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길가의 가로수에 연둣빛 새싹이 돋아난다.
어느새 봄 꽃들이 피어나고 녹음이 우거지는 모습을 무심히 바라보곤 했다.
"원래 그런 거였지, 뭐.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시골집에 내려온 후부터는 자연의 움직임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게 됐다.
지난주까지 폭설이 내렸고, 오늘도 한쪽 지역에서는 눈이 내리고 있지만,
얼어붙은 땅 아래에서는 봄이 진작부터 꿈틀거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나가 본 꽃밭에는 어느새 새싹들이 돋아나오고 있었다.
샤스타데이지, 소국, 달맞이꽃, 흰 등심붓꽃. 여린 새싹들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민다.
언제부터 준비하고 있었던 것일까. 궁금하면서도 신비롭기만 하다.
오늘 밤에는 영하로 기온이 떨어진다는데, 새싹들이 얼어 죽진 않을까 걱정스럽다.
이 걱정도 결국 인간적인 것이다. 얼어 죽는다 해도, 봄은 반드시 찾아올 테니까.
자연에서 배운다. 가만히 두어도 다가올 것은 기어이 오고, 가버릴 것은 어느새 지나가 있다.
내친김에 제라늄 삽목을 했다. 작년에도 그렇게 했었고, 뿌리가 내려 꽃 피우는 모습을 보며
조물주라도 된 듯 뿌듯했었다.
꽃밭의 꽃들은 야생마처럼 호방하게 키운다면, 화분에 키우는 화초들은 조심스럽다.
화초에 맞는 화분을 고르는 일도 주의를 요한다.
너무 크면 과습이 되고, 너무 작으면 화초가 자라나지 못한다.
화분에 화초가 맞춰지는 걸까, 아니면 화초에 화분을 맞추는 걸까.
초보 식집사인 나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분명한 건 둘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이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내가 속한 공간을 넓혀가야 한다.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정신적인 공간이다.
그래야 내가 더 크게 자랄 수 있다.
꽃샘추위가 찾아와 움츠러들었지만, 바야흐로 봄이다.
텃밭을 고르고 거름을 주어 채소를 경작할 준비를 해야 할 계절이다. 양평에서는 4월 중순쯤 채소 모종을 심을 수 있다.
손바닥만 한 텃밭이지만, 삶의 기쁨을 안겨주는 소중한 보물이 되었다. 올해는 방울토마토와 풋고추를 더 많이 심고, 옥수수도 추가해 볼 생각이다.
내 수고는 물만 주었을 뿐인데, 자연은 언제나 푸짐한 결실로 응답한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품어주는 어머니처럼, 넉넉하고 너그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