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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은 장기 주식투자다

명품백 대신 MBA

by 수풀림

남편은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재차 질문했다.

"진짜로 가려고? 꼭 가야겠어?"

코칭을 더 배우고 싶어 MBA를 진학하겠다 선언한 직후였다. 사실 예전부터 말은 계속 해왔지만, 반신반의 했나보다. 저러다 말겠지 싶어서. 하지만 면접을 보고 합격했다 말하자, 얼굴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휴...차라리 그 돈으로 명품백을 사. 아니면, 유럽으로 여행을 가던가."

남편다운 현실적인 발언이었다. 2년 동안 내야 할 학비를 계산하면, 그렇게 말하는 것도 이해가 됐다. 다만 나의 관심사는 전혀 다른 쪽으로 향해 있을 뿐. 그는 이내 다른 이유를 들며 나를 뜯어 말렸다.

"금요일까지 야근하고 와서, 토요일 하루 종일 수업을 들을 수 있겠어? 안 그래도 맨날 피곤하다면서?"

그의 어떤 감언이설에도 내가 뜻을 굽힐 생각이 없어보이자, 남편은 이내 고개를 저으며 술만 홀짝였다.


나도 그 모든 걸 고려해보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공부를 해보고 싶은 열망은 3-4년전부터 있었으나, 두려움에 아직 시작도 못했을 뿐이었다. 일 때문에 바쁘니까, 돈이 많이 드니까, 너무 멀어서 등등의 이유로 차일피일 미뤄 오기만 했다. 토요일의 달콤한 늦잠은 쉽게 포기하기 어려웠고, 직장인인데 굳이 또 뭘 해야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도전을 해보려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AI 시대가 오기 전에도, 직장인의 삶은 결코 안정적이라 말하기 어려웠다. 우리 회사는 원래부터 정년 퇴직이라는 개념도 없었고, 권고 사직이나 보직 변경은 흔하디 흔한 풍경이 되었다. 조직 개편은 수시로 일어났고,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지는 직무나 사람이 생겼다. 그 당사자가 내가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 회사 밖으로 나오면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바보가 될 수 있다는 걱정은 나를 괴롭혔다.

어쨌든 나는 그 불안을 원동력 삼아, 걱정만 하는 대신 나만의 길을 찾아야겠다 생각하고 실행에 옮기기로 뒤늦게 결심했다.


술상 앞에서 한숨만 푹푹 쉬는 남편에게 큰 소리를 떵떵 치며 말했다.

"걱정마, 60살 이후에는 내가 평생 먹여살려 줄게."

MBA 주제로 대화한 이후, 처음으로 남편이 웃었다. 코웃음인지 비웃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웃음은 긍정의 신호 아닌가. 그 기세로 다음 말도 이어갔다.

"여보, 이걸 장기 주식 투자라고 생각하면 돼. 당장은 손해 보는 것 같고, 수익이 안 날수도 있어. 그런데 10년 동안 눈 감았다가 뜨잖아? 그 땐 깜짝 놀랄걸?"

남편은 그제야 알겠다고 대답했다. 생각해보면 장기 투자가 맞는 것 같단다. 지금 하는 무언가가, 언젠가는 나비 효과로 돌아올지 누가 알겠는가. 우리 가족이 몰고 다니는 자동차도, 4-5년간 매달 조금씩 투자한 주식 수익과 적금의 힘으로 구입한 것이다.

누구나 적은 노력과 시간, 금액으로 단기간의 큰 수익을 원한다. 나도 그렇다. 하지만 그건 운 좋은 몇 명의 얘기라 생각한다. 대신 나는 가늘고 길게, 평생동안 내가 나를 먹여 살릴 다른 방법을 이 배움을 통해 찾겠다 선언했다.


지인과 동료들에게 MBA에 진학한다 말하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뭣하러 MBA를 해? 요즘 한 물 갔잖아. 나와서 뭐하려고?"

사실 배움의 끝에 뭐가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ROI = 투자 대비 수익률. 이걸로만 따지면 손해 보는 장사 맞다. 게다가 힘들다고 중도 포기할지도 모르고, 막상 배우다보니 이 길이 내 길이 아니란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런데 누군들 알겠는가. 해보지도 않았는데. 남들이 겪은 일은 참고 자료만 될 뿐, 내가 오롯이 겪어 봐야 알 수 있는 깨달음이 있는 것이다. 설령 배우다 때려칠지라도 뭐 하나라도 건질 수 있다면 나는 충분하다. 국제 자격증을 취득한 코치가 되고 싶어 택했다기 보다는, 지금의 나와는 다르게 살고 싶어 내린 결정이다.

배움이라는 과정 자체에 초점을 맞추면, 결과는 인생에서 장기적으로 나타날 것이라 믿는다. 또한 배움의 진짜 ROI는 '가능성의 확장'에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나로는 상상할 수 없는 내일의 나를 만들어가는 것. 그게 바로 배움을 통한 장기 투자의 진짜 묘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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