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가 그에게 준 선물은 무엇일까
남편이 12일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작년 말부터 노래를 부르던 히말라야 안나 푸르나에 드디어 다녀온 것이다.
마냥 신나고 설레어했던 남편과는 달리, 양가 부모님들은 떠나는 전날까지 걱정을 놓지 못하셨다.
하지만 남편은 안 가면 안 되냐고 하시는 부모님 말씀을 응원 정도로 받아들이고 쿨하게 떠났다.
히말라야행의 발단은 지리산을 같이 다녀온 동호회 친구의 한마디였다.
평생 한번 볼까 말까 한 히말라야를 같이 떠나보자는 말로 남편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마침 남편도 마음속 한편에 담아둔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가 히말라야였다고 한다. 뭐 이 사실은 나도 처음 안건대, 오래된 부부 사이라도 표현을 안 하면 모르는 게 많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둘은 작년 가을쯤부터 작당모의를 하고 히말라야에 꼭 가야 할 이유를 가족들에게 설파하기 시작했다.
가족을 위해 자신의 시간 대부분을 양보하는 남편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으로 순순히 다녀오라 말했다.
그는 아이처럼 들떠하며 내가 혹여나 마음을 바꿀까 봐 서둘러 비행기표부터 예약했다.
미리 연습한다며 1월 말 같이 갈 친구와 지리산 설산 등반을 하고, 근처 산을 시간 날 때마다 종주했다.
중고 패딩을 사고 누가 쓰다 버린 것 같은 침낭까지 얻어서 배낭을 꾸려보느냐 바빴다.
유튜브에서 히말라야에 대한 영상을 계속 찾아보며 안나 푸르나에 대한 꿈을 키우고 있었다.
나는 고산병 약 한 알조차 챙기지 않는 그가 걱정되어 잔소리를 늘어놓다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어차피 가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그였기 때문이다. 아파도 자기가 아플 것이고 이 기회에 고생해서 정신 좀 차렸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듣지도 않을 잔소리 대신, 히말라야에 가면 하루에 한 번 꼭 카톡으로 생사여부를 알려달라는 당부를 했다.
다행히 해발고도 3000미터 정도까지는 롯지에서 와이파이가 가능해 여행 기간의 반 정도는 매일 아래와 같은 사진을 보내주곤 했다.
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남편에게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무엇이 가장 좋았으며 가장 힘들었는지, 음식은 입에 맞았는지 등등 말이다.
그는 다시 현실로 돌아오니 자기가 꿈을 꾸었던 것 같다고 대답했다. 분명 어제까지는 네팔에 있었는데 벌써부터 그때의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나는 글감을 핑계로 그에게 히말라야에서 얻은 것이 무엇인지 집요하게 물어봤다.
하도 많은 이야기를 들어 정리가 잘 안 되지만 아래와 같이 요약해 본다.
걷는 내내 계속 달라지는 멋진 풍경을 보며 등반의 힘듦을 별로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너무나 경이로운 자연에 감탄하는 동안 또 다른 자연이 반겨주는 느낌이었다고.
밤에 화장실을 가기 위해 밖으로 나가면 쏟아지는 별들도, 4월이지만 눈앞에 펼쳐진 눈과 얼음도 말이다.
그리고 압도적인 풍광에 작아지는 느낌이 들며 결국 나 자신도 자연의 일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다.
결국 고산병은 내려감으로써 자연 치유가 된다 하니 이것도 신기할 따름이다.
2. 뜬금없는 영어 공부에 대한 의지
전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히말라야를 찾아왔다고 한다.
난방이 되지 않는 롯지에서 유일하게 난로가 있는 식당이 바로 사랑방이 된다. 각 나라 사람들이 서로 어디에서 왔냐며 물어보고 어디로 향하는지 산행 정보를 교환한다고 한다.
사실 나는 남편이 어디를 등반했는지 잘 모른다. 왜냐하면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안나 푸르나 서킷이랬나? 뭐 들은 것 같긴 한데 그런가 보다 했다.
하지만 그들의 공통 관심사는 산악 루트이기 때문에 서로 꼼꼼히 물어보고 노하우를 공유한다고 했다.
그리고 여기에서 필요한 것은 '소통'이다. 전 세계 공용어인 영어로 대부분의 소통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조금 더 말을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고 했다.
식당에서 책을 펼치며 읽는 사람들과 책에 대해서도 대화하고 싶고, 한국에 대해서도 영어로 유창하게 알리고 싶어 졌다고 하는데, 역시 사람은 시켜서가 아니라 자기가 원해서 해야 진정한 동기가 생기는 것 같다.
남편은 자신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인 히말라야를 다녀와서, 다음 여행을 꿈꾸게 되었다고 한다.
바로 가족과 함께 또 다른 대자연으로 떠나는 캐나다에서의 트래킹이다. 원래는 자기 혼자 여행하는 게 꿈이었는데, 이번에 가보니 자꾸 가족이 밟혀 다음 여행을 함께 가고 싶어졌다 한다.
버킷리스트라는 말을 듣다 보니, 나는 이걸 한 번도 만들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눈앞의 일과 책임감 그리고 때로는 무기력함 때문에 즐거움을 멀리했던 느낌이다.
사실 남편은 화요일 새벽 5시 한국에 도착해서, 나와 딸을 데리고 놀러 가겠다며 그날 오후 글램핑장을 예약했다.
일로 지쳐있던 나는 무슨 평일 캠핑이냐며 그를 타박했다가, 그날 밤 불멍을 하며 크게 반성했다.
가족들과 오순도순 모여 남편의 히말라야 여행기도 듣고, 그동안 남편이 없었을 때 얘기도 하며 힐링되는 시간을 가졌기 때문이다. 번아웃에 지쳐있던 내가 남편의 추진력 덕분에 서서히 치유되었다.
사춘기 딸과도 오랜만에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 있어 이 시간이 더 소중했다.
현실만 바라봤을 때는 힘들었던 마음이, 다음 여행을 계획하며 희망에 부풀어 오르는 걸 느꼈다.
아참, 그리고 남편의 히말라야 찬양을 듣다 보니 내 생각이 서서히 바뀌기도 한다.
원래는 나한테 1억을 줘도 절대 히말라야는 안 간다고 했었는데... 히말라야 산 초입이라도 한 번 가볼까 싶어 진다. ㅎㅎㅎ 설렘이란 이런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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