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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림 Jun 28. 2024

글쓰기가 제일 싫었는데 말이죠

내가 글을 쓰고 있을 거란 상상을 해본 적이 없다

글씨를 이제 막 쓰기 시작했던 7살 때부터 40대가 된 순간까지, 글쓰기와 담을 쌓고 살았다. 

읽는 글은 좋았지만, 쓰는 글은 싫었다. 재능도 없었고 하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었다. 

학교 방학 숙제로 일기를 써오라고 하면 무조건 마지막 날 밤에 몰아서 썼다. 기억이 안 나는 날씨와 한 일들의 조합은, 거짓으로 지어내기도 무리였다. 무려 6년을 가짜 일기를 쓰고, 글쓰기에는 더욱더 정이 떨어졌음은 물론이다. 중학교에 가도 마찬가지였는데, 글을 쓰는 순간은 주관식 시험문제 답변밖에 없었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무려 신문부에 가입했다. 아마도 남녀연합 동아리 모임 때문이었던 것 같다. 불순한 동기만큼 내 기사도 형편없었다. 6개월 만에 그만두며 학창 시절 글쓰기와도 작별을 고했다.


회사원이 되니, 선택의 여지없이 이메일이나 보고서를 써야 했다. 다행히 좋은 템플릿이 있어서 얼추 흉내를 내면 무언가 완성은 된 것처럼 보였다. 글쓰기는 싫었지만 보고서를 쓰고 나서 얻는 성취감은 좋았다. 일과 관련된 쓰기는 내가 알던 글쓰기와는 다른 것 같았다. 그 시기 미쳐 있던 소설이나 자기 계발서를 쓰는 것이 진정한 글쓰기라 믿었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전혀 할 필요도, 여유도 없이 15년이 흘러갔다. 글쓰기는 작가들만의 영역이지 감히 내가 넘볼 수 있는 분야는 아니었다. 책을 읽으면서도 작가들의 삶에 경외감이 들었다. 그들은 다른 행성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우연한 계기로 회사에서 코칭을 받으며 처음으로 나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것도 숙제로. 

하루에 한 줄 감사일기 쓰기가 당시 코치님이 내 준 숙제였다. 바닥을 치던 자존감과 나에 대한 사랑을 감사 일기로 변화시키고자 하셨다. 모범생처럼 숙제를 잘해가던 나는 한 줄 감사일기를 쓰다가 결국 한바덕 글을 쓰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 속에 고여 있던 감정들과 이야기들이 술술 흘러나왔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한 줄 일기 따위가 내 인생을 변화시킨다니 믿기지도 않았다. 그러나 숙제는 꼭 한다는 신념으로 매일 쓰다 보니 무언가 달라졌다. 처음에는 단 하나도 보이지 않던 감사함이, 쓰다 보니 줄줄이 비엔나처럼 쏟아져 나왔다. 이 세상에 감사할 일이 많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감사해야 내 삶이 행복해진 다는 것도 알았다. 


코치님은 나에게 작가가 된 모습을 그려보라 했다. 

글의 적극적인 소비자로 살아왔지만, 반대로 생산자가 된 모습은 전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나 따위가 뭐라고, 작가라니 가당치 않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러나 한편 작가가 되어 다른 사람 앞에서 강연하는 모습을 떠올리니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즐겨 보던 세바시에는 대부분 작가님들이 나와 강연을 했다. 자신의 철학으로 자신의 책을 쓰고, 그 내용으로 강연을 하는 것이다. 평소 존경하던 강연자들이 내가 될 수도 있다니. 말도 안 되는 상상이었고, 또 나를 설레게 하는 상상이었다

그리고 그 상상의 끝에는 감동이 있었다. 코치님의 안내로 조금 더 생생하게 그 모습을 그리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내 안에 이런 마음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 이후의 나의 삶이 극적으로 바뀌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하나 확실한 것은 지금도 계속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글쓰기를 시작한 첫 1년 동안은 혼자 일기를 쓰다가, 다른 욕구가 생겨났다. 내 글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그렇게 재수를 해 브런치 작가가 되니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그동안 일기에 썼던 나의 인생 서사를 한 달 동안 풀어놓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좋아요를 너무 많이 받아서, 출판사에 발탁되면 어떻게 해야 될지 혼자 고민했었는데... 내 글을 읽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게다가 직장인 사춘기 질풍노도 감정을 12편에 나누어 토로하고 나니 더 이상 쓸 소재도 없었다. 다음 글에 대해 혼자 3개월을 방황하다가, 글쓰기 모임에 가입했다. 그게 작년 12월이니, 반강제로 글쓰기의 굴레에 나를 넣어 놓은지 벌써 7개월이 흘렀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자주 글을 쓴다. 그리고 글을 쓰는 내가 좋다. 

글로 유명인이 되지는 않았지만, 나는 글로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 내가 원하던 사람의 모습이 글을 쓰면서 조금 더 그려진다. 이제는 쓰기가 없는 삶은 상상하기 힘들다. 어떤 작가님께서 '안 쓰는 게 이제는 더 어렵다'라고 하셨던 문장이 생각난다. 쓰기는 어느 순간 내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가 되었다. 글은 세상을 보는 나의 눈을 더 넓게 해 주었고, 내 생각을 깊게 만들어 주었다. 글을 막연히 잘 쓰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던 치기 어린 마음은 이제 잠잠해졌다. 조회수, 좋아요, 댓글이 내 글쓰기의 동기가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글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나의 마음을 한 페이지에 정리하고, 기록해 준다.

글을 쓰고 싶은데 용기가 안 나 망설이는 분들이 있다면, 일단 그냥 써보라고 권해 드리고 싶다.

맞다, 적극적인 글쓰기 홍보이자 광고 글이다. 

이렇게 좋은 걸 모든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글쓰기에서 의미를 찾고 재미를 발견할 수 있다 외쳐본다. 나같이 글쓰기를 진짜 싫어하던 사람도, 잘 못써도, 누구나 쓸 수 있다. 아니, 써야만 알 수 있는 세계를 다 같이 즐겼으면 좋겠다.

아! 피라미드 글쓰기 회사라도 차려야 하나. 


#몹글 #몹시쓸모있는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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