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같은 벽에 막혀 반건조된 내 친구들을 위하여
회사 옥상에 정원이 꾸며저 있다. 사실 예쁘지는 않다. 몇 해 전 자치구의 지원을 받아 콘크리트 바닥에 방수포를 깔고, 자갈과 모래를 쌓은 뒤, 흙을 덮었다. 3년 전 겨울에 진행된 옥상 정원화 공사를 지켜본 목격자로서 이런 곳에서도 식물이 자랄 수 있겠나 싶었으나, 4년 차 봄이 지나 여름을 맞는 지금, 밀림 같은 풀과 나무가 내 허리만큼 자라 있다.
가끔 생각나는 담배와 답답한 마음에 서너층의 계단을 걸어 그곳에 오르긴 하나, 회사 옥상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공간 전체의 흰색 금속 패널이 둘러쳐 있어, 사방이 막혀 있다는 것이다. 누가 왜 이런 설계를 했는지 불가사의다. 처음 보았을 때는 교도소 느낌에 적잖이 당황했다. 숨이 차도록 걸어 올라 두꺼운 철문을 여는 순간, 펼처진 것은 기대했던 개방된 공간이 아닌, 막힌 폐쇄적인 공간이었다. 나는 유리와 금속으로 된 '박스' 속에 살고 있다. 그래도 옥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뚜껑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같이 무엇인가 답답한 사람들은 각자의 한숨을 한 움큼 갖고 옥상에 하나둘 모인다. 우연히 모인 사람들, 인사도 하고 담소도 나눌지 싶지만, 그저 다들 옥상 벽에 붙어 서 있다. 비록 사방이 막혀 방향은 알 수 없지만, 어디가 대로변이고, 어디가 천변인지 모르지만, 무의식적으로 본능적으로 다들 각자의 벽을 향해 서 있다. 벽 넘어 있을 보이지 않은 풍경을 보고, 들리지 않은 바람 소리를 들으며, 각자 그 흰색 금속 패널을 바라보고 조용히 담배를 피운다.
그러다 비가 오는 날엔 내 옥상 친구들이 하나둘 나타난다. 눈 없는 지렁이, 발 없는 달팽이 친구들이 어디서 나오는지, 옥상 정원 흙을 지나, 담뱃재 섞인 누런 물 웅덩이를 지나, 서로를 인식하지 못한 채 여기저기 느리게, 아주 느리게 배회한다. 그러다 옥상을 둘러싼 벽에 막혀 기어오르지도, 돌아가지도 못하고 그 자리를 그저 맴돈다. 어디서 나와서 여기서 왜 모였는지 모르고 결국은 하늘 같은 벽에 막혔다.
비가 그치고, 다음날 말라버린 수많은 옥상 친구들을 내려다 보며, 담배를 피운다. 움직이 없고, 소리도 없다. 4월 건조한 햇볕에 반건조된 친구들의 마지막을 위로하며 길게 연기를 내뿜는다.
청소 아주머니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린다.
"아휴, 징그러워라 이렇게 많은 지렁이, 달팽이들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야?"
그러고는 거친 빗질로 친구들의 마지막 잔해를 쓸어 담아,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각자의 벽에서 담배를 피우는 우리들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