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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림 Jul 04. 2024

또또또 욕심만 앞섰네

꿈과 행동 사이의 역설

  먹은 기분이다.

"외국인들끼리 빠른 속도로 말하는데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들리더라고요.  영어 실력에 좌절했어요."라고 구구절절 영어 과외 선생님께 하소연하던 중이었다지난주 글로벌 본사 담당자들과 회의를 하고 충격을 먹어 영어 공부를 이제  시작한 참이다말이 공부지 그냥 뭐라도 해야 될  같아서 과외부터 신청했다강제로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것 같아서다.

수업 시작에 앞서 영어를  공부하는지 물어보시는 선생님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외국인과 유창하게 쏼라쏼라 얘기하고 싶어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고그러고 나서 급한 성격에 참지 못하고 바로 선생님께 물어봤다어떻게 하면 비즈니스 영어를 잘할 수 있을지 알려달라고

선생님은 내 말을 가만히 들으시다가 다시 물어보신다. "영어권에서 자란 아이들을 생각해 보세요. 그 아이들은 과연 처음부터 영어를, 아니 모국어를 잘했을까요?"

간신히 아니라고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니이어서 말씀하셨다아이들이 태어나 말을 엄청나게 잘하기 시작하는 5-6세가 되기까지의 오랜 세월 동안 영어를 듣고 말하는 연습이 있지 않았겠냐고반면수강생인 나는  년이나아니  시간이나 영어에 할애했냐고 물어보신다여기부터는  말이 없어진다그저 화면 너머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이번에도 욕심이 많이 앞섰다.

5-6년을 영어만(한국어를 배재한 듣고 말해도 원어민처럼 말할까 말까 한데, 나는 일주일에 고작 1시간을 투자하며 그들 수준으로 영어를 잘하고 싶다 생각했다굳이 비유하자면 1만 원을 저금해 놓고, 다음  100만 원이 통장 금액에 찍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망상과 비슷하달까?

외국계 회사에 다니며 영어를 자주 접해 별로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했다 1만 원 저금의 시작이다매달 1만 원씩 꼬박꼬박 넣었기 때문에 지금쯤 열어보면 복리가 붙어 뭐라도 되어 있겠지 생각했다회사를 오래 다녔으니 100만 원이 아니라 1000만 원 정도 있을 거라 예상했나 보다. 

한국에 자주 방문하는 글로벌 본사 사람들과 막힘없이 대화하는 수준이라고 생각했는데그렇지 않다는  알았을 때의 배신감아니나에 대한 실망감이 컸다그래서 그들 앞에서 자신 있게 얘기하며 그들만 아는 농담을 해도 웃을  있는 수준으로 빨리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께 소위 '비법'부터 물어봤던 것 같다. 빨리 원하는 목표에 달성할 수 있는 지름길 말이다.


머리로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내 글에도 썼었으니 말이다. 영어를 왜 공부하는지 나만의 정의를 다시 내리라고, 영어에 최대한 노출하고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고. 그러나 조언은 쉽고 행동은 어렵다고 했던가? 막상 내 얘기가 되니 이런 거 다 제치고 '그냥 잘할 수 있는 마법'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욕심이 눈앞을 가렸나 보다. 

영어 선생님의 조언을 듣고 반성하며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자 결심했다. 우선 내가 몇 년 전 중국어를 처음 배웠을 때처럼, 듣는 시간의 절대량을 늘리기 위해 출퇴근 시간을 이용했다. 유튜브에서 "marketing"이라고 검색하고 상위에 나오는 영상을 틀며 퇴근길 운전을 시작했는데, 채 1분도 되지 않아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경험을 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영상은 재생되고 있지만 머릿속은 잡생각으로 가득 차 방금 영상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소리에 집중하려고 하니,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돼서 재미가 없었다. 결국 듣다 말고 검색어를 이것저것 바꾸며 조금이라도 흥미가 생기는 영상을 찾아보았다. 다행히 기존에 내가 관심 있는 주제의 영상은 그나마 내 업인 marketing에 대한 것보다는 잘 들려서 다시 듣기 시작했지만, 한국어 영상에 비해서는 확연히 집중도가 떨어졌다. 


오늘도 출근길에 영어로 된 영상을 찾아봤다.

훨씬 재미난 한국어 영상을 제쳐두고 굳이 영어로 봐야 되나 회의감이 무럭무럭 자라난다. 그러나 이런 마음이 들면 영어 공부 시작도 전에 때려치우고 싶을까 봐 다시 꾹 누른다. 그리고 내가 왜 영어공부를 하기로 했는지 생각해 본다. 아, 외국인이랑 잘 소통하고 싶어서였구나. 내 마음을 읽어보고 소통에 대한 영어 콘텐츠를 찾아봤다. 알고리즘이 추천 영상으로 '빨간 모자 선생님'의 강의를 띄워준다. 유튜브에서 유명하다고 소문으로만 들어본 빨간 모자 선생님이다. 얼마 전에는 영어에 대한 책을 냈는데 몇 주간 종합 베스트셀러 1위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그러나 들어보니 과연, 이라는 탄식이 나왔다. 그는 영어에 진심이다. 영어에 대한 철학이 확고하고 영어를 글로 배우는 것을 지양한다. 어학은 소리를 듣고 그 소리를 내야 되는 것이라고 설파한다. 영어로 사고하고 영어를 습관화하려면 불편함을 감수해야 된다고 한다. 아우, 소름 끼치게 맞는 표현이다.


돌이켜보니 글쓰기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작가님들께서 매번 하시는 말씀 중 하나는 '양질의 전환'이다. 양이 쌓여야 질도 좋아지는 진리. 처음부터 잘 써서 작가가 되는 사람들은 흔치 않을 텐데, 욕심이 앞서면 그 사실도 까맣게 잊어버리곤 한다. 차근차근 시간을, 노력을 쌓아가면 결국 뭐라도 되겠지. 이런 마음이 지금은 글쓰기에 적용되는데, 영어는 또 급하게 잘하려다가 하마터면 체할 뻔했다. 

꿈은? 결국 행동을 통해 완성된다. 그게 무엇이든 지금 바로 행동하자. 오늘의 그리고 내일의 행동으로 내가 원하는 것에 조금씩 다가가는 삶을 살자. (이러다가 갑자기 영어로 글을 쓰는 날이 올지도 ㅎㅎ)


#몹글 #몹시쓸모있는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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