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는 어떤가, 사이트 간격은, 환경은 프라이빗한가, 집으로부터 거리는, 평판은 어떤가.
오늘도 앱에서 다음에 방문할 캠핑장을 검색한다. 지역과 날짜를 설정하면 다양한 콘셉트의 캠핑장들이 주르륵 앞다퉈 올라온다. 가장 먼저 체크하는 것은 사이트 사이 간격이다. 옆 사이트가 가까우면 시끄럽고 사생활이 보호받지 못하는 느낌이 든다.
숲 속 분위기인지, 바다나 호수가 보이는 뷰인지도 꼭 확인한다. 간혹 화장실이 멀다는 리뷰가 보이는데, 뷰가 마음에 들면 화장실쯤은 멀어도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
잠자리나 화장실 등 편의시설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캠핑은 쳐다보지도 않던 내가 갑자기 이런 변화를 겪으니 그저 놀랍다. 일상 속 나는 대체로 깔끔한 걸 선호하고 불편한 것은 잘 견디지 못했다. 캠핑보다는 호텔이 더 맞았었고, 실제로 여행을 가면 시설 좋은 리조트나 호텔을 선호했다. 그런 내가, 화장실도 멀리 있고 딱딱한 바닥에서 잠을 자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할 만큼 캠핑에 빠져들 줄 몰랐다.
어느 순간부터, 이유를 의식하지도 못한 채 캠핑에 마음이 가기 시작했다. 계기도 없이 자연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설명이 잘 되지 않는다.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무작정 생겨난 취미라기보다는 숨어있던 어떤 기질이 발현된 것일지도 모른다.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행동은 생각보다 빨리 따라왔다. 텐트를 구매하고, 필요한 장비들을 물 흐르듯 순서대로 준비해 나갔다. 준비가 마무리될 무렵 캠핑장을 예약하고 날짜가 되자 그곳으로 차를 몰아 떠났다.
원룸 이삿짐과 맞먹는 많은 짐들을 차에 실었다. 캠핑을 하려면 생존에 필요한 필수품들이 많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여러 번 오르내리면서 무거운 짐을 옮기는 일은, 중간에 그냥 건너뛰고 싶은 힘든 과정이다.
캠핑은 장비빨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지만, 예상외로 어마어마하게 많은 경비가 지출되었다. 전기매트, 동계용 히터, 동계 침낭, 두꺼운 의류... 계절마다 필요한 장비가 늘어나고, 하나씩 장만할 때마다 통장은 가벼워진다. 이상하게 돈을 쓰면서도 기분은 마냥 즐거우니 캠핑에 단단히 빠진 게 분명하다.
캠핑장에 도착하여 텐트를 치고 장작불을 피운다.
진한 보랏빛으로 하늘이 물들기 시작하면 램프를 하나 둘 걸어준다. 준비해 온 식자재들을 이용하여 요리를 해 먹는다. 집처럼 양념을 완벽하게 할 수 없고, 부족한 도구들 때문에 대충 만들어 먹지만, 그 맛이 또 꿀맛이다.
장작불 위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어묵탕, 타닥타닥 불 타오르는 장작소리가 더해져 캄캄한 밤의 분위기는 한껏 고조된다.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면 텐트 안은 조용해진다. 얇은 텐트 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외부의 찬공기와 안쪽의 따스한 온기가 맞부딪힌다. 바람이 불 때마다 천이 살짝 흔들리고, 옆 텐트에서 조잘조잘 사이좋은 대화소리가 들려온다. 다음날 아침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 이른 밤부터 침낭 안에 핫팩을 넣고 전기장판 위에서 일찍 잠을 청한다.
캠핑장은 대부분 자연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텐트 주변만 램프 불빛에 몽글몽글 밝혀진다. 캠핑을 몇 번 다니고 나서야, 왜 캠핑에 빠지게 되었는지 어렴풋이 깨달았다. 내 안에는 방랑자의 DNA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어디든 텐트를 치면 그곳이 내 집이 되는,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방랑자의 삶을 동경했던 것 같다. 하룻밤을 지낸 후 텐트를 철수하면, 그곳은 더 이상 나와 아무 관련이 없는 일회성 삶의 무대가 된다. 그 점도 마음에 들었다. 현실에서 고정된 나의 위치와 버거운 책임들, 짐이 된 인간관계로부터 잠시나마 해방되는 기분이랄까.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sns나 다큐멘터리 어디쯤에서 숨어있는 욕망을 끌어내준 트리거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자극받은 욕망이 지시를 내렸고, 나는 착실히 그 명령을 수행해 온 셈이다.
캠핑을 다녀와 한참 짐을 정리하다 보면 '내가 왜 이 고생을 사서 하나'싶어 허탈함이 몰려온다. 세탁해야 할 침낭과 수건들, 다음 캠핑을 위해 다시 분류해야 할 잡동사니들... 휴식하러 갔다가 돌아와 또다시 노동의 절정을 찍는 기분이다. 하지만, 그 생각도 잠깐일 뿐, 어느새 다음 캠핑장을 기웃거리는 나를 발견한다.
자연 속에서 천천히 숨을 고르고, 그곳에서 먹고 잠을 자며 며칠을 지내다 보면, 깊은 평온함과 만족감이 내 안에 깊숙이 스며든다.
타고난 방랑자의 피가 내게 어떻게 흘러 들어왔는지 설명할 수 없으니, 이것도 운명이랄 수밖에 없다.
어차피 캠핑의 세계에 발을 들인 이상 이 삶을 충만하게 영위해 보고 싶다. 다음 캠핑은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일정을 넉넉히 잡아볼 예정이다. 어떤 시간이 펼쳐질지 기대와 설렘으로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캄캄한 밤하늘에 천천히 흘러가는 시린 구름 몇 조각과 총총 빛나는 별들, 그리고 이른 아침 새소리.
찬 기온 속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 한잔을 두 손에 가득 쥐면, 그 따스함이 심장까지 전해져 온다.
빨리 다시 맞이하고 싶은 순간들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언젠가 숨겨진 욕망이 툭 건드려지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어디선가 조용히 자연 속 캠핑장을 검색하고 있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