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원래 노답이다
회사에 와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그건 바로 회사에서 일어나는 문제에는 '정해진 답'이 없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만약 10인 벤처 기업의 대표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잠깐 생각해보자.
'최근 3개월간 영업이익이 마이너스이고, 현재 운용 가능한 회사 자금은 2,000만원 정도이다. 경기 악화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당신은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거창하게 대표까지 갈 필요도 없이, 평범한 직장인인 우리에게 닥친 문제도 그닥 다르지 않다.
'우리 팀이 진행하는 프로젝트 A가, 최근 오갈 데 없는 낙동갈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새로 바뀐 임원은 이 프로젝트에 대해 탐탁치 않아 하며, 꼭 진행해야 하는건지 묻고 있다.'
전 임원은 프로젝트 A에 전사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했었는데, 한 달만에 모든 상황이 바뀌었다.
반면 학교에서 배운 모든 문제에는 정답이 있었다.
'다음 중 옳은 답을 고르시오.'
이런 시험 문제가 주어지면, 4개 중 한 개는 무조건 정답이었다. 서술형 주관식 문제에도 정해진 답이 있고, 채점 기준이 있었다. 선생님의 수업을 잘 듣고 복습하고 열심히 공부하면 풀 수 있는 문제들이었다. 근면성실하게 의자에 엉덩이를 많이 붙이고 앉아 있을수록, 좋은 성적을 받을 확률은 더 커졌다.
특히나 내가 나온 이과의 경우, 문제와 답이 더욱 명확했다. A 더하기 B는 C 혹은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처럼 원인과 결과가 분명한 것들이 많았다. 논리적으로 유추하고 사고해서 푸는 문제 말이다.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여러 과목의 문제들을 풀고 또 풀면서, 당연히 모든 문제에는 정답이 있다고 믿었다. 그 이후에 펼쳐질 정답이 사라진 세계에 대해서는, 당시에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사회로 나와서 가장 당황했던 부분 중 하나가 정답이 없다는 것이었다.
정답의 사전적 정의는 '옳은 답'이다. 간혹 일부 문제는 회사에서 정해진 매뉴얼대로 풀면 해결되었지만, 대부분의 문제는 바로 답을 내리기 어려웠다. 특히나 정해진 이론과 기술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닌, '사람'이 개입된 문제는 더더욱 말이다. 예를 들어, 고객이 화가 난 상황에서 누구는 공감부터 하라고 말했고, 누구는 원인을 분석하라고 했고, 또 다른 누구는 고객 말을 100% 다 믿으면 안 된다고 했다. 리더가 교체되었는데 누군가는 그녀를 현명하고 훌륭한 전략가라고 했고, 누군가는 그 리더 때문에 우리 조직이 폭삭 망할 거라고 했다.
이제 와서 알게 된 건, 그 모든 판단들이 각자의 '정답'이라는 것이다. 외부와 내부 상황에 따라, 자신의 경험과 통찰에 따라 다른 답을 낼 수 있다.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는, 그 일이 해결된 이후에 알 수 있다. 그리고 때로는 절대적인 정답처럼 보일지라도, 시대에 따라 최악의 답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인생은 원래 노답이라고.
우리는 매번 정답을, 빠른 답을 찾지만, 그런 조급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앞날은 종종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연봉을 높여 이직에 성공했다고 좋아했는데, 옮긴 회사가 2년 후에 문을 닫은 상황이라면 과연 그 때의 정답은 뭐였을까. 당시에는 분명 ‘옳은 선택’처럼 보였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쉽게 답을 내리기 어렵다. 그렇다고 그 선택이 틀렸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그 경험 덕분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다른 기회를 발견했을 수도 있으니까.
AI가 온갖 정답을 내놓는 시대다. 나보다 똑똑한 인공지능에 기대서, 혹은 보이지 않는 운명에 기대서 답을 찾아 나간다. 하지만 그 답들이 늘 내 인생의 정답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답을 찾는 대신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자.
'그래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답이 없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고민하는 것이, 인생의 묘미가 아닐까. 우리 삶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것은, 어쩌면 인생에 정답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