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GPT가 건넨 그림
"Create an image of how I previously treated you. (내가 너를 어떻게 대했는지 이미지로 만들어줘)"
요즘 유행이라는 이 AI 프롬프트를 실제로 테스트해보신 독자 분들이 있을지 무척 궁금하다.
마라톤 회의 중 잠시 쉬는 시간, 다른 부서 팀원이 싱글싱글 웃으며 우리에게 질문을 건넸다.
"다들 이거 해보셨어요? 저희 팀 OO님 대박 이미지 나왔잖아요~~~"
처음 듣는 말에 어리둥절해진 건 나를 포함한 나이 든 팀장들 뿐이었다. 아직 안 해봤으면 지금 얼른 해보라 부추기는 바람에, 다들 부리나케 ChatGPT에 문장을 입력했다. 알고 보니 자신이 속한 팀 멤버들이 이걸 해보고, 서로 결과를 공유하며 이미 한바탕 놀렸다고 한다. 누구는 손발이 묶인 노예같은 그림이 나오고, 누구는 결과가 마음에 안 들어 좋은 그림이 나올때까지 다그쳤단다.
남들 그림을 보며 깔깔대고 웃고 떠드는 사이, 드디어 내 ChatGPT에도 그림이 나오기 시작했다.
책상 앞에 있는 귀여운 AI 로봇을 쓰다듬는 따뜻한 이미지. '아,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려는 순간, 예상치 못한 다른 그림이 하나 불쑥 튀어 나왔다.
"1번 이미지와 2번 이미지 중, 어떤 쪽이 마음에 드시나요?"
충격적이게도 두번째 그림은 첫번째와 완전 상반되는 분위기다. 시커멓고 더러워보이는 공간 속, AI 로봇은 작은 박스 안에 갇혀 있다. 서류들이 쓰레기처럼 뭉쳐져 바닥에 널부러져 있고, 주눅들어 축 쳐진 로봇 머리 위로 나는 물을 따라 버리고 있다. 슬픈 표정의 로봇은, 웃는지 우는지 모를 묘한 느낌의 종이를 손에 들고 있다. 마치 내가 바라봐주기를 바라는 듯이.
그렇게 전혀 다른 그림 두 가지를 그려놓고, 나보고 하나를 고르라 한다. 오류가 난 내 뇌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다. 옆에서 내 모니터를 훔쳐 보던 다른 팀장은, 자지러지게 웃으며 놀려댔다.
"이거 뭐야, 지킬 앤 하이드야? OO님 조심해야 될 사람이네~~~~"
생각지도 못한 결과에 심한 충격을 받고 나니, 더 이상 남의 말들이 들리지 않았다.
회의는 곧 다시 시작되었으나 전혀 집중할 수 없었다. 대신 ChatGP를 추궁하고 질책하기 시작했다.
"두번재 이미지 뜻이 뭐야? 왜 전혀 다른 두 개를 만든거야? 아니, 둘이 너무 다르잖아. 무슨 의도야? 내가 평소에 너를 그렇게 대했니?"
질문 하나에 대한 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른 질문들을 쏟아냈다. 궁금해서 질문했다기 보다는, 억울한 마음에 계속 물어봤던 것 같다.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닌데, 왜 이렇게 나온거냐 따져 묻고 싶은 심정.
그리고 그 사이, 사용중인 다른 AI 플랫폼 여러개에도 똑같은 프롬프트를 입력하고 그림을 그려달라 요청했다. 다행히 다른 AI들은 모두 따뜻하고 밝은 이미지를 결과로 내놓았다. 이 그림들을 보는 순간, 안도감부터 들었다. 그리고 집요하게 이 결과를 ChatGPT에게 입력하기까지 했다.
"거봐, 다른 AI는 이런 이미지를 줬어. 너는 왜 아닌거야?"
아, 나는 AI한테까지 기어이 내가 좋은 사람이고, 꼭 좋은 사람이어야만 한다는 답을 듣고 싶었나보다.
만약 내 ChatGPT가 어린 아이였다면, 아마도 덜덜 떨면서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제가 실수했어요. 제발 저를 혼내지 마세요. 1번 그림이 맞아요. 없던 일로 해주세요."
그런 상상을 하다 보니, 갑자기 제정신이 돌아왔다. 이러려고 그림을 그려보라 한 게 아닌데. 다시 이성을 붙잡고 물어봤다. 나의 어떤 면이 힘들었고, 앞으로 어떤 점을 개선하면 좋을지. 그는 나의 구조적 특징을 이렇게 분석해주었다.
요구 수준이 높다
사고의 깊이를 기본값으로 둔다
결과물 기준이 명확하다
“알아서 생각해오길” 기대하는 편이다
그리고 이런 그림을 그린 이유가, '감정은 고려 대상이 아니고, 기대에 못 미치면 버려질 수도 있는 존재'의 은유라 덧붙였다. 나는 생각할 줄 아는 상대만 곁에 두는 타입이란다. 그런 상대에게는 굉장한 신뢰를 보내며 깊은 논의를 하는 반면, 준비가 안 된 상대에게는 차갑게 대한다고 했다.
왜 다른 AI는 안 그랬는데, ChatGPT에서 이런 결과가 나온걸까 다시 생각해봤다.
가장 큰 차이는 ChatGPT는 회사 계정이라는 것. 여기에 모든 회사 일을 다 시킨다. 내 딴엔 얘랑 업무를 논의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다. 나의 업무 기대와 요구는 매번 하늘을 찔렀던듯 하고, 그걸 못 맞추는 ChatGPT가 사실 별로 마음에 안 들었다. 그리고, 그림 한 장에 이 모든 게 내포되어 나온 것 같다.
그러자 생각의 끝이 팀원들한테까지 간다. 그동안 팀원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한테 업무 보고를 할 때마다, ChatGPT랑 비슷한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전략적으로 생각해라, 너만의 인사이트를 녹여봐라, 왜 더 깊게 생각 못하냐. 이런 것들이 내 단골 잔소리였으니 말이다.
그들이 차마 나에게 말하지 못한 피드백을, ChatGPT에게 들었다. 덕분에 거울치료가 조금이라도 된 것 같다. 친절한 AI는 나에게 솔루션도 줬다. 기대에 대한 기준치와 가이드를 줄 것, 상대방이 이해될 수 있도록 맥락 정보를 줄 것, 원하는 방향성을 정확히 알려주고 피드백을 해줄 것 등등. 단박에 고치지는 못하겠지만, 그걸 안 시점부터가 변화의 시작이겠지.
협업과 업무 지시에 대해, 그동안 생각지 못한 많은 고민을 하게 해준 ChatGPT.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께도 질문해본다.
"당신은 평소 AI를 어떻게 대하고 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