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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림 Jul 01. 2024

빨리빨리의 끝은?

5분도 기다리는 게 힘들다

점심시간이 끝난 오후 1시가 조금 넘은 시간. 회사 여자 화장실은 그야말로 문전성시다.

본격적으로 오후 업무를 하기에 앞서 볼일도 보고, 양치도 하고, 거울을 보며 화장도 살짝 고친다. 동료들과 약속을 하지 않아도 이 시간, 이 장소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다. 평소 업무 시간에 비해 약 3-4배 정도의 혼잡도랄까?

어느 날 점심을 먹고 화장실에 들렀다가 세면대 앞에 늘어선 긴 줄을 맞닥뜨렸다. 양치를 하며 입을 헹구는 사람들과 볼일을 보고 손을 씻는 사람들이 엉켜 있었다. 대기 줄에 합류해 기다리며 세면대에 있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그리고 채 1분도 되지 않아 '답답하다'라고 느꼈다. 

'왜 손을 저렇게 오랫동안 닦는 거지?', '양치를 저렇게 오래 하면 뒷사람들은 어떻게 하라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손을 씻으려 기다리는 중이라 많이 급하지는 않았는데도, 천천히 행동하는 사람들 때문에 조급해졌다. 제발 빨리 씻고 뒷사람에게 양보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 명이 손을 씻는 시간은 10-30초 남짓이었지만,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가끔 김밥이나 샌드위치 등을 포장해서 점심으로 먹는다. 주로 일이 밀려 그날 안에 못 끝낼 것 같은 느낌이 들 때이다. 지금 아니면 회사 밖으로 나가지 않을 것 같아, 일부러라도 음식을 사러 나간다. 그러나 빨리 먹고 빨리 일을 끝내야 하니, 주문하면 바로 포장되는 메뉴를 사곤 했다. 

하루는 매번 먹던 김밥과 샌드위치가 지겨워져, 새로 생긴 샐러드 가게로 향했다. 사진으로 봤을 때 맛있어 보이는 리코타 치즈 샐러드를 주문하면서 살짝 설렜던 것 같다. 결제를 하고 스마트폰을 보며 기다리는데, 계속 기다려도 안 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언제 나오냐고 물어보려다가, 열심히 만들고 있는 직원분의 얼굴을 보니 말이 쏙 들어갔다. 멋쩍어져 다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니 주문한 지 겨우 3분이 지났을 뿐이었다. 15분은 족히 기다렸던 것 같은데, 주관적인 느낌과 실제 소요 시간이 달라 당황스러웠다.


그제야 내 모습이 객관화되어 보이기 시작했다.

비단 화장실과 식당에서만 그런 게 아니었다. 아무도 나에게 빨리 무언가를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는데도, 나는 항상 마음이 급했다. 특히나 회사에서는 그 조급증이 더 심해져 나뿐만 아니라 주변을 힘들게 했던 것 같다.

급하지도 않은 이메일 회신을, 쫓기듯이 빨리 해치워 버린다. 회의 시간에는 빨리 결론을 내려고 유도 질문들을 했고, 그렇게 해도 잘 안되면 그냥 마무리를 해버린 적도 있다. 

그리고 업무 마감시간이 다가오는데 아직 보고를 못 받으면, 참지 못하고 팀원들을 닦달했다. 

"아니, 이 자료 언제까지 잡고 있으려고 아직까지 안 주는 거야? 시간 얼마 안 남은 거 몰라요?" 

팀원들의 속도를 기다려주지 못하고 내 속도를 강요했다. 기다리다 못해 내가 끼어 들어서 일처리를 마무리하거나, 더 빠른 팀원에게 다시 일을 주기도 했다. 그냥, 천천히 사는 사람들이 답답했다. 이렇게 늦게 일을 처리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속마음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웃음으로 막아보곤 했지만, 다들 눈치챘으리라. 


'빨리빨리'는 내 무의식을 지배한 단어가 되어 버렸다.

변화가 빠른 회사에서 살아남으려면 나도 빨리 변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사가 시키는 것을 빨리 알아듣고, 그의 요구에 맞게 빨리 자료를 만든다. 시장과 고객의 움직임을 빨리 파악하고, 여기에 맞는 대책을 빨리 세워야 한다. 생각하기 전에 행동부터 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빨리 반응했다. 몸에 밴 급한 성격 때문에, 일을 빠르게 한다는 칭찬 아닌 칭찬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빨리빨리'의 습관 속에 산 나에게 무엇이 남았는가.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이 말을 머릿속에서는 너무나 잘 이해하면서도, 빠른 속도를 더 추구해 왔다. 팀원들이 방향을 가늠해 보느냐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때, 잘 기다려주지 못했다. 조금 더 빨리 하려고, 많은 희생을 하기도 했다. 개인 시간을 포기하고 일의 시간을 늘렸다. 그러다 보니 개인 시간의 양뿐 아니라 질도 떨어졌다. 가족들과 있더라도 일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차있을 때도 있었다. 더 큰 문제는 나뿐만 아니라, 나와 같이 하는 팀원이나 동료들도 이렇게 해주길 바랐다는 것이다. 

그리고 빨리 하려다 보니, 완성도가 떨어졌다. 실수가 생겼는데도 속도를 내느냐 그냥 넘어간 적도 많다. 가끔 이런 실수들이 치명적인 독으로 다가왔다. 중요한 매출 보고서에 숫자를 틀리게 썼다던지, 고객에게 내보낼 이메일 메시지가 잘못되었다던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속도만을 추구하면 방향성을 잃기 쉽다.

내가 무엇을 위해 속도를 내는지 전혀 모른 채, 그냥 관성에 의해 달린다. 다 같이 달리니, 나도 달리고, 옆의 사람을 제치기 위해 더 빨리 달린다.

그러니 달리기만 하지 말고 잠깐 멈추어 보자. 그리고 생각하자. 나는 왜 달리는가. 이 달리기의 종착점에 무엇이 있기를 바라는가 곰곰이 고민해 보자. 무턱대고 달리던 그 길의 끝은 막다른 골목일 수도 있고, 가끔은 벼랑끝일 때도 있다. 지도를 볼 틈도 없이 그냥 달리면, 고장이 나버린다. 에너지가 고갈되고 더 이상 일어날 힘조차도 없어질 수 있다.


다시 회사 이야기로 돌아와 마무리를 해본다.

잠깐 멈추고 내 속도와 방향성을 설정할 여유가 없다면? 회사에서 시키는 것들이 너무 많고 일이 너무 많다고 느껴질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딱 5분이라도 멈추고 나를 돌아보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속도에 잠식되어 살아가다 허무해질 날이 올 것이니 말이다. 나에게 적절한 속도를 찾고, 그 속도를 낼 원동력을 찾으려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회사 일을 하는 사람도 결국 '나' 자신이지 않은가.

빨리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올바른 방향성과, 그것을 찾기 위한 근본적인 질문이 더 중요하다. 


#몹글 #몹시쓸모있는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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