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눈에 아름다운 것이란?

미학 입문서 <미학 오디세이> 읽고 (1)

by 클래식임팩트



들어가며


우리는 본능적이고, 직감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추구한다. 아니 어쩌면 이성적일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학문, 미학(美學)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아름답다는 것은 절대적인 정답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고대의 주류 미학론에 따르면 광활한 자연을 보고, 노을이 비친 바다를 보고, 녹음이 푸르른 숲을 볼 때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인간 의식 속에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 있고 그 기준에 근접한 피사체를 보았기 때문이다. 과연 이러한 주장에 동의할 수 있는가? 진중권 교수의 <미학 오디세이>는 인간의 예술 활동의 가장 큰 동기인 아름다움을 정의하기 위한 탐구와 그 여정을 총 세 권에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일반인에게 다소 낯설 수 있는 미학이라는 학문에 대해 이렇게 친절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 설명이 흥미롭기 때문에 내용을 정리해 글로 남기고 나의 감상을 나누고자 한다.



원시예술 : 가상은 현실과 같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주요 감각은 시각이다. 무언가를 '볼 때' 아름다움을 구분하고 나를 포함해 다른 이들도 아름다움을 '볼 수' 있도록 흔적을 남기는데 이것이 원시 예술의 시초이다. 구석기시대에는 낮은 지적 능력 때문에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에 그쳤다면 농경이 시작된 신석기시대에 이르러서 인간의 사유 능력이 발전하고 비로소 '추상화'가 가능해진다. 스스로 가상의 공간에 가상의 인물을 만들고('신'이라는 존재를 설정) 질서를 부여하기 시작한다. 그들만의 신이 자연을 창조하고 그들을 먹여 살리니, 자연에는 계절이라는 질서가 부여되어 음식이 충족한 계절과 그렇지 못한 계절에 가치가 매겨진다. 사계절이 순조롭게 운행되는 것이 최고의 '미'였기 때문에 사실 그들이 실재하는 현실과 '미'의 기준으로 설정해둔 가상공간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이 시대에 예술이란 신이 '미'를 선사하기를 바라는 주술에 가까웠다.


9939B9465C79D1E831 구석기시대 벽화. 눈에 보이는 대로 동물의 모습을 그려 놓았다.


신석기시대 벽화. 그들만의 세계를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신이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 여겨지면 제의에서 신을 살해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효험을 얻기 위해 육신을 먹었다.





고대 예술 : 현실과 가상의 분리



예술은 현실과 가상이 분리되는 순간에 탄생하였다. 안정적으로 정착 생활이 가능해지고 신분의 구성에 따라 사회의 기틀이 생기게 되자 주술은 가상으로 여겨졌다. 이때 주술은 세계를 개조하고 이해하려는 인류의 욕망, 인간 사회의 진리를 찾기 위한 시도로 작용하였는데, 인류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인류의 개념으로 세계를 정의하고자 한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등장한 것이 종교와 철학과 예술이다. 즉, 고대에서 예술이란, 미(美)란 아름다움이 아니라 세계의 구성 원리이고, 그렇기에 예술작품은 좋음(善)을 추구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미의 개념과는 다르다. 예술 개념이 가장 발달했던 지역이 바로 그리스 지역이었다. 고대 예술을 대표한다고도 할 수 있는 그리스에는 예술에 있어서 가상과 진리라는 개념을 둘러싸고 2가지 노선이 이어져 왔는데 각각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미학관이 각 노선을 대표했다.


플라톤의 미학 : 예술은 가상을 포기해야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
AA.14064432.1.jpg 우리가 현존하는 세계는 이데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플라톤의 미학에 따르면 예술은 눈에 보이는 것이나 가상이라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미의 이데아(idea)를 드러내야 한다. 우리가 현실에서 바라보는 것들은 모두 감각으로 지각되는 불완전한 세계로서 이데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반면, 이데아의 세계는 이성에 의해서만 인식될 수 있는 불변의 세계이다. 그렇기에 미의 이데아란 '정확한 척도와 비례'를 뜻한다. 플라톤에 따르면 이데아를 본질에 가장 가깝게 재현할 수 있는 조형예술만이 예술이 될 수 있으며 그 외의 것들, 특히 시는 신적인 예언 능력과 주술이 발현된 광기의 산물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플라톤에게 그들은 예술을 진짜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가짜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 테크네 : 정확한 척도와 비례에 따라 본질을 담아내는 기술.



