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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림 Mar 08. 2024

나는 잘생긴 남자보다 내 남편이 더 좋다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해 보기

가족들과 영화 웡카를 보고 집에 오는 길이었다.

어지간해서는 같이 뭔가를 하는 법이 없는 중학생 딸과도 오랜만에 영화를 빌미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서로 영화를 보며 어떤 것이 가장 좋았는지 이야기를 나누는데, 딸은 주인공 티모시 샬라메로 모든 이야기를 끝내 버린다.

"주인공 개 잘생겼어!!! 와! 미친!"


사춘기답게(?) 단답형 문장과 세대를 반영한 욕설이 튀어나온다. 자기한테는 유치한 영화였지만 주인공이 너무 잘생겨서 몰입할 수 있었다나?  

나는 괜히 삐딱한 마음이 들어 맞받아쳐 보았다.

"엄마는 티모시 샬라메보다 너네 아빠가 더 멋있는 것 같은데?"


딸의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고 기가 차서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아, 아니었구나! '헐~~~' 정도는 했던 듯.

사실 나의 이 말에 진심은 조금도 담기지 않았다. 영화배우보다 더 멋있는 남편이라니, 이 세상에 그런 사람이 존재하기는 하려나?


한편 딸의 말을 듣는 순간 동시에 이런 생각도 스쳐갔다.

티모시 샬라메 같은 남자가 설령 옆집에 살더라도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는 내가 가질 수 없는 그야말로 '남의 떡'일뿐일 텐데! 

어차피 남의 떡은 탐해봤자 배만 더 고파지고 괴로워질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잘생긴 남의 남자 100명보다 나랑 같이 살고 있는 오래된 내 남편 1명이 더 낫게 느껴진다.


이런 생각을 하니, 옆에서 운전하고 있는 남편에게 갑자기 고마운 마음이 불쑥 든다.

내 옆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있어준 '내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가 감사하게 느껴졌다. (솔직히 이런 감정은 평소에는 거의 찾아오지 않으니 오해는 마시라 ㅎㅎ)




남편은 전혀 내 글을 읽지 않는 사람이지만, 마치 그에게 전하는 편지처럼 감사함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부부싸움을 할 때마다 나 혼자 읽고 화를 삭여볼 마음도 살짝 덧붙여 본다.


To. 남편 (애칭 따위는 없다.. 드라이하게 그냥 남편)


어젯밤 잠들기 전, 내일은 당신에 대한 글을 써볼까 한다는 한마디를 던졌을 뿐이었는데...

주제가 뭔지도 모르고 자기가 가장 웃기게 나온 사진을 올려달라며 앨범을 열심히 뒤지더라. 

웃긴 사진을 오랜만에 꺼내 보며 우리는 낄낄 웃다가 결국 늦게 잠들었잖아.

생각해 보니 어제가 결혼기념일이었고, 아무 이벤트도 없었지만 나쁘지 않은 엔딩을 보냈던 것 같아.

글을 쓰며 당신에게 고마웠던 기억들을 떠올려봤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어젯밤 같은 순간들이더라.

소소하지만 웃음이 끊이지 않는 순간 말이야.

항상 진지하고 심각한 나를 웃음으로 무장해제 시켜주는 사람이 당신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어.

우리 가족은 사진 하나를 찍더라도 개그 욕심에 제대로 된 멀쩡한 사진이 별로 없잖아?

그런데 그 순간 나는 활짝 웃다 못해 요절복통이어서 숨도 제대로 안 쉬어지더라. 얼마 만에 마음 놓고 웃는 건지! 이 때는 정말 무장해제되고 진심으로 즐겁다 느꼈어.

당신은 나를, 우리 가족을 재미나고 활기차게 만들어주는 사람인 것 같아.


그리고 내가 자신감을 갖고 내 모습으로 사는 것을 진심으로 응원해 줘서 고마워.

세상 많은 남편들 중에, 아내에게 새 옷을 사고 미용실도 자주 가라고 말하는 사람은 흔치 않을 거야. 

마찬가지로 야근해도 좋으니 열심히 일하라고, 자기가 집안일 다 하겠다는 사람도 말이지.

오롯이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고 싶다 할 때도 아무 말 없이 기다려준 것도 고마워.


아참,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같은 침대에서 잠들자는 원칙을 세워준 덕분에 여태껏 싸움이 크게 번진 적이 없었던 것 같아. 보기 싫어도 억지로 봤어야 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말을 안 할 수도 없었으니깐 말이야. ㅎㅎ


앞으로도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같이 잘 지냈으면 좋겠어.

평소에 무뚝뚝해서 표현은 잘 못하지만, 사랑하고 고마워!




글을 쓰며 새삼스레 남편에게 감사함과 사랑스러움이 느껴진다.

설령 내일 싸울지라도, 오늘 잠시 잠깐이라도,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어디랴. 

오래 봐온 헌 남편이지만, 내 옆에 있는 그의 존재가 소중하게 다가온다.


오늘은 내가 가진 것 중 감사할 것들을 찾아보는 하루를 보내야겠다.


#몹쓸 #글쓰기 #몹쓸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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