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2024년 6월 10일, 미래의 어느 날들
오랜만입니다. 천안에 잠깐 마실을 나갔다 온 뒤에 글을 하나 쓰고선, 며칠이나 글을 써야 한다고 말만 하고 생각만 하고 쓰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게으른 태생을 바꾸기가 쉽지는 않네요. 이렇게 격렬하게 게을러도 되나 싶지만, 앞으로도 더 게으르고 싶다는 생각 역시 지울 수가 없네요.
사실, 이제 긴 글을 제대로 하나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준비 아닌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준비 아닌 준비를 하는 이유는 앞으로 쓰려고 하는 글이 제 의지만으로 쓰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3년 전에 했었던 도보여행 후기를 잘 올려놨던 커뮤니티 사이트가 이번달 말에 서비스를 종료한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그때 썼던 글이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아직 한 달의 여유가 있었지만 일단 미리 백업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사이트에 접속하여 한 땀 한 땀 페이지를 다운로드하였습니다.
그렇게 오랜만에 3년 전의 글과 다시 마주했습니다. 그런데 글을 읽어보니 이건 뭘 쓰고 싶었던 건지 알 수 없었습니다. 차라리 오래전 제가 제주도 여행 4박 5일을 갔다 오고 타 사이트에 남겨놨던 여행기가 더 괜찮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여행기는 진짜 정보 위주의 여행기여서 읽은 사람들에게 조금의 도움이라도 될 수 있었다면, 이 16박 17일의 대장정을 적어둔 글은 정보도 없고, 공감도 없는 그냥 맥 빠진 글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여행을 갔다 온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았을 때 썼던 그 여행기가 왜 읽기 힘들었을까, 무엇이 문제일까 생각하다 보니 결국 글을 다시 써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이왕에 단물 다 빠진 글이라면 조금이라도 정갈하게 바꾸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문제입니다. 지금은 이미 도보여행을 한 지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1년만 지나도 휙휙 바뀌는 세상에 3년이라는 시간은 너무 길었다는 점이 말입니다. 다행인 점은 제가 당시에 도보여행을 하면서 대부분의 장면을 동영상으로 남겨놨다는 것입니다 — 16박 17일 내내 인터넷 방송을 켜고 다녔습니다. 다시 보려고 하니 뭔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드는데, 3년 전의 나에게 직접 물어볼 수는 없으니 보는 수밖에 없죠.
영상을 저장해 둔 폴더를 열어봅니다. 294GB. 1시간에 1.5GB 정도 되니 대략 196시간입니다. 16박 17일 동안 꼬박 찍은 영상 외에도 그날 저녁에 후기랍시고 찍어둔 영상도 있어서 분량이 정말 많습니다. 전에 적었던 글도 읽어보니, 하루 단위로 단 3~40줄과 몇 장의 사진을 글 하나로 담아낸 제가 얼마나 이 후기를 적기 귀찮아했는지 느껴집니다.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갔다 온 것인 만큼 무언가 기록을 남기고 싶었지만 귀찮아서 대충 썼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좀 더 정성 들여 썼으면 지금 당장 브런치에 옮길 수도 있지 않았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아쉽네요. 그래도 그 짧은 글 속에서도 당시 느꼈던 감정이 조금은 잘 묻어나고 있었습니다. 생생하지는 않아도 은은하게 남아있는 것이 좋았습니다.
일단 여기에 이렇게 "글을 쓰겠습니다."라고 언급한 이상 글을 쓰긴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아마 제가 이 글을 썼다는 사실이 제 스스로에게도 잊힐 때쯤에 완성시킬 수 있을 것 같지만, 언젠가는 꼭 마무리하고 이 글을 읽는 분들께 공개할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리르리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