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 선배도 다시 생각해보더니 하는 말, ‘아닐 수도 있겠는데….’라고 듣는 순간 체할 것 같고, 식은땀은 줄줄 흘렀다. 뭐라도 해야 했기에 걱정하는 부모님을 뒤로하고 택시를 타고 사무실로 갔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일정은 사장님은 물론 외부 위원들에게 이미 통보된 상태로, 높으신 위원에게 긴급한 일정변경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무엇보다 지금 뭐가 맞는지 확인할 수단이 없었다.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가? 나는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확인했지 않은가? 아니다. 내가 판단해야 한다. 아니, 했었어야 했다. 그것도 일주일 전에.
월요일 아침 팀장님은 나에게 어떠한 감정도 섞이지 않은 목소리로 시청에 다녀오라고 했다. 가서 정확한 절차를 확인받고, 결과에 따라 수습하라고 했다. 시청에 다녀왔다. ‘문의와 답변에 대한 상호 오해’라는 궁색한 수식과 함께 반대의 절차였음을 확인하였다. 그날 오후 내내 내가 한 일은 위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연신 죄송하다는 사과하는 것뿐이었다. 외부 위원 7명의 스케줄을 다시 잡고 나니 입안이 마르고, 현기증이 났다. 며칠 뒤 위원회가 열리고 위원들의 회의 시작 전 갑작스러운 일정 변경에 대한 불만 섞인 발언으로 회의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회의록에 나의 실수는 공식적으로 기록되었다. 아마추어.
임용은 순조롭게 완료되었으나, 그 후 며칠은 기본적인 업무를 실수했다는 자책감과 부끄러움에 고개도 못 들고 다녔고, 복도에서 만난 선배들의 짓궂은 한마디에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팀장님이 내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내가 또 뭐 잘 못 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가 수십 번을 물었던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했던 사람들, 틀린 절차를 친절하고 세세하게 설명해 주던 사람들은 나와 부끄러움과 책임을 공유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맞지 않았던 낯선 업무와 타인들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내가 왜 여기서 이런 꼴을…….’
그러면서 배신감과 자책감에 내 마음을 들어줄 사람을 찾아다녔다. 이해받고, 동정받고 싶었다. 술자리에서, 나는 입으로 내 억울함과 부당함을 배설했고, 그들의 인내심은 항상 10분을 넘기지 못했다. 나는 조직에서 동료였지만 책임을 나눌 정도는 아녔다. 나는 조직에서 후배였지만 공감해 줄 정도는 아녔다. 나는 조직에서 선배였지만 같이 고민할 정도는 아니었다.
사실 이번 실수는 표면으로 드러난 단편적 에피소드일 뿐이고, 근본적으로는 이 부서에서 나란 존재의 이질감을 느끼고 있던 것이 가장 컸다. 나 빼고 다 친한 관계, 경직된 분위기, 딱딱한 위계질서 등 전혀 어울릴 수 없었다. 그래서 ‘1년만 어떻게 버텨보자, 여기서 나갈 기회가 올 것이다.’ 하며 스스로 이방인으로 생각하고 생활하고 있던 것이다. 그렇게 반성의 시간은 한 달쯤 이어졌다. 불같이 화내던 팀장님, 후배와 동기 앞에서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나의 모습을 잊었다고 느낄 때쯤 피드백에 대한 강력한 갈증이 미친 듯이 몰려왔다.
이번은 이렇게 지나갔지만, 다른 쟁점이 생기면 나는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또 주변인들의 검증되지 않은 의견을 듣고 일 처리 할 것인가? 다시는 이런 상황 속에서 인건비 아까운 직원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이곳은 잘하는 직원이 필요한 것이 아닌, 정해진 일을 문제없이 해내는 직원이 필요한 조직이다. 그리고 또다시 하소연할 대상을 찾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람이 아닌, ‘새 문서.hwp’이었다.
그저 새 한글 파일을 하나 열어놓고 멍하게 속마음을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내가 원했던 부서도 아니고, 적성도 맞지 않은 곳에 왜 나를 앉혀놓고 괴롭히는 건가?’ 그렇게 나의 유치한 푸념을 다 받아주는 ‘빈 페이지’에 매일의 감정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파일명은 그날의 날짜로 하였고, 빈 폴더에 차곡차곡 감정의 기록들이 누적되어 갔다. 한 달쯤 지났을까? 파일이 늘어남에 따라 나와, 나의 걱정이 분리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저장된 파일을 순서대로 열면 ‘감정의 흐름’이 보였다. 며칠 전 고민은 일어나지 않고,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게 사라져 버린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복잡한 생각들이 손과 키보드를 통해 백지에 옮겨지면서 정신은 점차 맑아졌다.
시간이 좀 더 지나자 감정의 ‘원인’을 찾아 적기 시작했다. 왜 힘든지, 왜 바쁜지, 왜 불안한지, 왜 짜증이 나는지 등 기록은 좀 더 구체적인 형태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이러한 과정이 재미있게 느껴졌고, 지난 시간이 흩어져 사라지는 게 아니라 게임 세이브 파일 같이 저장되고 있었다. 언제든지 되돌아가 그 당시를 느낄 수 있었고, 당시의 다짐과 개선의 의지를 확인하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곤 했다.
어느 날 ‘그럼 이 습관을 업무에 적용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비정형적 감정과 생각도 글로 쓰면서 자연스럽게 정제되고 정리되는데 일정, 절차, 규정, 문서를 이렇게 매일 기록하고 매일 확인하면 회사생활에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인사업무가 적성에는 맞지 않는다 해도 90%가 선형적 프로세스 형태이고, 올해 일, 내년에도 하는 반복적 업무였다. 그 뜻은 올해 시행착오는 내년 개선의 자료가 되며, 시행착오와 개선의 기록은 내 업무 최고의 DB가 되리라 생각했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