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입니다.
언제부터인가 크리스마스가 특별할 일 없는 휴일로 다가오는 느낌입니다. 종교도 멀어진 지 이미 10년이 넘었고, 친구나 애인을 만나기엔 너무 가족적인 날(?)이어서 보통은 약속을 피하게 되더라고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가족끼리 모여 치킨 하나 시켜 먹는 정도의 날은 됐었는데, 요즘은 그것마저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동생이 독립해서 그럴 수도 있고요). 물론 주말을 끼고 걸리는 휴일이라면 그래도 연휴라고 좋아했을 것이고 약속도 서슴없이 잡았겠지만, 올해는 중간에 평일이 하루 낀 날이라 특별한 약속 없이 그냥 중간에 하루 쉬는 날 같이 보내게 됩니다. 연차라도 쓸 수 있다면 긴 연휴를 만들어 어디 여행이라도 가겠지만, 세상 일이 마음처럼 되지 않기도 하고 연말이라 소요되는 비용도 무시하지 못하죠.
더군다나 올해 연말은 감기와 함께 보내고 있습니다. 벌써 1주일이 넘은 감기가 아직도 떨어지지 않네요. 원래라면 그냥 약국에서 종합감기약 사서 한 이틀 먹으면 다 떨어져 나갔던 것 같은데, 올해는 벌써 병원에서 진료를 두 번이나 받았습니다. 열도 내리고 몸살도 다 사라졌는데 기침은 정말 오래도록 저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병원에서도 이번에 유행하는 감기는 기침이 참 오래간다고 하더라고요.
휴일을 끼고 있다고 병원에서 아예 5일 치 약을 받고 나니 이번 주말 약속을 깰 수밖에 없었습니다. 연말에 술 한잔 하자고 제가 먼저 친구들을 모았는데, 토요일에 만나도 술 못 마시겠다고 말하니 다들 맞춘 듯이 다음에 보자고 합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일지라도 연말인데 술 한잔 빠지면 섭하다는 생각인 거죠. 연말 약속은 결국 연초로 미뤘으니 만나서 신년 소원이나 빌어야겠습니다.
다시 크리스마스로 돌아옵니다. 올해 들어 더욱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소위 '연말 분위기'를 물씬 풍기던 크리스마스 시즌이 이젠 상상 속에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싶어 집니다. 밤거리를 수놓은 색색 불빛과 캐럴 소리 가득한 빌딩 숲, 그리고 그 사이를 걸어 다니는 수백, 수천의 인파와 그 사이를 비집고 쌓이는 하얀 눈이 내리는 풍경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풍경은 찾아보기 힘들어졌습니다. 이사를 오면서 매 년 거닐던 그 번화가와 멀어졌기 때문일까요, 혹은 코로나 이후로 얼어버린 소비심리가 원인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저작권법에 철저해진 매장들이 캐럴을 매장 밖으로 뿜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죠. 그 와중에도 어떤 사람들은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성당이나 교회에서는 매년 행사를 통해 따뜻함을 찾기도 하고, 여전히 번화가에는 많은 사람들이 연인과, 친구와, 가족과 함께 밤거리를 돌아다니고 있겠죠. 인터넷을 봐도 누구는 커플 크리스마스고 누구는 솔로 크리스마스라고 유튜브에서, 커뮤니티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말이죠.
처음 생각했을 땐, 예전처럼 환경이 우리에게 연말의 감정을 떠먹여 주는 건 없어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조금 생각해 보니, 결국 제 자신이 그런 걸 받아들이지 않고 막고 있는 사람이 되었더군요. TV에서 연말 시상식을 해도, 카페에서 크리스마스 시즌 메뉴를 내놓아도, 빵집에서 연말 케이크를 쌓아두고 팔아도, 유튜브에서 솔로 크리스마스 특집 영상을 마구 올려대도, 결국 그걸 저는 그걸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연말인데 아무것도 안 해서 슬프다는 느낌마저도 들지 않아서, 제가 연말 분위기를 못 느낀다는 것이었죠. 그나마 이번 주에 약속이라도 나갔으면 조금은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 감기에 걸려 약 먹고 멍하니 앉아있다 보니 올해는 다 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