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에 대하여
2학기가 시작되고 11월 정도되면 교육지원청에서 관내 모든 학교를 한 줄로 줄을 세운다. 교육지원청이나 도교육청이 학교를 줄 세우는 목적은 시기와 목적에 따라 아주 다양한데 이맘때 학교를 줄 세우는 이유는 예산 집행 실적을 독려하기 위함이다.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학교 예산 사용에 많은 제약이 뒤따랐다. 체험학습도 마음대로 나갈 수 없었고, 외부 강사를 학교로 초청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학생들에게 소개해주는 것도 부담이었다. 결국 이런 저런 이유로 학교 예산을 계획대로 집행하지 못했고,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앞에서 세는 것보다 뒤에서 세는 게 더 빠른 순위에 올라있었다.
이런 와중에 공문 하나가 도착했다. 각 학교별로 독서동아리 조직 현황을 보고하라는 공문이었는데 친절하게도 독서동아리와 관련된 도교육청의 지침과 예산 배분 현황이 붙임 파일에 자세히 안내되어 있었다. 그동안 독서 동아리 예산 지출 권한이 내게 없었기 때문에 독서교육이 담당 업무임에도 독서 동아리 예산에 대해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독서 동아리는 조직은 해놨지만 실질적은 운영은 거의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도교육청에서 공문이 내려왔으니 어떻게든 실적을 만들어야 했다. 때마침 2학기 꿈끼탐색주간을 2주에 걸쳐 운영하기로 계획하고 있었기에 이 기간에 독서골든벨 행사를 함께 진행하기로 했다.
독서골든벨은 선생님들이 문제를 출제할 책을 선정하고 교사 1인당 10문제씩 출제해서 총 50 문항을 만들기로 했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학교 밖 체험학습을 자주 나갈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이 보면 좋을 책들을 많이 구입했다. 지금까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사 준 책들을 모아보니 상당히 많았다. 독서골든벨 행사를 위해 새로운 책을 구입해서 나눠주기보다는 최대한 기존에 나눠준 책 위주로 독서골든벨 문제를 출제하기로 했다. 그리고 새로운 책은 두세 권 정도만 추가로 구입하기로 했다. 이 때 새로 구입하기로 한 책 중 하나가 '선생님의 개를 부탁해'였다. 나는 독서골든벨 행사를 전체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골든벨 문제를 출제한 책들을 바쁘다는 핑계로 모두 읽지 못했다.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고 책상 한 켠에 쌓아두었다. 골든벨에 나온 책을 모두 읽어보지 못한 상태로 행사를 준비했고, 행사는 언제나 그렇듯 약간의 허망함을 남긴 채 무사히 끝났다. 사 둔 책은 언젠가 꼭 읽고야 만다는 신념 때문에 골든벨 행사가 이미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의 개를 부탁해'와 몇 권의 책은 여전히 업무용 책상 위에서 뒹굴고 있었다. 책상에서 업무를 보면서 읽지 않고 쌓아둔 책들이 눈에 띌 때마다 속으로는 '읽어야지... 읽어야지...'하면서 읽지는 않고 있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러다 오늘 맘 잡고 '선생님의 개를 부탁해'를 초집중해서 읽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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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개를 부탁해'
책 내용은 이렇다.
노스선생님은 왈도라는 개를 키우고 있었다. 그런데 일주일 동안 집을 비우게 되었고 왈도를 돌봐줄 사람을 찾는다. 노스선생님은 마빈에게 왈도를 부탁하고 마빈은 이를 수락한다. 노스선생님에게 집 열쇠를 넘겨 받게 된 마빈에게 친구들이 끊임없이 장난을 치지만 마빈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왈도를 돌보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 그런데 왈도가 먹지도 않고 축 늘어져 있자 노스선생님이 비상 연락처라고 알려준 수의사 선생님에게 연락을 하게 된다. 수의사 선생님으로부터 간을 먹여보라는 조언을 듣고 왈도에게 간을 주었는데 왈도는 삼켰던 간을 토해내고 죽은 채 발견된다. 왈도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자신 때문에 왈도가 죽었다고 자책하는 마빈에게 노스선생님은 나이 많은 개를 맡겨서 미안하다며 마빈 덕분에 왈도는 행복하게 죽었다고 말해주며 끝나는 이야기다.
아이들이 마빈에게 짖궂게 장난치는 모습과 전반적인 야이기의 흐름이 자연스럽고, 인위적이지 않아서 술술 읽히는 책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왈도가 죽은 원인을 두고 옥신각신하는 장면이었다. 노스선생님이 돌아오기 전까지 왈도가 간을 먹어서 죽은 건지, 죽을 때가 되어서 죽은 건지 죽은 원인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채 이야기가 흘러갔다. 등장 인물끼리 죽음의 원인을 놓고 다투는 모양새가 이어졌다. 간 조각이 목에 걸려서 왈도가 죽었으니 왈도를 죽인 범인은 왈도에게 간을 먹인 마빈이었다. 친구들도 그렇게 생각했고, 마빈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노스선생님이 돌아와서 왈도가 가장 좋아했던 음식이 '간'이었고, 왈도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간'을 먹고 죽었기 때문에 가장 행복하게 죽음을 맞이했다며 마빈을 위로한다.
