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의 유일한 목격자
반성과 참회의 시간이 지나고, 매일 그날의 생각과 감정, 기억해야 할 만한 것들을 모조리 기록했다. 별도의 폴더를 만들어 ‘Daily Recording’이란 이름도 붙여 줬다. 사적인 감정을 포함하고 있기에 암호로 보안을 유지했다. 한 달에 20여 개의 파일이 만들어졌고, 시간이 갈수록 자기연민과 징징거림보다 업무의 과정, 결과, 문제점과 내년 개선사항 등 생존에 필요한 것의 비중이 커졌다. 파일이 쌓이면서 애매한 일이 있을 때마다 열어보는 업무의 데이터베이스가 되어 가고 있었다. 꾸준히 ‘기록의 습관’은 나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지적자산이 되었다. 나의 기록은 아래와 같은 도움이 되었다.
사실 인사업무를 하면서 항상 불안했다. 일상적인 업무도 서너 번의 확인을 반드시 거치고, 미심쩍은 일은 사내 변호사 의견, 법률자문 등을 반드시 받아 놓았다. 업무 자체가 항상 감사의 대상이었기에 평소 잘하고도 감사 시즌마다 긴장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특히 경험상 ‘업무추진 근거, 누구 지시였나에 대답을 못 하면 최초 기안자에게 높은 비중의 책임을 묻는 경우를 많이 봤기에, 모든 업무의 원인에 대해 집중적으로 기록했다. 아무리 흥분해서 두서없는 긴급한 구두지시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업무의 시작‘이 어디인지를 확인하고 명시했다. 문서 없이 진행되는 업무지시는 조사하나 빼놓지 않고 기록했으며, 업무 배경(당시 정황), 지시자의 뉘앙스, 표정 등 문서로는 절대 알 수 없는 context까지 담아내려 노력했다.
가장 난감한 상황이 정책적 판단에 따라 업무를 진행할 경우이다. 지시했던 사람이 바뀌고, 다른 입장의 논리와 판단의 기준을 들이대면,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린‘ 꼼짝없이 부당한 업무가 되는 경우가 많다. ‘저는 시킨 대로 일한 것밖에 없습니다.’라는 말은 절대 통하지 않는다. 과거에 함께 일했던 상급자와 동료가 감사에서 ’기억나지 않아요. ‘하는 순간, 서운함보다는 당시 회의 기록과 자료를 찾아 비겁한 망각을 올바르게 잡아줘야 한다. 따라서 왜 했는지, 누가 어떤 경위로 지시했는지, 당시 나의 입장은 무엇이었는지 반드시 기록해야 한다. 믿을 것은 나와 내 손이 기록한 자료뿐이다.
그렇게 서너 번의 굵직한 감사를 무리 없이 받았다. 나의 기록이 공식자료는 아니지만, 업무의 시작과 끝, 후속 조치까지 작성되어 당시 상황을 이해하기엔 충분했고, 관련 자료도 쉽게 찾아 빠르게 제출할 수 있었다. 감사가 무사히 끝날 때마다 ‘이젠 구멍은 아닌가 보다’ 생각했다. 수시로 녹음할 수 없는 상황에서 ‘꼼꼼한 기록’은 최선의 방어이다. 그렇다. 역시 업무기록의 제1 기능은 ‘나’를 보호하는 것이다.
매년 반복되는 업무가 힘들겠나 싶지만, 어느 부분에서 문제가 생길지 정말 아무도 모른다. 게다가 정신없이 문제해결에 집중하고, 해결하면 바로 다른 절차가 진행되기에, 시간이 지나 서로 어렴풋한 기억에 의존하여 일하곤 했다. 따라서 업무가 끝나고 결과보고서가 만들어 지면, 다시 업무 시작 날의 기록으로 돌아가 관련 결과 파일을 ‘하이퍼 링크’ 기능으로 연결해 놓았다. 업무 시작과 끝이 한 화면에서 보이고, 당시 업무의 흐름과 관련 자료까지 한 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가 만들어졌다. 내 업무뿐 아니라, 동료의 일을 도와주었을 때도 작업 내용을 기록해서 그들이 일일이 문서를 찾아보는 수고를 여러 번 덜어 주었다.
