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군림하던 시대, 신은 빛이다?

미학 입문서 <미학 오디세이> 읽고 (2)

by 클래식임팩트



신이 군림하던 시대


일반적으로 중세 시기라고 하면 로마의 멸망 이후부터 르네상스 시대까지의 약 천 년을 뜻한다. 이 시기에 예술이란 현실 세계에서 감각되는 가상을 포기하고, 기독교의 절대 진리를 표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변모한다. 인문학에 관해 조금이라도 아는 바가 있는 사람이라면 왠지 중세는 꽉 막히고, 어두운 세계라는 인상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현실 세계의 모방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고대 그리스의 예술 작품들에 비해 다소 어설프고 투박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처음으로 영적인 요소를 빛을 이용해 시각화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플로티노스,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로 이어지는 철학자들의 예술론은 중세 예술을 종교 예술과 동일 선상에 올려 두었고, 어쩌면 현대 미술과도 연결될 수 있는 관념의 시각화를 개척했다.






중세 예술 : 감각 세계의 가상을 포기


그리스 후기 철학자인 플로티노스는 예술은 모방(미메시스)이 아니라 우리 영혼이 본질을 포착해낸 것이라 보았다. 그리고 예술은 우리 영혼을 감각 세계에서 정신세계로 옮겨주는 것이라 보았다. 플로티노스의 사상은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유사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신플라톤주의 학자라고 부른다. 하지만, 플라톤이 이데아 세계와 현상 세계를 이분법적으로 나눈 것에 반해 플로티노스는 예술가가 본질을 담아낸 예술 작품의 가치를 비하하지 않았다. 우리가 근원적 일자(一者)에 닿을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예술은 본질적인 미(美)이자, 빛이자, 정신세계의 아름다움이다.
본질적인 아름다움인 근원적 일자야말로 우리를 어둠의 세계로부터 끌어오는 빛이다.



miami_florida_maimi_fl_symbol_sky_sky_formation_symbolism_clouds-688907.jpg 근원적 일자는 빛이다. 예술가는 단지 그 원형에 질료를 부여할 뿐이다.


예술을 근원적 일자인 빛을 표현하는 것으로 정의한 플로티노스는 처음으로 예술과 미를 동등한 것으로 결부시킨 사람이다. 깊이와 그림자를 피하고 사물의 빛을 표현하는 방식은 '빛의 상징주의'라는 개념으로 이어졌다. 나아가 플로티노스는 기독교를 거부했지만, 그의 형이상학은 기독교인들에 의해 기독교를 뒷받침하는 사상이 되었다.


영혼의 본질을 표현한다는 것은 초월적인 신성을 표현하는 것이 되었고,
일자는 신이 되고, 영혼의 빛은 신성의 빛이 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 : 기독교 with 플라톤


자연스럽게 신학자들의 종교 철학이 예술과 결부되기 시작했고, 가장 대표적인 신학자가 바로 아우구스티누스다. 그는 초기 기독교 교리에 신학적 통일성을 부여하고 중세 사상 체계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신학자다. 그의 철학은 플라톤의 철학과 다소 맞닿아 있어서 예술은 눈에 보이는 세계가 아닌 영적인 세계, 초자연적인 신성을 표현해야 한다고 보았다. 물론 변하지 않는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세계를 중시하지만 예술의 역할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예술은 모방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서 형태나 색채의 자유로운 구성을 통해 감각적인 빛이 아니라 정신의 빛을 담아야 하고, [완전, 비례, 명료]로 칭할 수 있는 '신적인 미'를 추구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정신의 빛을 담은 건축과 음악이 고평가 받았다.


"아름답기 때문에 즐겁다"


위의 표현에서 아름다움이란 단일성, 동등성, 일치, 비례, 조화, 질서.. 등의 것이다. 이 속성들은 사실 고대 그리스의 균제미와 같다. 아우구스티누스 철학이 스며들어 있는 중세 건물들은 수로 귀착되는 피타고라스적 신비와 함께 정신의 빛을 보고자 했던 의지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를 로마네스크 양식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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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성채와도 같은 성당, 두꺼운 벽과 그 사이를 이어주는 아치형 기둥, 감각적인 빛을 최소화하는 좁은 창문


시간이 지나면서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자 사람들은 내세가 아닌 현실에, 신이 아닌 개별자와 자연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물질과 감각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싹트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대두된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 : 기독교 with 아리스토텔레스


중세 교회의 대표적인 신학자이자 스콜라 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다시 아리스토텔레스의 예술 모방론을 따른다. 그는 감각적 자연의 묘사가 곧 신성 묘사라고 생각했다. 형상이란 감각 세계에서 질료와 함께 어우러져 있다는 것.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와 달리 아퀴나스는 "아름답기 때문에 즐겁다"가 아니라 "보아서 즐겁다"라고 표현한다.


"보아서 즐겁다"


"보아서 즐겁다"는 것은 바라보는 사람의 즐거움도 미와 관련이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즐거움은 감각적 즐거움이 아니라 재인식의 즐거움인데 이미 사람들 주관 속에는 '신의 미'가 깃들어있기 때문에 객관적 대상을 봤을 때 우리 주관은 그것에 동화되어서 즐거움은 느낀다는 것이. ‘대상을 주관에 동화시키는 것’이 바로 미라고 본 것인데 이것은 나중의 ‘칸트’의 생각과도 비슷하다.


플라톤의 이데아는 피안의 세계였다. 따라서 플라톤적으로 해석된 과거의 기독교는 신을 세계 밖에 있는 존재로 이해했다. 때문에 감각적 자연 묘사보다는 초자연적인 신성의 표현이 주가 되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치관이 결합된 철학은 반대로 초월적 세계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자연 그 자체 속에 신성이 깃들어 있다고 보았다. 이런 감각적 자연의 묘사가 바로 고딕 자연주의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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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 세계의 빛을 비추는 스테인드 글라스, 구조와 공간과의 관계를 자유롭게 하는 뾰족한 아치



이제 우리는 이성과 인간 중심의 세계관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 근대로 넘어가 다시 현실의 가상이 나타나는 모습을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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