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가려고 옷을 주섬주섬 입는 순간, 안방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온 엄마가 봉투를 내밀었다.
"다 똑같이 넣었어"
두둑한 흰 봉투를 받아 들고 집에 와서 열어보니 예상보다 큰 액수가 들어 있었다. 친정 부모님께 용돈을 받았다. 엄마는 남동생들도 같은 액수라는 말을 강조하셨고, 잘 쓰겠노라고 감사하다고 대답했다. 갑자기 생긴 용돈에 신이 나서 어디에 쓸까 잠시 설레었다. 흰 봉투가 몰고 올 후폭풍은, 그때는 전혀 예상도 못한 채.
몇 달 뒤, 우연히 남동생에게는 몇 배를 더 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분은 좋지 않았지만, 나쁜 마음을 먹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당신들 돈을 본인들 마음대로 쓰는 건데, 참견할 바 못되고, 큰 용돈을 주셨으니 감사만 하기로 했다. 형제들과 비교하지 말고, 이 돈의 액수와 부모님을 연결 짓지 말자고.
그러나 사람 마음이 간사해서, 들판의 아지랑이처럼 머릿속에서 생각들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자식들에게 향하는 마음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사실이 명확하니까.
엄마의 말실수 끝에 내게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너는 확인하자마자 전화가 왔는데, ㅇㅇㅇ은 연락도 없더라. 000원이 작았나?'
'차라리 내가 모르게 해 주시지' 하는 원망과 함께 마음 한켠이 시큰거렸다. 표정을 숨기고 모르는 척 웃어넘기며 '이미 차별에 익숙해져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별'이라는 단어는 얼음물에 손을 푹 담가 빨래하는 것처럼, 차갑다 못해 신경이 곤두서도록 시리다. 나를 있게 해 준 소중한 부모님께 받는 차별은 아물지 않는 상처에 매번 알코올을 들이붓는 기분이다.
나는 장녀다. 어렸을 때부터 살림밑천이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여상을 보내려는 부모님께 맞서 인문계 고등학교에 갔다. 고집이 있어 내 멋대로 사느라, 결국은 살림 밑천도 못됐다. 하지만 유독 딸에게만 씌워진 무게는 늘 벅찼다. 이번 봉투 사건도 단지 한 번의 해프닝이라기보다, 오래된 사건들의 연장선처럼 느껴졌다.
한 번쯤 그런 상상도 해본다. 언젠가 몸이 쇠약해진 당신들이 나를 찾을 때, 나도 모르게 마음을 닫아버리게 되진 않을까, 하는.
같은 자식인데, 딸이라는 이유로 왜 서열을 두는 걸까. 어렸을 때는 먹는 것으로, 성인이 되어서는 노골적인 돈으로...
딸에게만 온갖 감정을 쏟아내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엔 언제나 딸보다 아들이다. 몇십 년 동안 이어진 기울어진 사랑에 만성이 되어, 서럽지만 어렸을 때만큼 충격적이진 않다. 이런 일이 반복될 때마다 조금씩 익숙해지지만, 당연해지는 것도 아니다. 자식이 여럿이면 마음이 더 가는 자식이 있을 수 있겠지만, 딸이기 때문에 받는 불합리함은 오랜 세월 동안 받아들이기 어렵다.
한 번쯤 직접 묻고 싶다. 딸이라는 이유로 자식을 차별하는 이유를.
짐작컨대, 당신들도 정확히 모를 것 같다. 무지와 전통이라는 관습 아래, 본인들도 자식에게 어떤 상처를 주고 있는지 모를 것이다. 내 부모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세대 전체에 깊게 스며들어 굳어진 콘크리트 같은 관습 때문일 것이다. 너무나 굳건해서, 설령 설명을 한다 해도 이해받지 못할 것이다.
때문에 굳이 따지지 않고, 나 혼자 조용히 용서하기로 한다. 아이러니하게, 이런 글을 쓰면서도 부모님이 어딘가 아프다고 하면 제일 먼저 친정집으로 뛰어갈 사람도 나일 것이다. 사랑의 크기가 작을 뿐, 나를 향한 부모님의 사랑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도 안다.
덜한 사랑은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고, 부모님께서 돌아가시는 날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 더 서글프다.
부모님께 이 마음을 들키지 않도록,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모르겠다.
오늘은 상처받은 마음을 따스하게 어루만지며, 나를 지키기 위해 나 자신을 조금만 안아주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