어느 해인가 5월 신입사원 채용업무를 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필기 시험장 코로나19 방역 지침이 더욱 강화되어 체온측정기, 손소독제, 방호복, 별도 시험장 등 준비할 게 많아졌다. 당시 담당 선배는 전년에 누가, 어떻게, 어디에 물품을 비치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주저 없이 작년 필기시험 일자를 확인하고 시험 7~10일 전 기록을 순차적으로 열어보았다. 시험 D-4 시험장(학교) 측과 방역물품 종류와 위치를 협의하고, D-2 채용대행업체의 비용과 인력으로 세팅했던 사실을 확인했다. 시험 D-1 내가 직접 샘플 시험장을 검수했던 것까지 알 수 있었다. 선배는 이제야 기억이 난다면서 기억력이 좋은 후배, 인사업무 적성에 맞는 인재로 칭찬했고, 나는 도와준 사람에게 그런 말은 예의가 아니라고 했다.
이곳에서 일 년만 버텨보자 했던 게 3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늦가을 발령 철이 되고 슬슬 잔류/이동에 대한 부서장의 면담이 있었고, 슬쩍 붙잡는 팀장님에게, ‘다른 일 해 보고 싶습니다.’라는 훌륭한 대응으로 부서를 옮기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나를 대신할 후임자가 정해지고 며칠간 오가며 업무 인수인계가 있었다. 지금까지 정리해 놓은 보물 같은 기록을 모두 줄 수는 없었고, 그간 만든 매뉴얼과 대외용 기록을 보여 주었다. 후임자는 무척이나 놀라워했고, 뿌듯한 순간이었다.
후임자도 곧 3년 전 나와 같은 고난을 겪을 것이고, 나는 공개용 모든 자료를 그에게 남기고 그 자리를 떠났다. 부서를 옮긴 후에도 업무를 묻는 그의 전화는 여러 번 받았고, 나는 정리된 기록을 열어보며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가끔 점심도 같이했는데, 이렇게 기록을 잘 해놓고, 자료를 잘 정리해 놓은 사람은 처음이라고 했다. 겉으로는 웃으며 그저 ‘감사합니다’. 했지만, ‘정말 살아남으려 만든 자료입니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한번은 후임자가 점심 먹자고 연락이 왔다. 인사팀 후임과 셋이 먹는 점심에서 너무 정리를 잘 해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며칠 전 내 기록을 공유해서 보다가 팀원 전체가 궁금했다고 한다.
“근데 ○○대리님은 왜 업무정리 하시면서 그날의 ‘날씨’까지 기록하신 거예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야 그날을 좀 더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거든요. 더 보시면 ‘○○팀장님이 이상한 양복 입은 날’이란 표현도 있을 거예요. 그날 힘들었거든요.”
사무실이란 정글에서 우리는 누구를 믿고 사는가? 같이 있어도 외롭고, 회의에는 보통 답이 없다, 피상적인 관계에서 피아식별도 쉽지 않다. 무엇보다 시간은 항상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아 그때 왜 그랬지?” 하는 순간 흐르는 식은땀과 당황한 심장은 나를 과거로 보내 일을 바로잡지 못한다. 기록은 미래를 위한 자산이다.
나의 모든 기록을 넘겨주고 인사팀을 나올 때 생각했다. ‘내가 모은 것인데 공짜로 남 주기 너무 아깝다.’ 그런데 그냥 다 넘겨주었다. 나의 절실함과 태도가 중요하지, 단편적 지식이 저장된 파일이 뭐가 중요한가? 정말 제대로 된 직원이라면 내 기록을 보면서 본인의 것으로 활용하고 발전시킬 터. 어느 회사나, 기관마다 다 존재하는 인사업무의 노하우 자체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연락하는 인사팀 후배들에게 들어보니 아직도 내 자료가 유용하게 쓰인다고 한다. 놀라운 것이 내 매뉴얼과 기록의 양식이 유지되면서 매번 버전을 달리하여 개선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나의 ‘업무기록의 역사’는 발전이 아닌 생존의 기록이었다. 어찌 되었건 나는 적성에 안 맞는다고 징징거렸던 그때가 내가 아니고,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고, 지금도 생존해 직장생활하고 있다. 그거면 됐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