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집 살림을 한 지 4년 차다. 주말에는 시골집에 내려와 지내고, 주중에는 일을 위해 도심에서 생활한다.
이런 생활 속에서 종종 나는 인격이 두 개로 나눠지는 느낌을 받는다. 의도치 않게 다중인격을 지닌 인물이 된 것 같다.
시골집은 산책이 있고, 명상이 있고, 음악과 책이 가까이에 있다. 아침 새소리에 눈을 떠 느린 호흡 속에 천천히 하루를 시작한다. 항상 듣는 주파수에 라디오를 고정하고 익숙하거나 낯선 음악을 듣는다. 컨디션이 괜찮은 오전 시간에 가부좌를 틀고 고요히 명상에 들어간다. 틈틈이 텃밭일을 하고, 테라스에 앉아 책을 읽다 글을 쓰기도 한다. 시골이라는 공간과 본래의 나 자신이 차분히 동화되는 시간들이다.
반면 본가에서는 바쁜 일과 분주함이 언제든 나를 삼킬 듯 기다리고 있다. 택배박스가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수시로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업무를 체크한다. 저녁이 되어 지친 몸을 소파에 눕히면 손가락조차 움직이기 버겁다. 명상을 꾸준히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지만, 두어 번 하고 나면 어느새 잊힌다. 시골집에서 누리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닌데 실행하기 어렵다.
시골집과 본가의 경계에 이동하는 시간이 있다. 차에 몸을 싣는 순간, 또 다른 나로 전환 할 준비를 한다. 라디오 주파수가 다른 채널로 맞춰진 듯 다른 차원의 나로 변환되어 간다. 시골집에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텃밭과 꽃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와 있는 고양이가 나를 기다린다.
반면, 본가 집 앞에는 편의점 불빛이 밤을 꿋꿋이 지탱하고 있다. 도로에는 오토바이와 차들이 신호등 앞에 무심히 멈춰 서있다. 잠시 서서 대기하고 있지만, 곧 기어를 바꿔 다시 달려야 한다. 도심에서 살아가는 나 자신처럼 느껴진다.
사람은 본래 환경에 따라 변하는 존재인가. 시골과 본가에서 나는 분명 동일한 인간인데, 놓인 환경에 따라 행동과 감정이 바뀐다. 의지의 문제라고 하기엔 간단히 단정 지을 수 없는 복잡 미묘함이 있다.
시골집에 머무는 동안, 본가의 흔적은 하얗게 지워진다. 본가에 돌아오면, 시골집은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잊힌다. 이런 상황이 무척 자연스러워 새삼스럽게 놀라울 때가 종종 있다.
두 세계를 오가며 균형을 잡아 주는 마음의 축이 있다. 어쩌면 두 세계가 내 마음을 적절하게 균형 잡아주고 있는지 모른다.
온전히 나 자체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건 행운이다. 시골집에서 나도, 본가에서 나도 다른 모습이지만, 하나다. 둘 중 하나만이 나를 설명할 수 없고, 존재할 수도 없다. 두 집은 두 개의 삶이 아니라, 나를 보완해 주는 양쪽 날개다. 바람을 타고 유연하게 높이 날아오를 때 비로소 균형이 완성된다.
그런 의미에서 두 집 살림 경험은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고, 삶의 폭을 넓고 깊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언젠가 환경에 지배받지 않는 경지에 닿는 다면, 두 집 살림은 자연스레 제 몫을 다하고 막을 내리리라.
아직은 두 날개를 퍼덕이며, 푸른 하늘을 자유롭게 날고 있다. 평온하고 온전한 균형이 내 삶을 감싸 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