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21일, 2025년 12월 11일
국방부와 병무청이 인증(?)한, 사지 멀쩡한 대한민국 남자라면 모두 맞이하는 그날이 있습니다. 바로 전역이죠. 입대 아니냐고요? 그것도 맞지만 사실 입대를 맞이하면 전역이 당연히 따라오니 그게 그거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요. 전역일 아침, 기상나팔 소리에 나지막이 일어나 커튼을 걷고 맞이하는 눈부신 아침 햇살. 또 하나의 집처럼 느껴지던 이 생활관과 또 하나의 가족이었던 소대원들을 떠나보내는 슬픔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오직 나간다는 생각 하나에 모든 것이 즐거운 날입니다.
당연히 저도 시력만 조금 나쁠 뿐 건장한 남자였기에 전역일을 맞이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제가 군생활하던 때는 한참 군생활이 줄어들고 있던 때였고, 저는 약 1년 10개월의 군생활 끝에 2011년 말 전역일을 맞았습니다. 전역신고를 전날에 한 덕에 당직사관에게 간단히 보고한 뒤, 아침식사도 채 하기 전에 위병소로 발걸음을 옮기던 저와 3명의 알동기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마지막이랍시고 일렬로 서서 전역자들을 보내주는 후임들 사이로 위병소 문을 향해 나아가던 그 길에, 살포시 불어오던 이른 겨울의 날카롭지만 따뜻했던 바람도 떠오릅니다. 간단한 검문 후 위병소 밖을 나서니 이제야 진짜 전역을 했다는 게 실감이 났습니다.
사진기였는지 핸드폰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무언가로 사진을 찍고, 마지막으로 한 끼 밥이나 먹자고 하며 강릉터미널 2층에 있는 한 식당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당시 그 식당을 자주 가던 군인들은 휴가날 아침 꼭 그곳에 들려 소주 한잔 곁들이며 밥을 먹고 가던 루틴이 있었는데, 항상 그곳에는 전역을 맞이한 사람들의 폴라로이드 사진이 벽면 한쪽을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저와 동기들도 자연스럽게 전역의 기쁨을 담고 그곳에서 밥 한 끼 먹고 폴라로이드 사진을 남겼죠. 여담이지만 이후에 가끔씩 강릉을 놀러 가면 종종 그 식당을 가서 밥을 먹었는데, 작년에 마지막으로 갔을 때도 빛바랜 사진이 남아있던 것을 보고는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전역의 기쁨을 그렇게 술 한잔에 담아 삼킨 우리는 그렇게 각자 집으로 향했습니다. 안산으로 가는 버스 안, 저는 창 밖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방금 전까지 그렇게 즐겁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집을 향해 달려가는 버스의 엔진 소리만 들리니 뭔가 이상한 느낌이었습니다. 약 3주 전에 소위 '말출'을 나갈 때의 기쁨 가득한 버스와는 느낌이 분명 달랐습니다. 그때는 분명 다시 강릉으로 돌아오는 게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강릉을 다시 안 가도 된다는 생각이 드니 이상했습니다.
허탈함. 마음을 놓을 수 없었던 지난 2년 가까운 시간을 뚫고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든 기분은 허탈함이었습니다. 기쁨보다 더 큰 감정이었습니다. 그리고 문득, 수능날 저녁의 그 거리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왜 내가 수능날 그렇게 이상한 기분이 들었는지 말이죠. 적게는 2년(당시 기억으로는 고등학교 2학년때부터 수능 준비를 했었습니다), 길게는 무려 12년에 걸친 내 공부의 결과를 내고도 기쁘지 않았던 제 모습이 전역날 버스 안 제 모습과 같았습니다. 계속 조이고만 살던 인생에서, 처음으로 맞이한 해방이었기에 그때는 몰랐던 것이죠. 목표를 달성했다는 것은 곧 목표가 사라진다는 것이고, 목표가 사라졌다는 것은 더 이상 달려갈 이유가 없어진다는 것이고, 목표를 잃어버린 사람이 겪는 허무함은 어쩌면 당연하다는 것을 4년이 지나 같은 상황을 맞이하니 느끼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허무함을 이끌고 집에 와서, 핸드폰을 켜고 여기저기 연락하며 약속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목표가 사라진 허무함을 채우기 위해 새로운 목표를 찾기로 합니다. 그렇게 1주일을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뒤져 찾은 아르바이트는, 제 인생에서 몇 안 되는 후회되는 선택을 가져다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