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지만 가치 있는 일
내가 꼬꼬마였던 시절부터 아이들이 마냥 좋았다.
막연히 커서 아이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는 장래희망을 가지기도 했다. 때로는 유치원 선생님이었다가, 때로는 고아원 원장님 등 모습은 계속 바뀌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삶이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게 묘미라 했던가.
이과 전공을 살려 회사에 취직을 했다.
그리고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도 했다. 남편은 아이 없이 둘이 살자고 했지만, 결혼 3개월 만에 덜컥 아이가 생겨 버렸다.
회사에 들어가 이제 막 오르막길을 달리고 있을 때여서 임신이 반갑지 않았다.
주말부부로 지내는 남편을 만나려면 차로 4시간 반을 가야 했기에 한 달에 한두 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아이를 키울 별다른 대책도 없었다.
임신기간의 힘듦이 무색하게도 갓 태어난 아이는 신기하고 사랑스러웠다.
나를 잠도 못 자게 하고 심지어 밥도 제대로 못 먹게 괴롭히는 존재였다. 그럼에도 미소 한 번, 옹알이 한 번으로 나를 무장해제 시키고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다.
3개월의 출산휴가를 끝으로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올라오는 차 안에서, 나는 실연당한 사람처럼 꺼이꺼이 목놓아 울었다.
아이가 유치원에 가기 시작하면서 자신은 왜 동생이 없는지 물어봤다.
주말부부로, 이산가족으로 살면서 아이를 더 키울 자신이 없다고 솔직하게 설명하지는 못했다.
아이는 여전히 친정에, 남편은 저 멀리 남쪽 지방에, 그리고 나는 혼자 서울 자취방에 살던 시절이었다.
결국 아이가 7살이 되던 해 남편은 하던 일을 그만두고 서울로 왔다.
남편과도, 아이와도,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한 집에서 함께 보낸 적은 처음이었다. 내가 예전부터 꿈꾸던 단란한 가족의 모습을 드디어 완성한 기분이었다.
아이도 우리 부부도 곧 세 명이 함께하는 생활에 적응하며 안정을 되찾았다.
안정이 찾아오자 나는 또 다른 꿈을 꾸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들이 우리 가정에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꿈 말이다.
이 세상에는 피치 못한 사정으로 친부모가 양육을 하지 못해 방치된 아이들이 많다. 그래서 둘째는 입양이나 위탁부모를 통한 다른 형태의 가족을 만들고 싶었다.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세상의 따뜻함과 희망을 주고 싶다 막연히 생각했다.
그러다가 같이 글쓰기 모임을 하는 windsbird 작가님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영국에 살면서 위탁부모를 했던 경험을 아래 매거진에 덤덤하게 풀어냈다.
https://brunch.co.kr/magazine/fostering
windsbird 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처음에는 대단하다 생각했다.
나는 생각만 하고 실천으로 옮기지 못했던 위탁부모를 용기 내서 시도한 것 자체가 말이다.
그리고 이내 그 감정은 매거진의 시리즈 글들을 읽으며 숙연함으로 바뀌었다.
'아, 나는 위탁가정이나 입양에 대한 환상만 가지고 있었구나.'
아이를 집으로 데려온 순간부터 아이와 겪는 일상을 글을 통해 보니 이제야 실감이 났다.
내가 원했던 건 따뜻한 내 가정에서 아이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자신의 가정이나 시설 등에서 커왔던 아이 입장에서는 그 가정은 낯선 공간일 뿐일 것이다.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울고 소리 지르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이게 현실이구나 싶었다.
더 마음 아픈 것은 아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순간이다.
같은 집에서 생활하며 이제야 서로에게 편안한 존재가 되었는데 이별해야 한다니.
마지막 순간을 온몸으로 느끼고 칭얼대는 유치원 아이가 아래처럼 얘기했을 때, 나도 같이 억장이 무너져 눈물이 나왔다.
"I don't like you, I love you. Please don't leave me."
Windsbird 작가님을 통해 위탁부모에 대해 간접체험을 한 후 내 생각의 변화가 일어났다.
우선 아이를 키우는 것은 온전히 한 사람의 인생을 책임지는 일이라는 것.
이 세상에 태어난 아이는 부모를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한다. 이런 아이들의 부모가 되는 일이라면, 막중한 책임감을 가져야 더 이상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고 이 세상을 안전하다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순진한 생각으로 막연히 입양을 꿈꿔왔었다면, 내가 지금부터 해야 할 것은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일인가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나의 결론은 '아직은 아니다'이다. 지금도 남편이 중1 아이의 모든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다. 내가 시간을 온전히 내서 다른 아이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을 때 이 결정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럼 지금은 무엇을 다르게 해 볼 수 있을까 고민해 본다.
이것도 꿈만 꾸고 아직 시도해보지 않은 것인데, 주말 동안 시간을 내서 잠깐이라도 다른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다.
지금 생각났을 때 근처 보육원을 찾아보고 봉사활동이 가능한지 물어봐야겠다.
작가님 덕분에 마음만 먹고 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글을 통해 나의 생각과 하고 싶은 것들을 정리해 보니 조금 더 명확해진다.
아, 나는 아이들을 위해 살고 싶은 것 맞는구나!
#몹글 #몹시쓸모있는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