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대회가 아닌데 말입니다
대화를 관찰하기 좋아한다. 대화는 소통의 가장 보편적 도구이자 중요한 수단이고, 그 모습을 통해 '사람' 자체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화하는 모습을 제삼자의 시선으로 지켜보다 보면, 그 사람의 생각과 성향 나아가 성품까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얼마 전 부부의 갈등과 해결책을 다루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부부의 대화를 지켜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각 부부가 겪고 있는 갈등의 종류는 다양했지만, 대부분의 갈등이 대화 중에 생기거나 더 심화된다는 생각 말이다.
예를 들어 보자. 모처럼 날씨 좋은 봄의 주말 아침 아내가 남편에게 아이를 데리고 소풍을 나가자며 말을 꺼낸 상황, 매끄럽지 않은 그다음의 대화는 이런 식으로 이어진다.
- 남편 : 됐다, 됐어. 너랑 말을 섞지 말아야지.
어떤가? 듣기만 해도 고구마 100개 먹은 것처럼 답답해지지 않는가?
그러나 고백하자면, 나도 남편과 비슷한 대화를 했던 경우가 종종 있었던 것 같다. 내 마음을 몰라주는 상대편에 대한 서운함과 그에 대한 기대치가 충돌해서 마음의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그 소용돌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 대화가 아니라 그때부터는 일방적인 감정 토로가 돼버린다. 혹은 상대방의 주장에 지기 싫어서 말꼬리를 잡으며 상대방을 비판하기도 한다. 토론 대회가 아닌데도 내가 이기기 위해 온갖 논리와 감정을 다 갖다 붙인다.
위 예시의 대화를 바람직한 방향의 대화로 바꿔본다면 어떨까?
- 남편 : 어제 야근하고 와서 오늘은 좀 피곤한데 다음 주에 나가도 될까?
- 아내 : 당신 많이 피곤한가 보네. 실은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서 가족끼리 밖에 나가서 즐겁게 보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 남편 : 아, 실은 일주일 동안 회사에서 시달리다 보면 집에 와서는 쉬고 싶거든. 주말은 더 그렇고.
- 아내 : 당신이 피곤하다면 할 수 없지 뭐. 그럼 오늘은 집에서 쉬고 내일 다 같이 놀러 가는 건 어때?
- 남편 : 이해해 줘서 고마워. 그리고 날씨도 좋은데 집에서 있자고 해서 미안해. 당신이 평일동안 OO이 돌보느냐 힘든 거 아는데, 내가 많이 못 도와줬네.
- 아내 : 나 힘든 거 알긴 아는구나? ㅎㅎ 그럼 오늘은 당신 쉬고 나서 오후에 OO이 데리고 놀이터라도 나갔다 오면 좋을 것 같아.
대화를 들으며 닭살 돋는다, 현실성 없다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다. 이 세상 모든 부부가 저렇게 대화한다면 노벨평화상은 그런 부부들에게 돌아갔을 것 같기도 하고.
갈등 대화에는 없지만 바람직한 대화에는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좋은 대화의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상대방의 마음 헤아리기
상대방의 말 경청하기
대화의 목적 생각하기
내가 하는 말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생각하고 말하기
어떤 상황에서 어떤 대화를 하더라도 위 요소들은 원활한 소통을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다.
주말이라도 집에서 쉬고 싶은 남편의 마음을 헤아리고 이걸 말하는 순간, 남편은 짜증이 아니라 고마움과 미안함의 감정이 들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만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은 대화의 가장 기본이기도 하고.
그리고 내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 중의 하나는 대화를 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대화의 목적은 합의, 의견 도출, 공감 등이다. 싸워서 이기자고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 서로 합의할 수 있는 의견을 내서 같이 잘해보자고 시작한 것이 대화이다.
어른들의 대화는 때로 너무 어렵다.
내가 원하는 것을 바로바로 말하는 아이들의 대화는 직설적이고 단순하다. 오히려 알아듣기 쉽다. 그러나 어른들은 원하는 것을 바로 말하지 못한다. 그러지 말라고 사회로부터 훈련받았다.
대화의 목적이 분명한 사람들은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한다. 그리고 그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하여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표현 너머에 있는 상대방의 니즈를 파악한다.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고 때로는 상대방의 관심사에 맞는 질문을 하며 대화의 목적 자체에 한 발자국씩 다가간다.
대화를 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꼭 생각해 보자. 내가 이 대화를 하는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해...
#몹글 #몹시쓸모있는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