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완벽
오늘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19년차 직장인인 저의 고민을 여러분께 털어 놓으려 해요.
그럴 때 있잖아요.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싶어도 차마 부끄러워, 공감받지 못할까봐 망설이는 순간 말이에요. 익명의 공간을 빌어 용기내어 봅니다.
커피 한 잔 앞에 두고, 잠시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겠어요?
본격적인 얘기에 앞서, 먼저 질문을 드려 봅니다. 혹시 이런 경험들, 여러분에게도 있으신가요?
보고서를 10번 넘게 수정했는데도 '아직 부족해' 라며 제출을 미룬 적이 있다
회의 발표 전날 밤새워 준비했는데도 '더 준비할 게 있을 텐데' 하며 불안하다
상사가 "이 정도면 충분해"라고 말해도 '아닌데, 조금 더 완벽하게 해야되는데"라고 생각한다
80% 완성도의 일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게 부끄럽고 두렵다
"대충 해도 돼"라는 말을 들으면 오히려 더 스트레스받는다
칭찬을 받아도 내 기준에 못 미친 결과가 나오면 별로 만족스럽지 않다
다른 사람의 '적당히'나 '설렁설렁'하는 모습을 보면 답답하다
일이 잘 풀려도 '다음엔 더 잘해야지' 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잘 해낸 일보다, 못한 한 가지가 하루 종일 신경 쓰인다.
이 예시에 몇 개나 "어, 이거 내 얘기잖아?"라고 생각하셨나요?
절반 이상 해당된다면, 어쩌면 저와 꽤 비슷 길을 걸어오셨을지도 모르겠어요. 바로 완벽주의로 향하는 가시밭길 말이죠. 아프고 따갑고 힘든데도, 이게 맞는 길인 것 같아 꾹 참으며 걸어가고 있잖아요.
사실 저는 오랫동안(어쩌면 지금도 여전히) 이 상태를 당연하다 생각했어요.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나 선생님 칭찬을 받기 위해서, 직장인이 되서는 회사에서 일 잘한다는 인정을 받기 위한 필수조건이었던거죠. 이왕 하는거 잘하면 좋으니까, 그 잘함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스스로를 참 많이 다그쳤던 것 같아요. 학창시절 90점의 성적을 받으면, 왜 10점이나 틀렸을까 생각하며 자책했어요. 마케팅 일을 수년간 하면서 성공의 경험도 쌓은 것 같은데, 저에게 남은 기억은 왜 죄다 망친 캠페인 뿐일까요.
이런 마음 상태가 계속되면, 그토록 원했던 주위의 칭찬과 인정에도 별로 기쁘지 않더라고요. 잘했다는 얘기를 들어도, 내 기준에는 못 미치니 만족스럽지 않은거죠.
그렇게 열심히 완벽으로 향한 길을 달리다보니, 어느날 갑자기 허무한 마음이 들더군요.
특히나 그 감정은 팀장이 된 이후에 더 깊게 찾아온 것 같아요. 팀을 이끌 때 올라오는 완벽주의는 오히려 더 독이 되었죠. 팀원들은 독립된 인격체로 자율성을 가지고 일할 자유가 있는데, 저는 더 잘해야된다고 채찍질을 하곤 했거든요. 성과를 향한 내 기대치와는 다르게, 상황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일쑤였고요.
그런 상태로 몇 년을 보내다보니, 이렇게 아둥바둥 살면 뭐하나 싶은 공허함이 불쑥 찾아왔어요. 번아웃인지, 우울감인지 구별이 안되는 느낌이었어요. 모든 게 제 탓인 것 같아, 스스로를 향해 화살도 많이 쐈어요. 그렇게 해야만 내가 모든 일을 그르쳤다는 죄책감이 조금이라도 줄어드는 것 같아서요.
다행히도 제 곁에는 저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준 동료들과 코치님이 있었어요. 땅속 저 깊숙히 침전하는 저를 밖으로 다시 이끌어주었죠. 그들은 하나같이 제게 이렇게 말해주었어요.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고, 이제는 남들보다 먼저 나 자신을 돌봐도 괜찮다고요.
전에는 주위에서 아무리 얘기해도 전혀 들리지도 않던 그 말이 제게 꽂힌 순간, 처음으로 깨달았어요.
제가 그토록 추구해왔던 완벽함이라는 게, 사실은 완벽한 허상이었다는 걸 말이에요. 그러한 완벽주의의 실체는 '두려움'이고요. 실패할까 봐, 실망시킬까 봐, 무능하다고 여겨질까 봐 하는 두려움 말이에요. 그 두려움이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수년간 저를 지배하고 있었던 거죠.
게다가 제가 가진 완벽에 기준들은 대부분 저만의 착각이었어요. 상사나 고객이 이 정도를 기대할 것이라는 생각은, 어찌 보면 근거 없는 추측이었더라고요. 혼자서 기준을 높여놓고, 스스로를 그 감옥에 가둬놓은 셈이었죠.
물론 완벽주의가 안 좋은 면만 있는 건 아니에요. 저는 농담삼아 불안과 완벽주의가 저의 직장생활 8할이라 말하곤 하거든요. 저를 19년차까지 오게 한 동기 부여 요소이자, 그렇게 떼어내려고 해도 잘 안 떨어지는 녀석들이죠.
여기까지 글을 읽어주신 저와 비슷한 성향의 완벽주의자 독자님들을 위해, 저에게 잘 먹힌 완벽주의 치료법도 살짝 풀어보려 해요.
우선, 저에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마감'시간이었어요. 스스로 정한 마감 말고,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강제 마감 말이에요. 리포트 제출 기한, 고객 PT 제안 마감 기한, 회사 시스템 입력 마감 등등. 조금 더 잘하고 싶은 마음도, 마감 기한 앞에서는 내려놓을 수 밖에 없죠. 완성도와 상관 관없이 말이에요. 물론 아쉬운 마음이 너무 크지만, 뭐 어쩌겠어요. 당장 제출해야 되는데. 한 마디로 "Let it go~~~" 하게 되는 순간이에요.
두번째는 목표를 최대한으로 작게 잡기에요. 내가 생각한 목표가 100이라면, 7-80정도로 낮춰보는 거죠.쉽진 않아도, 하다 보면 늘어요. 아마도 주위에선 80만 달성해도 대단하다고 할거에요. 현실과 목표 사이의 간극이 크면 클수록 괴로움이 커지니, 의식적으로 목표를 작게 가져가 보세요. 비단 회사 일 뿐만이 아니라, 운동도 마찬가지에요. 계단 1층 오르기, 5분 산책하기 등등. 목표가 너무 거대해 다가갈 엄두도 안 나는 것보다 훨씬 낫더라고요.
혹시 지금 이 글을 읽으며 '나도 그래'라고 생각하고 계신다면, 혼자가 아니라는 걸 기억해 주세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그리고 우리 모두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말이에요. 우리는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고,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