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정원사와 희귀동물
아침 아홉 시 오십 분, 회사원들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출근길에 나선다. 일 년이 넘게 오르내리고 있는 계단이지만 단차가 높아 늘 주의를 집중해야 한다. 빨리 출근하기 대회가 있다면 꽤 승산이 있을 것이다. 네 개의 문을 거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일 분. 현관문을 닫고 내려가 일 층의 문을 열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기 위해 호흡을 재촉한다. 건물 외벽의 왼편에 같은 방향을 보고 나 있는 회색 철제문으로 들어서면 열두 시간 동안은 마음 놓고 바깥공기를 느끼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문과 문 사이는 워낙 가까워서 아무리 빠르게 숨을 들이쉬어도 세 번이 최대다. 회색 문과 초록색 문 사이를 메운 어둠을 더듬는다. 빈틈없이 맞물린 열쇠의 경쾌한 소리를 뒤로 하고 손을 뻗어 스위치를 누르면서 한 단 아래로 발을 내딛으면, 짧은 출근길이 끝난다.
엄마의 하루는 그렇게 시작된다.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서고, 밤 열 시가 되면 네 개의 문을 반대 순서로 거쳐 퇴근한다. 엄마는 카페 주인이자 유일한 정직원이다.
나머지 가족들도 하나씩 직함을 갖고 있다. 아빠는 카페 곳곳에 놓인 나무를 관리한다. 내가 이 글을 쓰며 사용하는 정원사라는 이름은 사실 아빠 몰래 잠시 빌린 것이라고 해야겠다. 가장 먼저 카페에 내려와 간밤에 식물이 안녕했는지 살피고, 바닥이 반짝반짝해지도록 닦고 나면 하루의 첫 커피는 아빠의 몫이다. 몇 해 전까지 배 농사를 지었던 아빠는 그 경험을 십분 활용해서 나무를 무럭무럭 키워낸다. 식물에 관심이 많은 손님들이 종종, 나무를 잘 키우는 비법을 묻는다. 대답은 카페 단골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아빠의 분무기 소리로 갈음한다.
나는 손님이 몰리는 점심시간이면 엄마 옆에서 얼음을 퍼담고 커피를 내리고, 엄마가 불가피한 일로 외출할 경우 강아지처럼 엄마의 귀환을 기다리며 카페를 지킨다. 월급 대신 숙식을 제공받는 신세로, 심심할 때마다 엄마가 내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으며 무급 아르바이트로 신고해야겠다고 중얼거린다. 주 업무는 엄마를 지켜보며 이런저런 잔소리를 하는 것이다. 쟁반 위에 접시와 유리잔을 보기 좋은 구도로 놓을 것, 초콜릿 시럽을 삐죽삐죽한 직선이 아닌 부드럽고 불규칙한 곡선으로 그릴 것, 패션프룻 청이 담긴 병을 옮길 때는 꼭 한 손으로 바닥을 받쳐 두 손으로 들 것 등등. 요즘엔 트집 잡을 일이 현저히 줄어서 내심 약간의 아쉬움을 느낀다.
달마다 읽고 싶은 책을 골라 사비로 주문하고, 책이 도착하면 장르를 기준으로 분류해 카페의 붙박이 책장에 진열하는 것도 내 할 일이다. 뒤늦게 임용고시 준비를 시작한 수험생으로서는 읽지 못할 책을 사는 꼴이다. 새 책의 표지를 처음으로 펼치는 설렘을 다른 이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살짝 속이 쓰리지만, 내가 고른 책이 다른 사람들에게 선택받을 때의 보람이 그를 상쇄한다. 책에 타인의 손길과 눈이 가 닿은 흔적이 늘어가는 것이 기쁘다. 12월이 오면, 그림의 떡을 바라보듯 책등을 손끝으로 훑기만 했던 날들을 뒤로하고 한 명의 독자로 돌아갈 것이다.
가족 모두의 참여로 운영되고 있는 카페지만 가장 큰 책임은 뭐니 뭐니 해도 엄마가 지고 있다. 새로운 메뉴를 연구하고, 재료가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재고를 파악하고, 제철 과일을 구매해서 청을 담그고,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모두 엄마의 일이다. 몸이 무겁고 눈이 잘 뜨이지 않는 날에도, 구름이 얇은 솜처럼 펼쳐져 그 사이로 비치는 하늘을 바라보며 강가로 내닫고 싶은 날에도 엄마는 계단을 하나씩 걸어 내려와 카페를 연다. 피곤이 밀려올 때면 소파에서 쪽잠을 자며, 하루의 절반에 달하는 시간 동안 상시 대기 상태를 유지한다.
끝으로, 카페에 가끔 출몰하는 희귀동물을 소개한다. 훈련소에서 퇴소한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짧은 머리를 하곤 부엌에 들어와, 음료―주로 블루베리라떼와 차가운 녹차라떼를 즐겨 마신다―를 챙겨 후다닥 사라진다. 나와 세 살 터울의 남동생으로, 행동이 재빠르고 부끄러움이 많아 다른 사람의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혹시나 카페에서 위의 인상착의를 가진 사람을 발견한다면 희박한 확률에 당첨된 것이니, 복권을 사 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