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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어설퍼도 괜찮다

by 릴랴


아무리 하잘것없고 편협해서 없어 보인다 해도 순전한 내 생각을 표현해도 괜찮았다. 그걸 표현한다고 해서 계속 편협한 채로 머물 거라고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독창적으로 자신이 내고 싶은 색을 가진 채로 전혀 다른 색다른 의견을 낼 수 있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생각을 자유롭게 드러내면 전에 없던 새로운 생각을 해낼 수 있었다. 그게 아무리 부족해 보이는 의견이라 해도 그걸 온전히 내보이는 용기는 중요했다. 가끔은 너무 터무니없고 아이 같은 망상에 불과하더라도 자신이 보기에도 허점투성이였어도 그랬다. 너무 완벽해지려고 하다 보면 끝이 없으니까. 그건 지금 생각해도 늪과 매한가지로 보인다. 부족해 보였던 그 안에서도 얻어낼 수 있는 게 있다. 다른 사람과 비슷하게 보이기 위해서 혹은 누군가의 인정과 납득을 받기 위해 타인의 잘 한 부분만을 가져오는 데에는 조금 생각이 많았다. 내 것은? 내 생각은? 누군가와 비교해야만 온전하고 인용해야만 자신의 생각을 그럴듯하게 말하고 표현할 수 있는 걸까? 그들의 생각과 의견과 말을 그대로 써서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납득할 만한 이야기를 한다면 쉽게 녹아들 수는 있겠지만 나라는 사람도 같이 사라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애니메이션을 봐도 8, 90년대에는 그림체가 멋지고 이쁘기만 한 게 아니라 매우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주인공이 조연보다 성격이 삐딱하거나 모자란 경우도 많았다. 여자, 남자 할 거 없이 이쁘고 잘생긴 등장인물들이 스토리 진행에 의해서 죽기도 했고 주인공이 끝내 악의 세력에 이기지 못하고 끝나버리는 찝찝한 엔딩도 봤었다. 세기말 감성과 SF에 대한 상상이 많았던 것 같지만 지금 보면 그 설정들은 논리적으로 허점이 많이 보였다. 하지만 그 단순해 보이는 설정을 가지고 애니 줄거리는 이어졌고 허술하고 어딘가 부실해 보이는 세계관도 분명히 끌리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설정에 구멍이 있어도 그 나름의 세계관에 각각의 개성이 있었고 다 달라 보였다. 무엇이든 틀이 같아지고 설정이 비슷해지는 순간, 이야기의 새로움과 재미는 거기서 끝난다는 생각이 든다. 지루해지고 재미가 없어지는 건 정말 순식간이니까. 그러니까 지금의 거의 복제한 것 같은 설정들과 스토리 라인에 훨씬 멋지거나 이쁘고 세련된 그림체를 입혔지만 비슷하거나 같은 느낌을 주는 내용과 그림체가 많아 보였다. 그 부분을 어떻게든 자극적이고 잔인한 소재로 색다르게 느끼게 해주려고 하는 것 같았지만 왠지 이미 어디서 본 것 같다는 기분은 지울 수가 없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글을 보고 깨닫는 게 있으면 설령 한 줄이어도 그것만을 적고 싶다. 영향을 받았고 그로 인해 생각이 바뀌었다면 내가 그 말을 듣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무슨 영향을 어떻게 받았는지에 대한 글을 써도 된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영향을 준 사람이 너무 고맙다면 그 사람에 대한 찬사를 써도 되겠다. 내 글이 아무리 멋이 없고 날 것이고 정돈되지 않았어도 글의 길이가 길지 않아도 너무 애같이 철없는 생각이어도 그게 어떻다는 말인가. 너무 식상할까 봐 적을 말이 없을까 봐서 걱정하고 고민을 했다. 하지만 항상 멋지고 좋은 데를 갈 수는 없고 항상 친구를 만날 수는 없을 거고 항상 대단하고 좋은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을 거다. 늘 하던 반복되는 일들을 하잘것없게 만드는 건 바로 나의 그런 생각들이 더욱 그런 식으로 만들고 있을 뿐이었다. 글은 쓰기 나름이고 생각도 하기 나름이고 늘 하던 일을 지루하게 바라보느냐 시시각각 새롭고 다르게 바라보느냐는 내가 보는 관점에 따라서 갈리기도 한다. 물론 항상 생기 있을 수는 없겠지. 항상 깨어있는 시각으로 보기는 상당히 어렵다. 그렇다면 좀 죽어있는 눈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표현해 보면 안 되는가. 왜냐하면 전부 나의 귀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내가 느낀 거는 한 줄 뿐이고 적을 말이 없다면 그걸로 끝내도 괜찮다. 하다 보면 읽는 책이 많아지고 보는 정보가 많아지고 아는 바가 많아지면 점점 내가 적을 말들이 늘어날 테고 깨닫고 느끼는 바도 점차 많아진다. 그에 따라서 지금 알게 된 것들과 관련 있는 자신의 과거의 일들도 기억하게 되고 그때 느꼈던 감정이나 생각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일도 같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자기 자신으로 살고 모두가 내 색을 개성 있게 발휘할 수 있길 바란다. 모두가 다 다르고 내 진짜 감정과 느끼는 것, 내 생각은 하나밖에 없다. 타인이 인정해 주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내가 인정하고 납득할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나만이 발현해 낼 수 있는 색은 나만이 찾아낼 수 있다. 그리고 내가 그러고 있는지 아닌지는 자신만큼은 이미 똑똑히 알고 있다. 연습을 하면서 책의 좋은 부분을 필사하기도 하고 내가 보기에 잘 그린 그림들을 모작을 하기도 하지만 그건 연습이고 공부라는 걸 꼭 머릿속에 새겨두고 하는 편이다. 그것들을 어떤 식으로든 내 안에서 소화시키고 응용할 줄 알게 되면 내 식대로 하겠지만 좋다는 건 알겠는데 뭐가 뭔지 분간이 안 갈 때는 관련 자료조사를 더 하는 편이었다. 비슷한 다른 책을 몇 권 더 본다든지 왜 이런 구도로 그려지는지 그리는 연습을 더 해본다든지 했다. 반드시 꼭 성과만을 표현해야 하는 건 아니라서 연습하고 해내고 있는 과정을 나름대로 알리고 표현해서 그 과정을 더 빛나게 만들어줄 수도 있다. 그 경우에는 연습이라고 명시해야겠지만. 조금 더 자료조사를 많이 해서 생각을 정리하고 그것들을 잘 소화해 내서 내 식대로 표현을 잘해보고 싶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이나 무언가를 하는 과정에서 허점이 드러났을 때는 그게 허점이 맞다, 인정할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했다. 부끄럽고 무안하다고 화내지 말고 그냥 내가 그랬구나, 넘겨볼 수 있다면 그건 분명 좋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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