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10도 집에서
"뭔 개똥 같은 소리여?
전세는 다 알아서 하는 거예요"
흥분한 목소리로 다구치 더니 일방적으로 끊어버렸다.
한동안 멍하니 휴대폰을 들고 서 있었다.
그 뒤로도 수차례 통화를 시도해 봤지만 수화기 너머에선 신호음만 되풀이될 뿐이었다.
5도 2촌 시골집에 보일러가 갑자기 멈춰 섰다.
난방 전원은 나가있고, 02 붉은 글자만 깜박이고 있었다. 보증서가 딸린 설명서를 읽어보니
물 부족이라는데, 집수리 업자에게 전화를 했더니 자동급수라 물부족일리 없다고 했다.
업자는 기사에게, 기사는 다시 대리점에 책임을 넘겼다.
뺑이치는 기분이라 언짢았고, 영하 10도의 한기가 온몸으로 스며들며 싸늘한 외로움이 엄습해 왔다.
전세로 있는 시골집이라 집주인에게 연락을 했을 때, 과거 부동산 중개업을 했다는 그는 본인이 전문가라며, 집에 관한 기본 설비 수리는 집주인 책임이라는 내 상식을 '개똥 같은 소리'로 치부해 버렸다.
그는 보일러 교체까지도 세입자가 해야 한다고 생떼를 부렸다.
나는 세입자인 동시에 세를 내주고 있기도 하다. 그동안 세입자들에게 집수리를 해주거나 비용을 부담해 왔다. 순간 당황하며 혹시 놓친 부분이 있을까 싶어 검색을 하고, AI에게 묻고, 이 집을 소개해준
공인중개사에게까지 확인을 했다.
답은 모두 같았다.
"민법과 주택임대차 보호법에서 보일러는 주거의 필수 설비이므로, 정상 사용 중 고장이라면 법적으로 집주인이 수리할 의무가 있다"
이 확고한 사실을 문자로 남겼지만 집주인은 묵묵부답이었다. 비용을 부담할 의사가 전혀 없어 보였다.
영하 10 도를 오가는 한겨울에 당장 수리를 안 하면 동파 위험이 있었고, 더는 추위를 견딜 수가 없어 결국 내 비용으로 수리를 맡겼다.
수리 후, 집주인이 비용을 부담하지 않을 경우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찾아봤다.
몇 가지 선택지가 주어졌다.
집주인에게 내용증명을 통해 수리비를 요구하거나, 직접 수리 후 '비용상환 청구권'을 행사하라는 것이었다.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던 그 완고한 목소리를 떠올리니, 언감생심이었다. 계약 해지까지 가능하다는 조언도 있었지만, 실행 가능한 선택지는 아니었다.
법은 히말라야 꼭대기처럼 멀디 멀고, 바로 곁에 닥친 현실은 차갑기만 했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것일까.
결국 아쉬운 사람이 돈을 쓰고 고칠 수밖에 없었다.
허술하게 지어진 집이기 때문에 그 뒤로도 여러 차례 수리비용을 부담하며 지내고 있다.
설사 전문가일지라도, 살아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집 하자들은 복불복인 것 같다.
시골집을 통해서 얻은 것, 누린 것은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많았다. 반면 그 모든 기쁨과 별개로, 가장 스트레스받았던 건 의외로 집주인과 관계였다.
이해관계에 서툰 나에게는 그 과정 하나하나가 몹시 괴로운 경험이다. 5도 2촌 시골집이 전세라면 감수해야 되는 불편함 중 하나다.
여유가 있다면 내 땅에 나의 로망들을 구현한 작은 집을 직접 짓고 싶다.
붉은 파벽돌 앞에 벽난로가 있는 아주 작고 아담한 집.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 필요가 없는 집.
법과 이해관계가 아니라, 따스한 온기가 스민 나의 작은 안식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