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커피챗 - 결국 남는 건, 사람

by 수풀림

임원이 된지 이제 막 일년이 지난, 전 직장동료 A상무의 고백으로 오늘의 커피챗을 시작해볼게요.

그는 요즘 딜레마에 빠졌다며 괴로운 얼굴로 입을 뗐어요.

"이번에 팀원평가 바닥점수 받았어. 작년보다 20점이나 떨어졌다더라. 나 어쩌냐."

다른 임원들 점수에 비해 현저히 낮을 뿐더러, 전임자 평가 점수에서 수직 하강한 수치 때문에 사장님으로부터 받을 질책이 눈에 훤했죠. 하지만 저는, 짧은 기간이라 충분히 그럴 수 있고 아직 팀원들이랑 알아갈 시간이 부족해서 그런걸꺼라 애써 위로를 건냈어. 잠자코 듣고 있던 A는 씁쓸한 미소를 띄며 답을 이어갔어요.

"일년동안 성과 달성해보겠다고 달려왔는데, 결과가 참 아이러니하다. 성과도 못 내, 팀원들 민심도 최악이야. 도대체 여태껏 뭘 한걸까 후회만 남네."


A는 전형적인 성과 중심형 리더에요.

그는 팀원이던 시절부터 항상 목표치를 훌쩍 넘는 실적을 만들어냈어요. 끊임없이 거래처 문을 두드리고,

끝내야 할 일 앞에서는 밤을 새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결과이기도 하겠죠. 그런 그가 팀장이 되고, 임원이 되면서부터는 그 기준이 자신에게만 머무르지 않았나봐요. 이제는 개인의 성과가 아닌 조직 전체의 성과를 책임져야 하는 위치가 됐기 때문에 더더욱요. 성과를 내지 못하는 리더는 리더로서 자격이 없다 믿기도 했고, 워낙 책임감도 큰 성향이었고요.

물론 맞는 말이죠. 리더는 성과로 말하는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A가 놓치고 있었던 건, 성과를 향해 달리고 있는 동안 달라진 팀원들의 마음 상태에요. 처음에는 새로 부임한 임원인 A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어요. 리더가 우리팀을 잘 이끌어줄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고요. 그러나 팀원들은 자신들보다 훨씬 빠르게 달리는 리더 앞에서 점점 지쳐갔어요. 높은 잣대로 자신들을 질책하고 성과를 위해 채찍질하는 모습에 실망도 커졌고요.


A가 이 상황을 모르는 건 아니었어요.

나름대로 팀워크를 위해 워크샵도 기획하고, 그들에게 이것저것 챙겨주기도 했어요. 특히 팀원들의 실적이 낮아 평가가 안 좋거나 보너스가 없을 경우를 대비해, 뒤에서 남모르게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각종 노력을 기울었죠. 아무도 모른다는 게 문제였지만요.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민심은 달라진거죠.

저는 이 장면을 보며, 오래전에 봤던 한 실험이 떠올랐어요. 새끼 원숭이에게 두 명의 '가짜 엄마’를 붙여놓은 실험이었죠. 한쪽은 철사로 만들어졌지만 우유를 주는 엄마였고, 다른 한쪽은 아무것도 주지 않지만 부드러운 헝겊으로 감싸진 엄마였어요. 결과는 의외였어요. 새끼 원숭이는 배가 고플 때만 잠깐 철사 엄마에게 갔다가, 대부분의 시간을 헝겊 엄마 품에서 보냈거든요. 먹을 것보다 따뜻함과 안전감이 더 본능적 욕구였던 거죠.

어쩌면 A는 팀원들에게 우유를 주는 철사 엄마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들이 조직 내에서 인정을 받고 더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도록 채찍질하는. 그래서 팀원들은 필요할 때만 A에게 다가가고, 나머지 시간에는 거리를 두려고 했던 것 같아요. 밥 주는 리더보다 나를 보살펴주는 리더를 더 바랬던걸지도요.


A상무의 전임자는 반대로 헝겊 엄마 스타일이었던 것 같아요.

비록 성과가 안 나와 매번 사장님께 깨지곤 했지만, 팀원들에게만큼은 다정했던 리더로 짐작되더라고요. A는 말하더군요. 팀원들이 아직도 전임자와 계속 연락하며 술도 마시고 속내도 털어 놓는 사이인 것 같다고. 회사에서는 이미 떠난 사람이지만, 사람들 마음에서는 아직 따뜻한 리더로 기억되는거죠.

그 이야기를 들으니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직장생활에서도 결국 남는 건 사람이 아닐까 싶은 생각 말이에요. 우리는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때론 상처도 받고 지긋지긋한 감정도 들지만, 때론 그 관계 속에서 깊은 위로를 받기도 하잖아요. 특히나 리더의 자리에 있다면 더욱 그런 것 같아요. 아무리 뛰어난 성과를 냈어도, 사람들이 등을 돌리면 그 성과는 금세 잊혀지죠. 반대로 성과는 부족했어도 사람들 마음에 따뜻함을 남긴 리더는 오래도록 기억되고요. 리더가 형성한 심리적 안정감과 안전감은 든든한 그 팀의 자산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리더십의 끝에는 늘 비슷한 질문이 남는 것 같아요. 무엇을 남길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사람으로 남을 것인가라는 질문 말이에요.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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