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직장인 연말결산

셀프 회고

by 수풀림

연말이 되면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올해를 돌아보고 내년 계획을 세운다.

우리 부서의 성과는 어땠는지, 나는 어떤 기여를 했는지 등등. 이 평가는 곧 연봉과 연결되니 대충 넘길 수 없다. 셀프 평가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다 같이 모여 숫자와 지표를 놓고 냉정한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하지만 KPI를 따라가다 보면, 문득 허무해지는 순간이 온다.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 고객의 사정으로 프로젝트가 엎어지기도 하고, 반대로 내가 크게 애쓰지 않았는데 운 좋게 성과가 굴러들어온 적도 있었다. 데이터와 숫자는 공정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늘 설명되지 않는 맥락들이 남는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객관적 성과 말고, 한 사람으로서, 직장인으로서의 나는 어떻게 평가해볼 수 있을까.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적어도 나에게는 의미 있었던 것들 말이다.


그래서 올해는 숫자 대신 다른 연말 결산 질문을 떠올리며, 한 해를 마무리해보려 한다.


1. 회사에서 스스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 동료로부터 이런 피드백을 받은 적이 있다.

"제 얘기를 너무 잘 들어주세요.", "너한테 말하고 나니 생각이 정리된다.", "저를 이해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들의 고민을 그저 들어주었을 뿐인데, 심지어 답은 자기들이 말했을 뿐인데도, 나에게 고맙다 했다. 일을 잘했다는 칭찬보다 훨씬 뿌듯했다. 상대방을 진심으로 대하는 내 마음을 알아준 것 같아서. 그들에게 하고 싶었던 잔소리나 조언을 꾹꾹 참았던,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피드백을 받은 것 같아서. 무엇보다도 '감사하다'는 한 마디가 나에게 너무 따뜻하고 감동적으로 다가와서...


2. 올해 가장 힘들었던 일은 무엇이고, 그 일을 겪은 나는 이전과 무엇이 달라졌을까?

- 부서를 옮기고 처음 해본 프로젝트에 리더로 투입되었다. 마감 시간은 짧은데 어떻게 리딩해야될지 눈앞이 깜깜했다. 나도 잘 모르는 일이라 어디에 물어보고 싶어도, 눈치가 보였다. 다행히 구세주처럼 동료 팀장이 먼저 손을 내밀어주어,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 후 결심한 건,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것. 그리고 솔직하게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필요할 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도 사람이 하는거고, 뭐든 혼자할 수는 없더라. 아니, 혼자 하면 딱 내 우물 크기만큼의 성과만 나왔다.


3. 가장 나답게 일하고 있다고 느낀 순간과 이유는?

- 강점분석을 통해 알게된 내 강점 1위는 개별화(indivisualization) 였다. 처음 이 결과를 보고 단어 뜻을 몰라 한참 찾아봤는데, '개개인의 고유한 특성을 알아차리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협력해 생산적으로 일할 수 있는지를 알아내는 재능'이라고 한다.

나답게 일한다 느낀 순간도, 이런 나의 재능이 발휘되었을 때였다. 동료들이 모여 협업을 하는 프로젝트를 할 때, 마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듯 재미났다. 때론 불협화음이 생기기도 했지만(아니, 생각보다 자주), 각자가 추구하는 방향과 마음속 니즈를 파악하며 조금씩 맞춰 나갔다. 그 과정이 결코 싫지 않았고, 그런 조율을 통해 더 멋진 화음이 만들어질 때 희열을 느꼈다.


4. 직장인으로서 올해의 나를 정의하는 키워드 세 가지

- 적응, 배움, 협업

1월부터 새로운 부서로 옮겨,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 부서의 업무와 일하는 방식을 배워야 했다. 7년간 한 부서에서 비슷한 업무를 하다가 새로운 일을 하려니 적응하는데 어려움도 있었다. 그러나 새로움에서 오는 신선한 자극이 나한테는 필요했나보다. 재미도 있었고, 이전의 나에게 보기 힘들었던 긍정적인 시야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업무 특성상 타부서와 협업할 일이 계속 생겼는데, 이 과정에서도 배울 점이 많았다. A부서와는 어떻게 일하면 좋을지, B부서가 원하는 건 뭔지 등등을 파악하면서 나도 조금은 업그레이드 된 것 같다.


5. 26년 12월 31일, 나를 돌아봤을 때 어떤 상태면 가장 만족스러울까?

- 흠...어려운 질문이라 한참을 생각하게 만든다. 다른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내 멘탈을 지킨 상태로 한 해를 보내면 가장 좋을 것 같다는 점. 회사를 다니면 별별 일이 다 생기는데, 이때 멘탈이 흔들리며 모든 게 무너졌던 경험을 했다. 내가 이룬 것이나 가진 것을 부정했고, 번아웃으로 무력감이 찾아왔다.

멘탈을 건강하게 유지하면서 나답게 일하는 내년 한 해를 보내는 게 나의 소망이다. 뻔한 말 같지만 그러기 위해선, 해가 되는 것을 멀리하고 도움이 되는 것을 조금 더 가까이 해야겠다. 특히나 스마트폰과 하루 30분이라도 작별하고, 조금씩이지만 꾸준히 하고 있는 지금의 루틴들을 강화해야겠다. 운동, 글쓰기, 독서 등. 몸과 마음의 근육을 단단히 만들어 나를 지키고 성장해나가고 싶다.


쓰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눈에 쉽게 띄지 않는 이런 것들이 올 한 해 나를 지탱해주었구나. 나를 좀 더 나답게 살게 만들어주었구나. 남들 눈에는 별거 아닐지 몰라도, 나에게 소중한 가치들이다. 그리고 이렇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준 동료와 지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

점점 나이를 먹고 직장인의 연차가 쌓이니, 성과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책임감 있게 일을 대하는 진심, 화나는 순간에도 다정함을 발휘하는 태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먼저 이해하려는 마음 등이 말이다. 이런 것들은 성과표에는 남지 않지만, 분명 나라는 사람 안에는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을 것이다.

독자분들께도 권하고 싶다.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보시길. 아마 생각보다 많은 소중한 순간들이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여려분께, 올해 정말 고생 많았고 잘 해왔다 말씀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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