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4일 밤, 15일 오후
어제는 28도를 달리더니, 오늘은 16도 언저리의 기온입니다. 비도 오니 더 추운 느낌입니다. 아니, 비가 와서 추워진 걸까요? 아니, 비가 오기 전의 날씨가 4월에 오면 안 되는 날씨였지요? 점점 상상을 뛰어넘는 날씨에 어지러운 느낌도 드네요.
오늘은 문득 떠오른 추억 하나를 꺼내보려고 합니다. 제 책상에는 빈센트 반 고흐의 "아를(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이 있는데요, 흔히 "별이 빛나는 밤"으로 알고 있는 1889년의 작품이 아니고, 고흐가 1888년 2월부터 아를에 거주하면서 그 해 9월에 그린 그림입니다. 론강의 아름다운 밤풍경과 강물 위로 비치는 가로등 빛과 하늘에서 환하게 반짝이는 별빛의 표현이 정말 예쁜 그림이죠. 얼핏 보면 잘 모르지만, 별빛을 유심히 보면 북두칠성이 보이는 그림입니다. 말로 설명하면 모르겠지만, 그림을 보면 모두 '아! 이 그림!' 할만한 유명한 그림입니다(커버 이미지 속 그림입니다).
그런 그림이 제 책상에 있다고 하니 뭘까 싶으실 분들도 있을 겁니다. 뭐, 당연히 그림만 인쇄한 무언가라고 생각하실 테고, 커버 이미지를 보셨다면 아실 수 있다시피 나무 엽서에 그림이 새겨진 걸 받침대로 세워둔 것입니다. 4년 전, 퇴사 후 이제 막 코로나가 시작되고 있던 시기에 4박 5일로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 샀던 물건입니다. 영상을 이용한 전시를 주로 하는, 오래된 벙커를 개조한 전시관에서 전시 주제로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을 썼었고, 그때 기념품 샵에서 눈에 띄어 두 개를 사가지고는 하나는 친구를 주었었죠. 그 친구는 아직 잘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제주도에서 돌아온 후 지금까지도 이 친구는 제 책상을 지키고 있습니다. 가구의 배치를 바꾸고, 책상 정리를 분기마다 해도 항상 이 친구는 제 두 번째 모니터 아래에서 올곧이 저를 향해 있습니다. 모니터에서 눈을 살짝만 내리면 그 자리에서 항상 제게 멋진 밤 풍경을 보여주고 있죠. 만약에 다른 곳에 취직을 했다면 사무실의 책상을 차지하고 있었을 것이고, 작업실이 생겼다면 작업실 책상을 채우고 있었겠지만, 무직 4년 차 백수에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네요.
가끔은 이 나무판 속 그림을 빤히 쳐다보며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곤 합니다. 사실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곳도 아니어서 인터넷 예약을 하면 싸게 볼 수 있다는 것도 몰랐고, 성산에서 일출을 보려던 꿈이 새벽부터 내린 빗방울을 타고 흘러가버리자 아침을 먹으며 스스로를 달래기 위해 간 전시회였죠. 애초에 여행 자체가 4일 동안 서-남-동-북으로 숙소만 정해두고 일정은 그날 숙소 근처에 가보고 싶은 데를 찾아가는 콘셉트이었기에 전혀 알지 못했던 선택지는 아니었지만, 유일하게 만원이 넘는 비용이 드는 선택지였다는 점은 그만큼 일출을 보지 못했던 아쉬움을 다른 곳에서 보충하고 싶었던 것이겠죠. 그리고 그 선택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저번 글에서도 이어지는 것 같지만, 이런 게 바로 선택에서 얻을 수 있는 예상하지 못한 기쁨일 것입니다. 제가 다른 건 계획을 짜려고 노력해도 여행만큼은 절대 계획을 세우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내일로 여행을 위해 친구들과 계획한 4박 5일, 그리고 혼자 다니기로 한 2일의 자유여행을 통해 느꼈던 점입니다. 여행은, 위험하지만 많으면 계획을 다소 내려놓고 다니는 것이 더 재미있다는 걸 말이죠. 누군가는 동의하지 않겠지만, 뭐 어떤가요. 제가 좋으면 그만이죠.
그리고 이런 기억을 남기는데 사진보다 더 좋은 것이 이런 기념품이라는 걸 이 나무 엽서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여행을 가면 사진은 많이 찍어도 기념품 같은 건 절대 사지 않았는데, 이렇게 기념품 하나를 사서 책상에 올려두니 여행에서 느꼈던 그 좋은 기분을 항상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진은 당시의 기억을 끄집어낼 수 있는 것이라면, 이런 기념품은 그 기억을 항상 곁에 둘 수 있는 것이었네요. 나이가 30이 넘어서 이걸 알게 되었으니 그동안의 여행의 추억이 너무 아쉽기도 합니다. 어디 사진이라도 뽑아서 벽 한쪽에 걸거나, 아니면 더 이상 쓰지 않는 태블릿 하나를 디지털 액자처럼 써야 할까 싶지만, 그 정도로 귀찮은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아서 그냥 마음만 먹고 클라우드 속 사진을 다시 꺼내봅니다.
이런 비 오는 날은 밤에 별이 잘 보이지 않아 그림 속의 별을 보며 밤하늘을 마음속에 그려봅니다. 오늘도 별 하나를 마음에 그려보며 글을 줄입니다.
리르리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