'간 때문에 죽었어'와 '간 덕분에 행복하게 죽었어'는 의미하는 바가 완전히 다르다. 왈도가 간을 먹은 건 사실이고, 삼켰던 간을 뱉어 놓은 채 죽은 것도 사실이다. 사실은 명확하지만 그에 대한 해석이 사람마다 다르다. 왈도에 대해 깊게 알지 못했던 마빈과 마빈의 친구들은 '간 때문에 죽었어'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왈도와 함께 살았던 노스선생님과 수의사 선생님은 '간 덕분에 행복하게 죽었어'라고 말한다.
얼마 전 동료 A선생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학생 B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혼냈던 이야기가 나왔다. 혼이 난 학생은 고학년 학생이었고, 혼을 낸 사람은 나였다. 예의 바르지 못한 행동을 지적하기 위해 B학생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 둘이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B학생과 함께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본 A선생님의 반 아이들이 내년에 내가 자신들의 담임선생님이 안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학생을 혼내는 모습이 무서웠다고 하면서. B학생을 혼낸 건 사실이지만 꾸중을 들었던 B학생은 깔끔하게 나에게 사과를 했고, 나는 오늘 아침에 있었던 B의 행동과 말을 잊겠다고 했다. 내게 사과를 했으니 사과를 한 지금 이 순간부터 아무일이 없던 것으로 하자고 했다. 그리고 B학생은 자기 교실로 돌아갔고, 난 B학생의 담임교사에게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을 전화로 상세하게 설명했다.
A선생님은 나에게 혼이 난 B학생이 우리 반 2학년 학생인 줄 알았고, 오늘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면 심하게 혼을 낸 것만 기억하고 어떻게 마무리가 되었는지는 생각해보지 않았을 거라며 혼내는 장면만 보고 오해했다고 말했다. 내 입장에서는 2학년 애들을 그렇게 혼낼 일도 없거니와 누구를 왜 혼냈는지 이유와 대상을 물어보지 않은 채 혼자만의 상상으로 나에 대해 규정해버리는 A선생님이 야속하기도 했다. 당사자가 아닌 제3자에게 B학생과 내가 나눈 대화, 그리고 이후에 B학생과 반갑게 인사하며 지내는 모습까지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말이 말을 낳고 그 말은 오해를 낳는다. 오해는 사그라드는 법이 없다. 오해를 풀기 위해서는 오해한 시간의 갑절이 필요하다. 우리는 살면서 깊은 내막을 알 수 없는 장면을 수시로 목격한다. 자세한 내막을 묻지도 않고, 알 수도 없으면서 내가 목격한 장면을 나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이를 주변 사람들에게 옮기는 경우가 많다. A선생님도 내가 B학생을 혼냈다는 이야기를 동료 선생님들에게 이야기를 했을 수도 있고,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야기를 했다고 해서 따질 일도 아니거니와 하지 않았다고 해서 고마워할 일도 아니다. A선생님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 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왜 그런 이야기를 주변 선생님들에게 하고 다니냐.'고 따진다고 한들 그렇게 자기가 본 장면을 자기 해석대로 주변에 옮기는 삶의 방식이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 말을 옮기는 사람은 자신이 말을 옮기는 사람인지 인지하지 못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건 내가 나에 대해 아는 일이 아닐까?
나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엄격한 선생님으로, 동료 교직원들에게 엄격한 동료로 인식되고 있다. 난 교직원의 일부로서 내게 주어진 의무와 권리를 명확하게 행사하고자 항상 노력한다. 내게 주어진 출근 시간, 퇴근 시간을 엄격하게 지킨다. 8시 40분 출근, 16시 40분 퇴근인데 항상 아침 일찍 출근하고, 정시에 퇴근하고 있다. 8시 40분이 출근 시간이라고 해서 8시 40분이 될 때까지 교실 문 앞에서 기다렸다가 정확히 40분에 교실에 들어오는 교사들도 있다고 하던데 그정도의 엄격함은 갖추고 있지 못하다. 또 내게 주어진 업무를 엄격하게 수행한다. 내게 주어진 일을 내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내 일을 다른 이가 처리하는 꼴을 보지 못한다. 도교육청의 지침에 따라 학교 운영을 하지 않는 교장의 학교 운영 방식을 참지 못하고, 학생이 학생된 도리를 하지 못하는 것을 참지 못한다. 반드시 짚고 넘어간다. 이런 나를 부담스러워하는 학생도 있고, 교직원도 있다. 또 이런 나를 좋아하는 학생도 있고, 교직원도 있다. 세상살이라는 게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방식이라면 결국 내 삶의 방식대로 사는 게 정답이다. 남의 시선과 평가가 두려워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 줏대 없이 살아가는 방식은 적을 만들지는 않겠지만 추진력이 있다거나 의사 표현이 명확하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한다. 이런 사람이 중대한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 위치에 올라간다면 밑에 있는 직원들은 이렇게 하라는 얘기인지, 저렇게 하라는 얘기인지 갈피를 잡지 못해 업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 것이다.
다시 마빈의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왈도가 죽은 것은 사실이지만 간 때문에 죽음에 이르렀는지, 간 덕분에 행복하게 죽은 건지는 왈도와 가까웠던 사람이어야 알 수 있다. 학부모를 대할 때도,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동료를 대할 때도, 직장생활을 할 때도 내가 잘 아는 사안이 아니라면 간 때문에 죽었다고 말하고 다닐 일이 아니라 조용히 왈도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는 선에서 그칠 일이다. 오해는 남이 이렇게 생각하라고 알려주는 게 아니다. 내가 내멋대로 생각하고 규정해버리는 게 오해다. 오해는 내가 만든다. 오해를 만들기 전에 물어보자. 마빈에게 물어보고, 노스선생님에게 물어보고, 수의사선생님에게 물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