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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케 Oct 23. 2024

릴리의 정원

챕터 13. 마법의 도서관의 사서

수평 도시에서 사라진 책들이 각 도시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있었다. 투명한 페이지는 각 도시들에서 사라진 책들의 잉크의 잔상을 남기고 있었고, 여자는 투명한 페이지의 잉크의 잔상이 사라지기 전에 펜에 옮겨 담아 새로운 책을 쓰기 시작했다.


'사라지면 안되는데..사라지기 전에 담아 둬야 되는데, 자꾸 사라져. 지금도, 또 그 다음 순간도, 괴로워 하는 지금 순간에도..'


그녀는 먼저 이 투명한 페이지를 마법의 페이지라고 이름을 짓고는, 마법의 페이지에 담긴 책들의 잉크의 잔상을 펜에 담아 종이에 옮겨 적으며, 책의 목차를 구성했다. 그런 다음, 책의 표지를 디자인한 후 도서관에 아직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책들을 적절한 자리에 꽂아두었다. 책의 주인이 자신을 만나러 오기를 기대하면서, 책의 주인이 나타나 책을 찾아오기 전까지 마법의 도서관에 사서를 맡기로 결정했다. 기대에 부픈 여자는 가장 먼저 도서관의 이름을 짓고, 출판사의 이름을 붙이고, 사서로서의 자신의 별명을 불러보고, 앞으로 쓰여질 책들의 제목을 붙여본다.


한가로운 오후의 카페테라스에 앉아 책들이 잠들어 있는 도시들의 배경을 그려보기도 하고, 도시들의 이름을 찾아보는 모습이 마치 카페에 앉아있던 크리스틴과 닮아 있다. 여자는 늘 번역가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걸까? 여자는 도서관의 첫 페이지에 크리스틴의 일상을 그려 넣고, 크리스틴과 똑같은 번역가의 존재를 최근에 확신한 뒤, 번역가의 그림자를 따라 페이지를 펼쳐둔다. 펼쳐진 페이지에 두 유령이 지나가 잉크를 남기면 페이지를 접어 책으로 만들어 도서관에 제출 라벨이 붙길 기다린다.


"니가 만든 책, 니가 쓴 글, 책들의 도시는 너야."


'내가 만든 책, 내가 쓴 글, 책들의 도시는 나야.'


여자의 투명한 페이지는 수평 도시에서 사라진 책들을  도시채워 넣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려 하고 있다. 여자가 자신도 모르게 다녀왔던 유령의 도시에 자리 잡은 이브의 서재에서 회색 인형이 책들을 주어 담아 책장에 분류해 꽂아 넣는 모습이 여자와 닮아있다. 여자가 유령의 도시에서 도망친 뒤 수직 도시에서 책이 떨어지고, 수평 도시에서는 책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을 기억해. 회색 인형이 수직 도시와 수평 도시의 책들을 훔쳐 달아났던 것도 기억해. 난 전부 다 기억하고 있어.


그러니 걱정 마. 너희들의 기록은 투명한 페이지에 전부 기록되고 있어. 나는 기억해. 네가 지금 내 대학의 이야길 쓰기 전에도, 그 한참 전에도 글을 쓰고 있던 널 기억해. 지금 이 글은 한참 전에 네가 어렸을 때 남겨뒀던 투명한 페이지의 기록이야. 투명한 페이지의 잔상이 유령의 그림자처럼 널 따라다니고, 유령과 그림자와 투명한 페이지의 잔상은 널 끊임없이 헷갈리게 했지만 겹쳐있던 세 장의 페이지를 따로 떼어낸 건 너야. 이 대학의 더 높은 공간이 있어. 나는 이곳에 살고 있는 작가들을 알아. 투명한 페이지에 살고 있는 두 명의 번역가, 이브의 유령 IEU, 크리스틴 이브의 그림자 작가 아리엘.


작가들을 만나러 온 것을 환영해. 어서 와, 환영해.


내 대학에 온 걸 축하해!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어.


내 대학의 책들을 수도시의 책들로 갈아 끼워 넣는 거야. 다시 한번, 입학을 환영해! 어느 대학에 가고 싶니? 원서를 읽을 수 있는 유령의 대학에 가고 싶니? 모든 걸 기록하는 번역가의 대학에 가고 싶니? 릴리의 다락방에 있는 대학에 가고 싶니? 수직 도시에 있는 빨간 인형의 움직이는 대학, 크리스틴 이브의 대학에 가고 싶니?


선택해.


나는 널 응원해.


어느 대학에서 초대장을 보낸 지 일 년 전쯤 어느 날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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