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얘기를 들어줘서 고마워요

들어준 것 말고 한 건 없는데...

by 수풀림

지난 주에는 유독, 여러 직장 동료들과 커피챗을 많이 하게 되었다.

전 부서에서 같이 일하던 동료, 곧 결혼을 앞둔 동료, 진로를 고민하는 동료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했다. 의도한 건 아니었으나 회사를 다니다보면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업무 대화 보다 인간적인 대화가 필요할 때. 아마도 동료들은 그런 시기를 겪으며 나를 떠올렸나보다.

그들이 안고 있는 고민의 종류와 깊이는 각기 달랐다. 상사와 계속된 갈등, 결혼에 대한 설렘과 불안, 퇴사와 이직 사이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 등등. 그들의 사정과 상황은 예전 내 모습과 겹쳐 보이기도 하고, 곧 닥칠 내 미래 같기도 해서 무척 공감이 되었다. 나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의 이야기에 주의를 기울였다.


한 시간 가량 이어진 대화의 끝, 그들은 마치 짠 것처럼 이렇게 얘기했다.

"제 긴 얘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내 한탄 들어줘서 고맙다."

모두 각기 다른 장소, 각기 다른 시간에, 비슷한 감사 인사를 건네니 신기했다. 그리고 왜 나에게 고맙다 말하는지 잘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그들에게 해결책을 제시한 것도 아니고, 단지 이야기를 들어줬던 것 뿐인데 말이다. 듣기 말고 굳이 다른 한 걸 찾으라면, 궁금한 걸 질문하는 정도?

그들은 고민을 털어놨고, 나는 가만히 들었고, 대화가 끝나도 그들의 고민은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 여전히 퇴사를 생각했으며 상사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그 어떤 것도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의 표정은 처음보다 조금은 가벼워 보였다.
마치 엉켜 있던 실타래가 풀리고 잘 정리된 후의 표정이랄까. 그들은 나에게 고맙다 말했지만, 정작 나는 한 게 없었다. 아마 그들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이유는,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놨기 때문이리라.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비밀을 대나무 숲에 털어놓은 것 처럼.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내가 그 고민을 판단없이 들어 주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상사와 갈등을 겪는 동료는 나에게 말했다.

"내가 OO부장한테 힘들다고 말했더니 뭐라고 한 줄 알아? 그게 뭐 힘들 일이냐더라. 자기는 그것보다 더 심한 일도 겪어 봤다면서."

이렇듯 직장인들의 대화는 종종 그 사람의 얘기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로 흐르며 본질을 흐릴 때가 많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에서 쉽게 판단 내린다.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만 말을 꺼내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에게 온전히 공감받고 싶어서일 수도 있다. 나를 있는 그대로 알아달라고, 인정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너무 당연한 사실 같지만, 인정과 경청을 실천하기란 결코 만만치 않다. 상대방이 내 얘기를 온전히 들어주기를 원하면서도, 막상 내가 상대방의 얘기를 들으면 머릿 속에 온갖 생각들이 휘몰아친다.

'나 10분 있다가 회의 가야 되는데, 대체 이 얘기 언제 끝나는 거야?'

'많이 힘들겠다. 그런데 나도 지금 힘든데...'

상대방의 입장이 아닌, 자아인 내가 계속 올라오는 것이다.


잘 듣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절대 거창한 기술이 아니다. 상대방에게 집중하는 것,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것, 내 이야기로 넘어가지 않는 것. 비록 순간순간 그게 어렵다 느껴지더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믿는다.

팍팍한 직장생활 속, 고민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주는 한 사람만으로도 우리는 인류애를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조금 더 오래 들어보려 한다. 완벽하게 공감하진 못해도, 적어도 그 사람이 마음을 다 털어놓을 때까지는 자리를 지키는 사람으로 말이다.누군가에게는 그 시간이,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어쩌면 우리 직장인들은 그렇게, 서로의 하루를 조금씩 버텨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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