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잘 모릅니다

나이 듦과 함께 찾아온 변화

by 리케

주말 아침 7시30분.

알람도 맞춰놓지 않았는데, 눈이 떠지기도 전에 정신은 먼저 깨어 있다. 커피 향이 어렴풋이 아른거리고, 그날 해야 할 일들이 자동 재생처럼 머릿속을 돈다. 몸보다 머리가 먼저 깨어 있는 느낌이다.


늦잠이 젊음의 특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나이가 되었다. 일 없는 주말이라 느긋하게 늦잠을 자고 싶어도 일정한 시간이 되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다시 잠을 청하려 뒤척여 봐도 달아난 잠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서 육체만 변하는 게 아니었다. 나의 내면도 변하고 있었다. 그 변화들이 조금만 더 일찍 와주었더라면 인생이 지금보다 훨씬 수월했을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예전의 나는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겉모습에서 풍기는 인상으로 그 사람의 인격을 단정해버리곤 했다.

사람 한 명을 이해한다는 건 결국 시간이 필요한 일이고, 겉모습이 말해주는 건 생각보다 거의 없다는 걸 그땐 몰랐다.


그 왜곡은 오래 알고 지낸 사람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믿고 싶은 면만 보았고, 보고 싶지 않은 신호는 애써 모른 척했다. 나중에서야 "그때 이미 다 보였던 거구나" 하고 뒤늦게 자각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필터를 씌워,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에 대해서만 그랬을까.

우리는 많은 것들에 대해 '안다'고 쉽게 말하지만, 정말 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그때는 안다고 믿었는데, 어느 순간에 다다르면 틀렸었다는 걸 알게 되고, 그때의 깨달음조차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하곤 했다.


지금 내가 '안다'고 말하는 것, 그것은 과연 정말로 알고 있는 걸까. 아마 그래서 우리보다 먼저 이 길을 걸어간 이들, 성인이나 철학자들은 입을 모아 모른다고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소크라테스의 '무지의 지'가 어떤 뜻인지, 안개가 서서히 걷히듯 윤곽이 잡혀온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것.

이것은 사소해 보이지만, 그 지점에 오기까지 긴 시간과 많은 사유가 필요했다.


이제 예전처럼 쉽게 단정하지 않으려 애쓴다. 누군가를, 어떤 상황을, 심지어 나 자신까지도.

안다고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멈추고, 여러 번 점검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 신중함이 나이 듦이 주는 선물인지, 아니면 뒤늦은 최소한의 겸손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궁금하다.

앞으로 살아갈 시간 속에서 나는 또 어떤 변화를 겪게 될까. 어쩌면 그때의 나는 이렇게 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도 잘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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