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은 또 다른 삶의 모습이다
여러분 캠핑 좋아하시나요
캠핑 좋아하시나요?
이렇게 질문을 건네면 상대방은 대답을 생각하는 동시에, 질문자가 캠핑에 빠진 사람이라 짐작하곤 한다. 캠핑에 대한 대화로 즐거이 이끌기 위해 던지는 질문이라고. 만약 상대방이 긍정의 답을 한다면 신이 나서 또 물어볼지도 모른다. 어떤 브랜드의 텐트를 선호하는지, 가본 캠핑장 중 추천할만한 곳은 어디인지 등등.
나도 종종 이 질문을 지인들에게 건네곤 한다.
다만 질문의 의도는 짐작과는 다르다. 오히려 캠핑에 대한 하소연에 가깝달까. 왜 캠핑을 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나는, 캠핑을 사랑하는 남자와 같이 살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 글도 타프 그늘 아래 캠핑의자에서 쓰는 중이다.
다행히도 내 지인들은 나와 비슷한 성향들이라 대화의 물꼬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덥거나 추운 환경에 대한 불편함, 텐트를 치고 걷는 노동의 고단함, 바리바리 싸들고 와야 되는 짐 등등. 뭐, 말을 이어가기 입 아프게 캠핑의 힘든 점들이 줄줄이 튀어나온다. 여기에 아이들이랑 같이 간다면 챙겨야 될 목록들은 더 많아진다. 잘 놀다가 갑자기 아프기라도 하면 대책도 없고, 이마저도 아이가 어리면 엄두도 못 낸다. 개인적으로는 편한 집 놔두고 도대체 이 고생을 왜 하나 싶을 때도 있다.
쓰다 보니 캠핑에 진심이신 분들의 항의와 원망이 들리는듯하다. 그래서 반대로 캠핑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남편에게 도움을 청해 본다. 당신이 생각하는 캠핑의 이유는 무엇이냐고 질문하니, 뭘 이런 걸 다 물어보냐는 표정으로 답한다. 진짜로 잘 몰라서 한 수 알려달라며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숙여야 했다.
그가 침 튀기며 말한 캠핑의 장점은 수도 없이 많지만, 다 적기 귀찮아 몇 가지로 요약해 본다.
사람들의 원시적인 본능을 끌어낸다.
원시인의 수렵 채집 본능이 남아있는 인간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시멘트로 둘러 쌓인 아파트에서 잠들고 음식은 배달로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 게다가 시간은 항상 모자라고 무언가에 쫓기는 기분으로 살아간다.
캠핑은 이런 현실의 삶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야생과 자연과 만나게 해 준다.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직접 해결해야 하는 원시인의 삶과 닮아 있다. 오늘 밤 잠자리인 텐트를 치고 음식을 해 먹기 위해 불을 피워야 한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을 해내고 나면, 내 손으로 기본적인 의식주를 완성했다는 기쁨이 찾아온다.
추가로 당연하게 여겼던 주변의 갖춰진 삶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대리 만족을 선사한다.
캠핑은 또 다른 삶이다. 현실의 삶이 이런저런 고통들을 동반한다면, 캠핑의 삶은 평화롭고 고요하다. 사람들은 캠핑을 통해 현실의 삶에서 느끼지 못한 대리 만족을 할 수 있다. 오랜만에 가족이나 지인들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자연의 흐름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
남편은 캠핑의 대리 만족에 대한 다른 의견도 제시했다.
"집이나 소파 같은 대형 가구는 쉽게 못 사니, 텐트나 캠핑용품을 사면서 대리 만족을 느낄 수 있어"
어라? 생각해 보니 일리가 있다. 10년을 열심히 저축해도 내 집 마련이 힘든데, 집의 축소판이기도 한 텐트는 조금만 무리하면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캠핑 비즈니스란 얼마나 유행에 민감한가. 캠핑장에 오면 눈 돌아가게 멋진 텐트나 캠핑용품들이 즐비하다. 그냥 통째로 집 내부를 옮겨온 것 같은 살림 도구들도 캠핑 용품 시장이 성장하는 이유들이리라. 뭐가 되었던 캠핑에서 대리 만족을 느끼면 그것도 행복의 한 수단이라 생각된다.
맛있는 음식이 더 맛있어진다.
왜 같은 음식이라도 밖에서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까? 과학적인 이유들이야 많겠지만 분위기가 큰 몫을 하리라 예상해 본다. 추운 가을 저녁 단풍나무에 둘러 쌓여 호호 불어가며 먹는 한 젓가락의 라면은 각별하다. 숯불을 피워 구워 먹는 삼겹살은, 집에서 인덕션 불 프라이팬에 구워 먹는 삼겹살과는 차원이 다르다. 새소리를 들으며 나무 그늘 아래서 마시는 맥주 한 잔은 캠핑을 위한 노고를 싸악 잊게 만든다.
고백하자면 내가 캠핑을 오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음식에 있다. 귀찮아서 여러 음식을 준비하지는 못하지만 무얼 먹어도 맛있어지는 마법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은 시판 사골국에 비비고 만두를 넣어 즉석 만둣국을 끓여 먹었는데, 평소 집에서 먹는 맛과 사뭇 달랐다. 집에서라면 어머님이 정성스레 끓여주신 사골국에 직접 빚은 손만두를 먹어야만 맛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뜨거운 국물을 들이켜고 있자니 여기가 만둣국 맛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캠핑 오기 잘했다고 느끼기도 했다. (이 감정은 사실 얼마 가진 못했지만...)
이 외에도 캠핑을 와야 되는 이유는 참 많은 것 같다. 평소에는 사무실, 집에만 있어 절대 몰랐던 초여름의 더위를 오늘 제대로 느꼈다. 자연의 변화를 이제야 눈치채다니 참 무심하게 살아왔다는 걸 알게 된다.
게다가 불멍은 캠핑의 정점이다. 인간은 불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또 솔직해진다. 남편과 불 앞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캠핑이 아니라면 좀처럼 경험하기 힘들다. 그동안 마음에만 담아 놓았던 혹은 너무 사소해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로 밤을 보낸다. 이야기는 계속되고 이글이글 타는 장작을 지켜보며 조금 더 말랑해진 감성을 느낀다.
아마도 더위와 벌레를 핑계로 올여름까지 나는 캠핑을 절대 다시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날씨가 선선해지는 계절이 오면, 캠핑 노래를 부르는 남편의 꾐에 마지못해 응할 것임을 안다.
캠핑을 통해 또 다른 삶을 경험해 볼 준비가 된 그 계절이 그리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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