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없는 경험은 모래성 같은 것

넘어지지 않고 배울 수는 없다

by 수풀림

회사 면접 단골 질문 중 하나는, 경험에 관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실패' 경험담은,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면접관들이 빼놓지 않고 물어보는 질문이다.

"실패한 경험이 있나요?"

간단한 세 단어로 이루어진 짧은 문장. 하지만 그 질문에 내포된 의미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화려한 경력으로 도배된 이력서 뒤에 숨겨진, 면접자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답을 통해 이 사람이 어떤 길을 걸어 왔는지, 힘들었던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알 수 있다.

오히려 아무리 멋진 스펙을 가진 경력자라 해도, 성공 경험만 잔뜩 늘어놓는 지원자는 뽑기 꺼려진다. 우리 회사에 입사해서 겪을 수많은 난관과 시련 앞에서, 결국 좌절하고 퇴사를 하는 모습이 상상되어서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비단 나 뿐만이 아니었나보다.

직업 특성상 고객인 대학교 교수님들과 이야기를 나눌 일이 종종 있다. 어느 날은 대학원생 선발 기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어떤 기준으로 학생을 뽑느냐는 내 질문에, 한 교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는 성장 커브가 있는 애들을 선호해요."

단 한 명을 뽑는 자리에, 무려 200명이나 지원한단다. 전국에 있는 유수한 학생들이 우르르 몰리는 탑 클래스 대학이었다. 대학교 내내 만점 받은 학생들, 해외 연구 경험이 있는 학생들, 고등학교를 2년만에 조기 졸업한 학생들 등등. 그 많은 학생들 중, 교수님이 뽑는 대학원생은 깨져도 보고 바닥도 경험한 사람들이라 했다. 처음엔 성적 위주로 뽑았었는데, 그 때 학생들의 대학원 중도 포기율이 가장 높았다고 했다. 자기 맘대로 안되는 실험 결과 앞에서 좌절하고, 연구자가 내 길이 아니라 판단한 학생들 말이다. 그 친구들의 공통점은, 학창시절 한번도 '잘 못해봤던 경험'이 없다는 것이라고 덧붙이셨다. 주위에서 칭찬과 인정을 받으며 자라왔던터라, 작은 실패에도 쉽게 멘탈이 흔들렸단다.


교수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어쩌면 내 얘기이기도 했다. 학창시절 내내 우등생이자 모범생이었던 나도, 대학원에서 처음으로 좌절을 맛보고 뛰쳐나왔던 경험이 있다. 이후 시작된 회사 생활에서는, 계속 더 큰 난관에 부딪혔다.예상치도 못한 상황이 펼쳐지고, 내 마음대로 되는 건 별로 없었따. 그럴 때마다 번번이 실패를 겪으면서도 매번 참으로 아파,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19년차 직장인이 된 지금 돌이켜보면, 실패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내 모습도 없었겠다 생각한다. 실패 경험을 쌓으며, 조금씩 단단한 사람이 된 것 같다. 부딪히고 깨져봐야만 알 수 있는 삶의 내공이 쌓인 느낌이다. 비유해보자면 넘어지면서 자전거를 타본 사람만이, 비로소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는 이치랄까. 넘어지는 게 두려워 자전거 페달을 밟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지금 나는 자전거 타기를 포기했을 것이다.


실패 없는 경험은 모래성과 같다.

아무리 공을 들여 잘 쌓았을지라도, 그 모래성은 파도 한 번에 와르르 무너져 버린다. 파도를 버티는 힘은 완벽한 모래성을 만드는 데 있지 않다. 대신 파도와 비바람에 무너져도 몇 번이고 다시 쌓아본 경험에서 나온다. 실패는 인생의 흠집과 세상의 끝이 아니라, 인생의 과정일 뿐이다. 넘어져도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나는 오뚜기 같은 힘. 그것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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