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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리멀리 Feb 13. 2021

34- 일출과 석양 사이에서

13.2.2021

 인도에서 어떤 친구하고 뜨는 해와 지는 해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매일 새벽 네시에 일어나 따듯한 물을 마시고 명상을 한다는 그에게 물었다. 이유가 뭐냐고. 사십 대를 사는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도 예전에는 뜨는 해보다는 지는 해를 사랑했어. 그런데 어느 날 해가 뜨는 걸 봤지. 평생 이 장면을 못 보고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그때 나는 공감하면서도 이해할 수는 없었다. 내가 잊을 수 없는 장면의 해는 모두 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뜨고 지는 과정의 모든 해 중에서 석양을 가장 사랑했다. 더불어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는 날은 거의 없었다. 아침 해가 직선으로 드리우는 창 곁에서 눈이 부시면 안대를 집어 귀에 끼우고 꾸역꾸역 깨지 않는 날들이었다. 어쩌다 보는 굉장한 석양에 압도되어 늘 그리워하면서도 나는 해의 움직임에 신경 쓰지는 않았었다.


 생각해보면 해는 매일 뜨고 졌다. 내가 보지 않는 시간에도 해는 움직였다. 해를 신경 쓰면서 살다니, 그 순간 그를 조금 동경했다. 시간이 아닌 해를 신경 쓰면서 사는 게 멋지다는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지는 해를 향한 미련을 접을 수 없었고 숱한 날 지는 해와 밤하늘만을 쳐다보았다. 스페인에서 순례길을 걸을 때 잠깐 해의 동선에 따라 나도 잠들고 깼지만 그건 순전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걷기 위해서였으니까.


 나는 쭉 시간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시간이 되면 일어나 일을 하고 일을 마치고 집에 왔다. 그러다 문득 짐이 싸고 싶어 졌다. 완전한 이방인으로 낮과 밤을 실감하고 싶었다. 이렇게 어정쩡하게 사회에 편입되어 한 사람의 한국인으로만 살아가는 것에 지쳤다. 나는 진짜로 여행 체질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어쩌면 나는 진짜로 여행가인 걸까, 다시 지난 여행을 더듬었다. 동경하고 동경을 실감하던 날들을, 환대받던 나의 지난날들을, 돈을 버는 일보다 중요한 것들이 천지에 널렸던 시절을, 낯선 사람으로 존재했을 때 얼마나 사랑받았는지를, 버스에서 내려 낯선 곳에 발을 딛었을 때 얼마나 짜릿했는지를 생각하니 꾹 참고 견디던 나의 한 조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태국의 불교 공동체 시사아속이 그리웠다. 거기서 지낼 때는 없는 게 너무 많다고 여겼는데 사실은 있는 게 훨씬 많았다. 해를 따라 일어나 비질을 하고 바나나 꽃을 썰어 국에 넣고 단식을 하고 춤을 추던 일상도 일상이지만 그 짜릿한 환대를 나는 결코 잊을 수 없다. 불편한 생활에 꽉 채운 이주를 견딜 수 없어 며칠씩이나 일찍 떠났었지만 그보다 더 꽉 찬 환대는 다시없었다. 그들의 불심이었을까, 공동체성이었을까, 근원을 알 수 없는 뜨끈한 마음들이 지금 내가 있는 여기를 초라하게 만들 따름이었다.


 아픈 나를 쉬게 해 주고 배고픈 나를 먹게 해 주고 우리가 해야 할 모든 일들을 도와주었다. 낱말을 꾹꾹 눌러 태국식 억양으로 “씨유 어겐”이라고 말하던 아뻠이 생각났다. 그는 스승이면서 스승이 아닌 사람, 공부를 멈추지 않는 늙은 사람이었다. 나를 농장으로 데려가 개미가 잔뜩 묻은 망고스틴을 따서 손에 쥐어 준 깨우가 생각났다. 그것보다 맛있는 망고스틴은 아직 못 먹어봤다. 그들은 아픈 나를 단식원으로 보냈는데, 아침마다 족욕을 하고 하루 두 번 관장을 했다. 올리브를 짠 기름과 과일 주스를 마시고 출신 국가의 춤을 함께 추었다. 따듯한 똠얌과 끓인 쌀을 조금씩 먹었다. 나무에 열린 탐스러운 그린망고를 따 먹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단식이 끝나고 나는 괜찮아졌고 점차 익숙해지는 중이었지만 그 불편함 들을 참기는 너무 어려웠다. 맨발로 하는 야외 생활, 나에게만 몰려드는 모기, 너무 먼 욕실과 그 안에 사는 거미들, 겪어본 적 없는 더위가 그것이었다. 아무래도 인도에 가기 전인 탓이었을지도 모른다. 인도를 겪고 나서 태국에 갔다면 좀 더 오래 지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개미 한 마리도 죽이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죄를 안 지으려고 그렇게 애쓰는 사람들은 개신교 외길 인생 이십여 년 만에 처음 봤다. 다른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낯선 사람을 아껴주는 진짜 마음들은 해가 수백 번 뜨고 졌는데도 잊히지 않는다.


 짐을 싸고 싶다. 나는 아직 지는 해를 보고 전율하지만 뜨는 해를 못 보는 게 아쉽긴 하다. 아니, 뜨는 해든 지는 해든 그걸 따라 살고 싶다. 환대받고 싶다. 낯선 사람이고 싶다. 어쩌면 나는 여행가인 걸까. 도피와 도전을 나란히 하는 나의 유일무이한 출입구를 사랑한다. 몽골의 고비에서 진한 석양을 마주 보고 섰을 때, 해를 잡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지평선을 향해 달렸었다. 처음으로 그렇게 신이 나서 뛰었다. 스코틀랜드에서 온 어떤 연인은 그 앞에서 입을 맞췄고 캐나다에서 온 어떤 애는 사진을 찍었다. 대만에서 온 어떤 애는 나랑 같이 뛰었는데 나는 걔보다 오래 뛰었던가, 기억이 잘 안 난다. 아무리 뛰어도 지평선은 안 가까워졌고 나는 멈추어 서서 해가 질 때까지 해를 봤다. 달이 떴다. 낙타가 울었다. 지구에 산다는 것을 실감했다. 아무래도 나는 여행가로서, 지구에 계속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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