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는 타고나는 것일까
"팀장님, 그거 아세요? 글로벌 TOP 10 리더 80%가 'TJ' 성향이래요."
"어머, 그래? 나는 'FP'인데 글로벌 리더 되기는 글렀네. 하하하."
머리 아프고 지루한 회의 시간, 누군가 분위기를 띄워보려 갑자기 MBTI 얘기를 꺼냈다. MBTI 열풍은 한참전에 지나갔건, 여전히 우리는 사람을 '특정 기준'으로 분류하길 좋아한다.
여기에 리더는 개념까지 입히니, 대화가 더 흥미진진해진다.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서 목표를 달성하는 성향인 TJ. 반대로 감성적인 접근으로 유연하게 상황에 대처하는 성향인 FP. 비단 이 두 가지 기준 뿐 아니라, 리더는 외향형이어야 하는지 혹은 내향형도 가능한지에 대한 논쟁까지 이어진다.
각자의 경험과 주장이 더해지고, 회의실은 어느새 뜬금없는 리더십 토론장이 됐다.
누군가는 '리더는 내가 우왕좌왕할 때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방향성을 줘야 하니 TJ가 맞다'고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AI 시대에는 변화에 잘 대처하며 팀원들의 마음을 살피는 리더가 필요하다'라며 반박했다. 심지어 FP 성향을 가진 팀장님마저도 한 마디 거들었다.
"내가 FP라서 그런지, 냉철하게 맺고 끝는 거 잘 하는 리더가 부럽긴 하더라."
각자 말할때마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MBTI 대화가 길어질수록 머릿속에 물음표가 생겼다. 리더는 과연 MBTI로 분류될 수 있을까? 타고난 특성과 재능으로 리더가 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섣불리 구분짓는 것은 아닐까.
리더의 자격조건은 과연 타고난 것일까.
'내가 왕이 될 상인가'라는 영화 속 대사는, 어쩌면 우리가 리더를 바라보는 방식과 꽤 닮아 있다. 리더감인지 아닌지를 외모, 기질, 성격, 특성 등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앞서 얘기한 MBTI 결과 뿐만 아니라 카리스마, 화려한 언변, 강한 추진력 같은 몇 가지 기준이 여기에 속한다.
이렇듯 리더를 ‘특정 유형의 사람’으로 정의하는 이유는 뭘까. 내가 떠올린 단순한 이유 중 하나는, 그게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A 팀장은 원래 그런 성향이니 리더가 된거고, 나는 애초에 그런 타입이 아니니 리더가 되기 어렵다고 단정짓는 것이다. 혹은 B 팀장이 잘 못하는 이유를 MBTI 성향으로 설명하면 쉬워서이다.
어떤 기준이 있으면 상황을 빠르게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다.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면, 의사결정이 훨씬 간결해진다.
하지만 회사에서 보는 리더십의 형태는 조직 구성원의 수만큼 정말 다양하다.
이를 단순히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설명하기 어렵다. 오히려 리더십은 특정한 성향이나 자질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처한 상황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드러난다.
회의 시간, 모두가 눈치만 보며 말을 아끼고 있을 때 조용히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는 사람. 문제가 생겨 다들 한 발 물러서 있을 때 '그럼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라고 나서는 사람. 서로의 의견이 충돌할 때, 원만하게 대화로 분위기를 풀어내는 사람.
이런 행동 자체가 직급이나 성향을 떠나 조직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순간들이다. 리더십을 위대한 리더 한 명의 자질로만 볼 것이 아니라, 누구나 선택하고 실천할 수 있는 태도로 바라볼 수도 있지 않을까.
리더는 어떤 성향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 한 걸음 더 나서는 선택을 하는 사람에 가깝다.
내 선택에 책임을 지고, 그 결과를 팀원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 설령 MBTI 결과가 리더에 부적합한 성향으로 나온다 해도, 과연 그런 사람을 리더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이미 회사에서 여러 번 리더십을 발휘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것을 리더십이라고 부르지 않았을 뿐이다. 아마 그 순간에 마땅히 해야할 당연한 행동이라고 여겼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누가 리더의 자질이 있느냐를 가려내는 일이 아니다.리더의 행동을 보며 손가락질할 시간에,
나는 그 순간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