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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림 Jan 25. 2024

프로 출근러

나는 왜 재택근무가 힘들까

올해가 시작하기 무섭게, 회사 업무가 폭풍처럼 몰아닥치고 있다.

업무 성격도 일하는 대상도 다른 여러 가지 일들이 한꺼번에 발생했고, 주어진 시간 내에 처리해야 되니 매일 야근 행진 중이다.


워낙 야근이 일상화돼서 크게 힘들지는 않지만, 작년부터 아프던 허리가 또 말썽이다.

디스크 시술을 받은 지 얼마 안돼서 조심하고 살았는데, 의자와 딱 붙어 있는 생활을 계속하다 보니 다리가 저릴 만큼 아파지기 시작했다.

어제는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경각심으로 집에 일찍 왔으나, 결국 할 일이 많아 재택근무로 남은 일을 처리했다.

하지만 회사에서 일할 때와는 다르게 정말 일의 효율이 떨어지고 진도가 나가지 않더라. 회사에서 했으면 15분 만에 처리할 일을, 1시간이 넘게 질질 끌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코로나로 재택근무가 기본 업무 형태였던 시절에도, 나는 재택근무가 힘들어 회사에 몰래 출근하곤 했다. (당시 출근 금지령 상황)

우리 집에는 일하기 좋은 최적의 환경 - 서재, 책상, 모니터, 커피머신, 조용함 등 -이 모두 갖추어져 있었지만, 집에만 있으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니, 더 시간을 거슬러 학창 시절에도 나는 멀쩡한 집 놔두고 꼭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해야 머리에 쏙쏙 들어왔던 기억이 갑자기 떠오른다.


어제 재택근무를 하며 집중력이 '제로' 상태가 된 나를 돌아봤다.

도대체 왜, 남들은 선호하는 재택근무를 나는 못하는 것일까? 나는 어떤 근무 형태에서 가장 많은 업무 효율을 수 있을까?


1.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 설정

집에서 근무하는 내내 별게 다 거슬린다.

딸내미가 먹다 만 과자 봉지, 소파에 잘못 놓인 리모컨, 하다못해 커튼의 위치까지.

이걸 바로잡으려고 정리를 하다가, 더러운 책상이 눈에 띈다. 그럼 그때부터 책상을 닦다가 신나는 음악을 선곡하고, 배가 고파지면 냉장고를 뒤적이다가 대청소가 하고 싶어지는 무의식의 흐름이 이어진다.


집에서 근무할 때마다 회사 일보다 집안일이 더 우선이 되어 얼른 나부터 끝내 달라 재촉하는 느낌이 든다.

나는 오직 일과 동료, 딱 두 가지만 생각하면 되는 회사라는 환경에서 근무하는 편이 훨씬 더 집중이 잘 된다.

나에게 회사라는 공간은, 업무에 대한 집중과 효율을 최대화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2. 다른 사람들과 업무 시너지 내기

한 때 아시아 담당자를 갈망하다가 지원한 자리에 덜컥 합격이 되어 1년 정도 업무를 경험해 본 적이 있다.

이 업무의 특성상 100% 재택근무가 가능했고, 아시아 동료들과는 온라인으로 미팅을 진행했다.

나는 이 업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곧 깨닫게 되었다.


'아, 나는 오프라인으로 만나서 같이 일해야, 에너지를 얻고 시너지를 같이 낼 수 있는 사람이구나!'


사실 지금도 그렇다. 같이 만나서 하는 대면 미팅의 생산성이 만약 10이라고 가정한다면, 온라인 미팅의 효율과 만족도는 2-3쯤밖에 되지 않는다.

사람들과 만나서 브레인스토밍도 자유롭게 하고, 서로에게서 나오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고받는 일은 나에게 항상 일의 동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비록 선망하던 아시아 담당자는 1년밖에 못 하고 나에게 맞지 않아 그만뒀지만, 이 기회로 내가 선호하는 업무 형태를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3. 강제성이 주는 힘

생각보다 강제성이 주는 무게가 나에게 크게 다가온다.

지금도 매일 글을 쓰는 '글루틴'이라는 모임에 속해 있으니 평일에 이렇게 글을 올리지, 만약 혼자 글을 썼다면 나의 브런치는 깨끗한 상태로 1년 넘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회사에 출근해서 근무하면, 일종의 강제성이 부여되는 느낌이 든다.

물리적인 공간의 변화와 나를 지켜보는 동료들의 시선은, 살짝의 긴장상태를 유지하게 하고 왠지 더 일에 몰두하게 만든다.


이런 나에게 스스로 '프로 출근러'라는 명칭을 붙여 본다.

근무 형태가 비교적 자유로운 우리 회사에서, 왕복 80km가 넘는 길을 굳이 매일 출퇴근하는 게 나도 가끔 신기하면서도 왜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나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오해는 마시길.

회사가 너무 좋아서 출근을 꼭 하는 건 절대 아니니 말이다. 허허허...

나는 나에게 맞는 환경과 근무 형태를 잘 파악하고,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나름 적용하고 있다는 깨달음을 어제의 경험에서 얻게 되었다.


이렇게 오늘도 나는 나를 알아간다.


#글루틴 #팀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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