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15알, 2025년 11월 27일
날씨가 추워지니, 문득 한 날이 떠올랐습니다. 2007년 11월 15일. 처음이자 마지막 수능을 치르고 나왔던 그날입니다. 올해는 수능 한파가 덜했었지만, 그 당시는 흔히 말하는 '입시 한파'가 제대로 느껴졌던 날이었습니다. 떡볶이 단추 코트를 입고 등에는 문제집 몇 권이 들어간 책가방을, 한 손에는 전날 싸둔 도시락과 불안하면 먹으라고 넣어주셨던 청심환 하나가 들어간 가방을 들고 낯선 학교의 교문 안을 들어가던 그날. 새벽 4시에 불안감을 안고 일어나 낡은 스탠드 불빛 아래 비문학 지문을 읽으며 쌓인 피로를 안고 1교시부터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가던 제 모습. 사실 이제는 어렴풋이 떠오를 뿐이지만 그때의 긴장감은 지금도 떠오릅니다.
그렇게 제2외국어까지 문제를 다 풀고 나오니 대충 6시쯤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시험을 봤던 신도시 안의 학교 근처로는 집으로 가는 버스가 없었어서, 구도심 쪽으로 수십 분 걸어 나와야 했었습니다. 마침 다른 학교로 가게 되어 거의 3년을 본 적 없는 친구와 같은 시험장에서 만나게 되었고, 몇몇 친구들과 함께 그 길을 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친구는 저보다 좋은 고등학교를 갔지만 --- 당시 제가 있던 곳은 비평준화에 소위 고입을 위해 연합고사를 보았던 시절이었습니다 --- 학교 안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고 의기소침해진 모습이었습니다. 수능이 끝난 그날임에도 다른 친구들과 달리 얼굴을 펴지 못했던 그 친구의 우울함이 아직 떠오릅니다.
그때는 그 걷는 길이 참 멀었습니다. 12년의 모든 마무리가 되었다는 느낌보다는 그냥 길이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친구들과 놀 생각도 없었고 그저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분명 끝났다는 생각은 했지만, 몸도 마음도 긴장을 놓지 못했습니다. 엄마하고 전화를 할 때 들려온 엄마의 따뜻하고 기쁜 목소리에도, 주변 친구들과 앞으로 뭐 하고 놀지 이것저것 이야기하고 있던 그 순간에도 '오늘은 집에 가서 아무것도 안 하고 쉬자'는 생각이 가장 먼저 따라왔습니다. 분명 수능 끝나면 그날 뭘 할지 이것저것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그 순간이 다가오니 모든 생각이 사라졌습니다. 집까지 걸어가도 겨우 한 시간,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그 20분의 짧은 거리를 걸어가는 두 다리는 왠지 모르게 무거웠습니다.
왜였을까요. 다 끝났었는데, 물론 대학 진학을 위한 과정이 남았다고는 하지만, 그날만큼은 풀려났다는 기쁨을 만끽해야 했는데 말이죠. 무엇이 그 해방감을 억누르는 것이었을까요. 옆의 친구의 침울한 얼굴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인생의 3분의 2를 얽매어온, 적어도 3년의 시간을 붙잡고 있던 공부라는 매듭을 잘라내고 새로운 세상을 맞이했던 날이었는데 말이죠.
18살의 저는 그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집에 가서 뉴스를 보고 저녁을 먹으며 평범한 날을 보내고, 다음날 학교에서 친구들을 만난 저는 학교에서, 시내에서 즐거운 애프터 수능 라이프를 즐겼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니 수능 성적이 나왔고, 저는 점수에 맞춰서 나름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그날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잊혀진 그 때의 그 느낌을 저는 4년 뒤에 다시 느끼게 되고, 그 때가 되어서야 그 '해방의 모순'을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