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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지점을 찾는 과정

by 릴랴


너무 들뜨는 것 같을 때는 자제하라고, 너무 가라앉으면 그럴 것도 없다고 조용히 속삭일 때가 많다. 자신에게 항상 하는 일이다. 어느 쪽으로 가든 손짓으로 까딱거리고 ‘조금 돌아오는 게 어때?’라고 말하고 있다. 너무 신중해지고 싶어지고 하나하나 완벽하게 해내고 싶어질 때는 그냥 놔뒀는데, 이러다가 언젠가 답답해서 죽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못 견디겠다는 생각이 들자, 조금 그만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고는 바로 실행을 하다가 큰코다치기도 하고 크거나 작은 실수들이 날 맞이했을 때는 터무니없이 위축되고 기죽기도 했다. 한마디로 잔뜩 쫄았다는 얘기인데. 방 안에 틀어박히는 시간을 조금 많이 가졌다. 사실은 지금도 잔뜩 쫄아있는데 그런 시간도 필요하기도 했다. 어쩌면 천지분간 못하던 시기에 이것보다 더 큰 위험을 맞닥뜨렸다면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 이런 경험들과 실수와 실패들을 하나도 맞닥뜨리지 못한 채 어느 날 크게 한방을 맞고 말았다면, 나는 그걸 그대로 맞고 어딘가로 날아가 버렸을지도 모른다. 시체도 못 찾았을지도 모른다. 이건 비유이지만 그만큼 처참했을 거라는 소리였다.



그런 위험한 것들은 이런 중간 과정과 크고 작은 실패의 경험들에서 알 수 있는 거였고 가끔은 도움 되는 위험신호를 위이이잉, 하고 울려주었기 때문에 도움이 될 때가 많았다. 물론 도움이 안 될 때도 많지만 그건 다 쓰기 나름이다. 직감이라는 게 그냥 생기는 스킬이 아니어서 연륜이나 경험들, 안 봐도 눈에 선하다는 말이나 대충 봐도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다,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것들은 그런 경험에서 말해주는 것들이었다. 실패도 실패 나름으로 잘 한번 써보겠다는 생각을 하는 편이 좋다. 경험으로 받아들이느냐, 실패로 남겨두느냐는 다 본인 몫이기 때문이다.


지혜와 지식은 조금 결이 다르다고 들었는데 지식은 대게 머리로 아는 내용으로 정보 전달에 가까운 이론적인 부분으로 그 양은 가히 끝도 없고 잊어버리면 사라져 버리고, 기록해서 남겨야만 왜곡이 되지 않는 그런 성질의 것이라고 한다면 지혜는 많은 시행착오와 산전수전을 겪어서 머리로 계산을 하기 전에 이미 대충 어떻게 돌아갈지 알고 어떤 식으로 대응하면 좋을지 감이 오고 몸으로 겪고 새겨진 수많은 데이터를 통한 감각적인 부분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그 경험이란 것 역시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할 때나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것이어서 기억을 잃거나 어떠한 이유로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사람에게는 제대로 작동되기에는 어렵다고 본다. 등불이 켜져 있을 때는 집 안의 집기가 보이지만 꺼져있을 때에는 눈앞의 아무것도 분간하기 어렵고 가늠할 수 없는 것과 닮아있다.



그리고 깨달음에 대한 건 솔직히 지금도 잘은 모르겠다. 다만 지금까지의 생각을 정리해 보자면 우주와 근원, 본질, 진리, 영원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성인의 반열에 오른 분들과 신적인 존재가 이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사라지고 몇 세기가 지났어도 그들의 말은 사라지지 않았고 여전히 그들의 말이 남아 우리에게 끊임없는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건 많은 신앙을 낳았고 본인이 나서서 끊임없이 선동하는 것도 아닌데도 그 가르침과 책과 양성했던 제자들을 토대로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다. 경전에 대해서 솔직한 생각으로는 수 세기가 지나도 펴보고 있는 베스트셀러 내지는 스테디셀러처럼 보이기도 했다. 사람의 논리로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은 믿음으로 해결이 되는 것들이 꽤나 놀랍다. 신의 존재 유무에 대한 의문을 차치하고 보더라도 그런 현상을 보고 있으면 이게 뭔가, 싶기도 했다. 그들의 말이 수 세기가 지났기 때문에 이미 많고 수많은 비슷한 말들을 낳고 아류작이 판을 칠 텐데도 여전히 그 원본을 찾는 사람들이 있고 원본에 대한 가치를 논할 수 없는 걸 보면 확실히 다르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다. 방대한 우주의 어떤 법칙 혹은 시스템 같다고도 생각한다. 너무 아득해서 인간의 지식으로는 차마 알 수 없고 따라잡을 수 없었던 압도적인 무언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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