아리스토텔레스의 미학 : 예술은 가상을 통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


플라톤과는 반대로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개입하는 제작자의 예술적 재능이자 '광기' 또한 예술적 재현의 일부라고 보았다. 그렇기에 아리스토렐레스에게 시는 절대 무시받을만한 것이 아니었다. 시를 짓는 것도 테크네의 예술이며 보편적인 본질을 모방해 담아 놓은 예술이라는 것이다. 개연적이고 필연적인 구성에 따라 짜인 시를 보면서 우리는 모방(미메시스)의 쾌감이자 진리 재인식의 쾌감을 얻는다. 특히나 시 중에서도 비극이 가장 훌륭한 시 양식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에서는 이데아의 세계라던가, 초월적인 세계는 우리가 실재하는 세계와 별도로 존재할 수 없었다. '사람이라면 ~해야 한다'는 보편적인 형상은 있지만 그것 또한 사람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위를 모방해 놓은 시가 예술의 범주에 속한다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비극인가?


인간의 이야기를 가장 극적으로 제시하고, 비극을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등장인물에 자기 자신을 대입하여 연민, 나아가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양식이기 때문이다. 다소 말이 어렵다면, 비극이야말로 인간사를 가장 제대로 모방해놓았기 때문이다. 비극은 기존에 존재하던 디오니소스 제의에 예술적 창조의 법칙이 더해져 일정한 형태를 갖춘 극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술, 노래, 가면, 무용, 분장 등의 형식은 그대로 살리고 선창자가 노래를 부르면 후창자가 즉흥적으로 받아 부르면서 대사가 이어졌다. 이후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와 같은 학자의 손을 거쳐서 점점 제의 기능을 상실하고 예술로 변모한 것이다.


예술로서 자리 잡은 비극은 크게 플롯, 성격, 대사, 노래, 장면으로 구성되는데 이 중에서는 플롯이 가장 중요하다. 갈등 - 급전+발견 - 페이소스(Pathos)로 이어지는 플롯이 인과적으로, 필연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또한 특별한 결함이 없는 훌륭한 인물이 악의 없는 과오, 실수에 의해 불행에 빠지는 식의 전개가 최적의 플롯이다. 비극은 사람들에게 연민과 공포를 환기시키는 효과를 가져다준다. 충분히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사건을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은 인간이라는 존재와 그들이 현존하는 세계를 재인식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다.


니체는 <비극의 탄생>이라는 저작에서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이라는 두 신을 언급하며 이 두 신이 우리 삶을 이끌어간다고 말한다. 아폴론은 빛의 신으로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하는 보편적인 형상을 상징한다. 디오니소스는 광기와 환영의 신으로서 불안과 충동을 안고 살아가는 개별화된 인간을 상징한다. 그리스 신들을 빌려 비극을 해석하자면, 인간은 디오니소스라는 비극의 근원적 일자(一者)가 개개인 속에 개체화하여 아폴론의 베일에 싸여있는 존재이다. 그런데 비극은 각 개체들을 하나의 근원적인 운명으로 되돌려 버리기 때문에 기쁨을 일으킨다. 쓰라린 파멸 앞에서 우리는 해탈감과 무한한 희열감을 느낀다. 이것이 카타르시스다. 이때 디오니소스는 가혹한 운명이자 삶의 진리를 음악적 상징력에 담아내고, 아폴론은 아름다운 가상의 세계를 시각적 형상으로 선보인다.

다운로드.png 아리스토텔레스 예술론의 결정체 '시학'



이렇게 고대 시대의 예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미학에 탄력을 받아 조형예술 외에도 운문, 극, 회화 등의 다양한 형식이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들었다. 물론 이들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가상의 보편자, 선(善)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시대가 중세로 가까워지면서 로마 제국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는 종교의 힘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고, 그에 따라 예술의 의미도 변환점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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