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돌담 아래 마른 풀처럼

2025년 11월 1일

by 리움

택시를 타고 어느 초등학교를 둘러싼 돌담 옆을 빠르게 지나고 있었다. 스치듯 지나가는 풍경 속, 돌담 아래, 아주 작은 틈새에, 마른 풀이 있었다.


문득이랄까, 순간이랄까, 찰나랄까, 눈에 들어왔다. 또 한 계절을 비워내고, 또 한 계절만큼 가벼워진 마른 풀이.


풍요의 계절, 곳간이 풍성해지는 계절. 지난한 겨울을 위해 두둑이 살을 찌우는 계절. 그랬다고 했다. 비축해 둔 살로 겨울을 버텨야 했던 때는.


나는 왜 살을 찌우나. 가득히 쌓인 곳간에 또 쌓으려 하나. 결국에는 썩어 버리게 될, 무언가를 또 쌓아두나.


허기짐 때문이다. 욕심에서 욕망에서 희망에서 체념에서 불안에서 외로움에서 그리움에서, 채우려 해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짐 때문이다.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을, 허기짐 때문이다.


사실은 차라리 비워냄이 맞다. 한 계절을 비워내, 한 계절만큼 가벼워진 마른 풀처럼. 한 계절을 온전히 태우고 초연히 말라버린 풀처럼. 차가워진 돌담과 굳어가는 흙과 함께, 또 한 계절을 비워낼 그 풀처럼.


사실은 허기짐을 비워내고 싶다. 헛헛함을 지워내고 싶다. 그럴 수 있을까?


나도 꼭 한 계절만큼만 비워내련다. 여름을 비우고 가을을 비우고, 겨울을 비워내, 비워진 그 자리를 보고 싶다. 비워진 그 자리에 마지막에 남아 있을 무언가를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