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남성 육아휴직 시대

이게 원래 당연한거였지

by 수풀림

"아직 모르셨어요? 요즘 우리 회사에서 대 유행이잖아요."

작년 말 회사 송년회 자리, 오랜만에 만난 동료들과 안부를 나누다 처음 듣게 된 사실 하나. 내가 아는 몇몇을 비롯해 다른 부서 동료들까지, 최소 10명 정도의 남성 직원들이 육아휴직을 쓴단다. 아니, 이미 육아휴직 중이거나, 심지어 복직한 동료들도 있다고 했다. 나는 깜짝 놀라 반문했다.

"헐, 우리 회사에서 그게 가능한거였어?"

내가 속한 회사는 외국계 기업이라 비교적 열린 문화를 갖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남성 직원들은 육아휴직 앞에서 늘 망설였다. 그동안 육아휴직을 갔던 2-3명의 남성 동료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퇴사를 앞두고 휴직 카드를 내민 케이스였다. 어차피 안 돌아올 것을 염두해 두고, 이직 전 완충 시간을 마련한 정도. 그러니 지금까지의 우리 회사에서의 남성 육아휴직에 대한 개념은, 딱 이런 느낌이었다.

'갔다 오면 내 자리 없어지겠구나.'


유행에는 항상 선구자가 존재한다.

"저 1년간 육아휴직 쓰겠습니다."

남성 육아휴직의 불모지였던 우리 회사에서, 이 말을 처음 꺼냈던 직원은 얼마나 큰 용기를 냈을까. 정부에서는 돈과 시간을 투자해 제도 정착을 장려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적용하는 건 완전 다른 문제다. 우리 회사에서는 많은 남성 직원들이 영업, 서비스 엔지니어, 기술상담 등의 고객 대상 업무를 맡고 있던 터라, 그들의 공백기에 대한 우려가 크다. 설령 그 기간동안 대체 인력을 뽑는다 하더라도, 업무 특성상 대체가 쉽지 않아서다. 이런 상황을 알고 있으니 직원들도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하고, 팀장들도 절대 권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는 먼저 용감하게 입을 열었다. 맞벌이를 하는 아내와 서로 번갈아 육아휴직을 하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을지도 모르고, 혹은 아이와 더 많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이런 선구자 덕분에, 그 후로 다른 직원들도 전보다 덜 눈치보면서 육아휴직을 쓰겠다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한 명이 두 명이 되고, 다섯 명이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바야흐로 남성 육아휴직 대 유행이 시작된 것이다.


이들을 바라보는 팀장이나 리더십의 시선은 어떨까.

팀장들과 대화를 하다가 이 유행을 아냐고 물었더니, 한 명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

"나 요즘 진짜 골치 아프다. 우리팀에도 벌써 두 명이나 간다고 하던데, 어떻해 해야되냐."

육아휴직을 쓰는 당사자와 팀장의 간극은 하늘과 땅 차이다. 당장 팀에 대체 인력이나 자원이 없으니, 걱정부터 된다. 여성 직원들이 만약 임신을 했다고 하면, 그때부터 육아휴직까지의 시기가 대충 짐작이 되고 미리 대책도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갑작스런 남성 직원의 육아휴직 선언은, 준비되지 않은 팀장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일 뿐이다. 그렇다고 가지 말라고 말릴 수도 없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만 하고 있을 수밖에.

게다가 팀장들은, 육아휴직이라는 걸 경험해본 세대가 아니다. 내 경우 15년전 아이를 낳고 출산휴가 3개월을 가면서도 엄청 눈치가 보였다. 심지어 당시 동료들은 업무 걱정으로, 출산 후 한 달만에 복직하기도 했다. 회사에서 처음으로 육아휴직을 가겠다 한 여직원을 보는 시선도 곱지 않았다. '어떻게 책임감도 없이 육아휴직을 가냐'라고 내가 동료들에게 말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지금은 어떤가.

여성 육아휴직은 보편화되었고, 누구도 그들에게 왜 바쁜데 육아휴직을 쓰냐고 묻지 않는다. 변화란 게 참 신기하다. 예전에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던 일이, 지금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처음에는 조직이 흔들릴까 걱정했지만, 결국 회사도 방법을 찾았고 사람들도 익숙해졌다. 누군가의 용기가 쌓이고 쌓여, 제도가 현실이 된 것이다. 그때 내가 '책임감 없다'고 말했던 그 여직원이, 결국 모든 여성들을 위한 길을 닦아준 셈이다.

그러니 얼마 후엔 남성 육아휴직을 두고 팀장이 골치 아프다고 말하는 것도 옛날 얘기가 될지 모른다. 이제 그 무대가 남성에게로 옮겨온 것 뿐이다. 그때가 되면 미리 대비해 업무 분담도 자연스럽게 조정하는 시스템이 자리잡으리라. 남성 육아휴직이 뉴스거리가 되는 게 아니라,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올 것이다. 비록 그 길로 가는 과정은 조금 느리고, 불편할지라도.


이 글을 읽고 계시는 팀장님들에게도 물어보고 싶다.

여러분은 남성 팀원의 육아휴직에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으신지 말이다. 남성 육아휴직 시대는 이미 우리 눈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아직 우리회사는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곧 다가올 미래이자 이는 선택이 아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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