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의 어느 봄날, 2024년 5월 21일, 5월 24일
오랜만에 브런치에 들어왔습니다. 사실 화요일쯤에 글을 하나 모바일 메모장에 써두었었는데, 바로 옮겨서 올리겠다는 생각이 사흘이나 밀렸습니다. 이제라도 올리게 되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꼭 외출을 할 일이 있으면 브런치를 켜거나 모바일 메모장을 열어 끄적대는 것 같습니다. 자주 외출을 해야 할까요.
몇 번 이야기했던 것 같지만 — 글로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아마 다른 데서 이야기를 했을 것 같지만 — 저는 1주일에 한두 번은 가까운 곳으로 바람을 쐬러 갑니다. 오늘도 그렇게 수원역에 나왔는데, 대합실에 들어서니 갑자기 오늘은 조금 멀리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지하철 도착 안내판을 보니 마침 천안역으로 가는 급행열차가 오고 있었고, 저는 그걸 타게 되었습니다. 달리는 열차 안에서 평소처럼 유튜브를 보다가, 갑자기 내려드는 햇빛에 이끌려 스윽 창밖을 보니 이른 여름을 맞은 논과 산이 눈에 들어옵니다.
문득 제가 이렇게 '훌쩍 떠나는 행동'을 시작하게 된 날이 떠올랐습니다. 그것도 역시 천안역이었기 때문이죠. 2008년, 파릇파릇한 16년 전의 저는 어느 날 학교를 가는 길에 이유 없는 답답함을 마주했습니다. 단순히 수업이 듣기 싫었을 수도 있고 다른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날은 유난히도 학교에 가기 싫었습니다. 집에서야 핑계 댈 이유가 없어 나왔고 마침 버스가 와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갈아탔지만, 학교가 가까워질수록 마음은 더 무거워졌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열차는 금정역에 다다랐죠.
열차가 멈추고, 문이 열리자 저는 환승하는 인파에 섞여 열차 밖으로 나왔습니다. 원래는 환승을 할 필요가 없는데 말이죠. 그대로 1호선을 타고 서울 쪽으로 가도 학교에 갈 수 있었지만, 저는 계단에 올라 반대편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천안 방향 열차를 타고 그대로 천안역으로 향했죠. 그리고는 달리는 열차 안에서 같은 수업을 듣는 동기 형한테 아파서 수업 못 갈 것 같다고 문자를 남겼습니다. 16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가 이 날 천안에 갔다 왔다는 건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 여행이 제가 처음으로 아무 생각 없이 가장 멀리 가본 것이었습니다. 1박 2일 여행조차도 극구 반대하던 엄마에게 들키지 않고 갔다 올 수 있는 가장 먼 곳이기도 했죠. 심지어는 갑자기 교통비가 많이 나와서 들키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개찰구 밖을 차마 나가볼 생각을 하지도 못했죠. 그날의 이야기는 천안역 플랫폼 위의 노점 - 델리만쥬를 팔던 곳에서 호두과자를 사 먹으며 '그래도 천안에 왔으니 호두과자는 먹어야지!'라는 뿌듯함과, 비밀을 안고 집에 돌아가니 학교 갔다 온 거랑 별반 차이 없었어서 다행이었다는 생각으로 끝납니다.
오늘은 천안역으로 갈 때는 급행을 탔지만, 돌아올 때는 그때의 느낌을 한번 느껴보고자 완행을 타고 글을 쓰며 주변을 관찰해 봅니다. 긴 하굣길에 끝없이 이어지는 대화 사이로 꾸벅꾸벅 졸음과 싸우는 학생들, 퇴근시간 전철에 점점 쌓여가는 직장인들과 벌써 한 잔 걸치신 것 같은 어르신들까지. 16년이 지나 신문과 책이 스마트폰으로, 노트북이 태블릿으로 변했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았네요.
몇 시간 걸리지 않은 나들이었는데 오늘 이야기한 것 외에도 많은 이야깃거리가 생긴 것 같네요. 다음 글, 다다음 글까지도 아마 그날 천안역에 갔다 온 것에서 글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하루하루 살다 보면 점점 잊혀 아닐 수도 있지만요. 맨 처음에도 이야기했지만, 역시 외출이라도 해야 할까 싶습니다.
리르리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