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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란 Nov 21. 2024

마흔하나, 이제야 나를 알게 됐다.

그렇구나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새벽 3시, 잠이 깼다. 더 자려고 노력해 봤지만 아이들과 남편의 숨소리만 더 선명해질 뿐. 일어나서 거실로 나와 노트북을 켜고 글을 써본다.


요즘 신기한 경험을 많이 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나이 마흔에 이제야 내가 나에 대해 알게 됐다는 점이다. 처음 그런 감정이 들었을 때는 낯설었다.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내 모습들을 발견하니 누군가에게 나를 들킨 것 같았다. 어떨 때는 나를 이해할 수 있게 되니 종교도 없으면서 영혼이 충만해지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들기도 했다. 어떻게 모르고 살았지? 내가 나를? 


나름 열심히 살았다. 삼십 대의 나는 외부의 다른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러느라 나를 이해해 보려는 시간은 갖지 못했던 게 아닌가 싶어 서글퍼지기도 했다. 나를 발견한다는 것은 낯설고 기쁘고 새롭고 신기하고 슬프고 부끄럽기도 한 수많은 감정이 드는 경험이다. 


문학을 읽으면서 인간의 다양한 군상을 접하게 되니 내가 하는 말과 생각, 행동들을 등장인물과 비교해 보게 됐다. 그러면서 나와 비슷한 인물에게는 위로받고 나와 다른 인물은 이해해 보게 되는 시간을 많이 가졌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를 발견하게 된 것 같다. 


사실 어젯밤에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나를 묘사해 놓은 것 같은 글을 읽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이 나를 몰래 관찰하고 분석해 놓은 것 같았다. 웃기기도 하면서 다행이다 싶은 게 그래도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다는 것 아닌가. 처음 문학을 접했을 때는 인간은 참 다양하구나 정도였다. 그런데 요 며칠 읽은 책들, 조예가 깊은 소설가나 시인이 쓴 일기형식의 에세이와 산문집들을 읽으면서 내 행동과 감정들의 이유까지 들여다보게 됐다.


평소에도 '나는 누구이고 뭘 잘하고 앞으로 어떤 일을 더 하고 싶은가' 이런 고민은 정말 많이 한다. 그런 것들만 계속 적으면서 발전시켜 나가는 노트가 따로 있고 그 안에는 정말 내 얘기만 있다. 그런데 사실 그 노트는 나의 커리어나 내가 어떻게 보이면 좋겠는지와 같은 퍼스널 브랜딩적인 요소의 끄적임만 가득하다. 이렇게 내면 깊숙이 들여다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뿐만 아니라 보통의 많은 사람들이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예전에는 그런 감정을 그냥 쉽게 지나쳤던 것 같다. 사는 게 바쁘고 당장 오늘 하루 해야 할 일들을 처리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데 내 감정까지 하나하나 살펴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어쩌면 별 게 아닐지도 모른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보통의 우리의 삶이 이런 모습이 아닐까.


그러니 이 나이 먹고 이제라도 나라는 사람을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자 싶다. 요즘 내가 알게 된 내 모습들에는 자랑하고 싶은 모습도 있고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모습도 있다. 이건 내가 아닌데 싶은 부정하고 싶은 모습도 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그런 내 모습들을 인정하려 노력하고 있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그 자체로 온전히 받아들여 보기로 했다. 모두 수용했고 나는 날아갈 듯 가벼워졌어라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받아들이려 노력하면 할수록 나를 더 사랑하게 되는 건 확실한 것 같다. 물론 앞으로 또 어떤 낯선 모습의 나를 발견하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 현재의 내 모습들은 충분히 이해하고 보듬어 줄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했다. 셀프 위로가 진짜 효력이 있으려면 일단 나를 깊이 이해하는 게 선행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러면 힘들 때 타인의 위로를 기다리기보다는 스스로를 다독여 앞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을까. 결국 나에게 그 힘이 있어야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손도 내밀 수 있고 위로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를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도 몰랐다. 지금은 그걸 깨달았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설레게 한다. 이게 무슨 나이 마흔이 넘어 겪는 성장통인가 싶어 멋쩍기도 하지만 이 모습 또한 나라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렇게 죽을 때까지 계속 매일 조금씩 깨닫고 성장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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