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할 필요는 없잖아요
당신의 재능은 무엇입니까?
누가 만약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특히나 처음 보는 사람들과의 만남이나 면접에서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당혹스러워 어버버 할 것 같다. 내가 뭘 잘하는지 살면서 크게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설령 너 이거 잘한다고 주위에서 칭찬을 해도 '다 그런 거 아닌가'라는 마음부터 들기에...
재능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재주와 능력'이라고 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재능 있는 사람들이 참 많다. 타고난 손재주로 뭐든 척척 만들어내는 친구도 있고, 일 하나는 죽여주게 잘하는 능력으로 인정받는 동료도 있다. 특히나 SNS를 보면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넘쳐난다. 이들이 메이크업을 하면 거의 변신 수준이고, 노래는 가수 뺨치게 잘 부르며, 붓질 하나로 예술 작품이 탄생하기도 한다. 그들을 지켜보면 부러운 마음과 동시에, 특출 나게 꼽을만한 재능이 없는 나 자신이 변변찮아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너의 재능은 짜장라면을 잘 끓이는 것'이라고 말해주면 어떤 기분이 들 것 같은가?
앞뒤맥락 없이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피식 웃음이 나오거나 혹은 언짢을 수도 있다. 재능이 얼마나 없으면 짜장라면 잘 끓이는 걸 잘한다고 칭찬을 할까 싶겠지. 온라인 세상에서 남들은 악기를 2-3개씩 다루고, 외국어를 유창히 하고, 책을 척척 출간하는 마당에 내가 잘하는 건 더더욱 없어 보일 테니 말이다. 상대방이 설령 진심에서 우러나와 말했을지라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어쩌면 나를 놀리거나 무시한다고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이발소 밑 게임가게'라는 하일권 작가님의 웹툰을 좋아한다.
공부도 체육도 심지어 게임도 잘 못하는 여자 고등학생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웹툰이다. 90년대에 유행했던 레트로 게임에 빠지면서 친구도 사귀고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는 스토리이다. 따스한 그림체와 옛 감성이 폴폴 풍기는 풍경이 정겹다. 새로운 연재분이 올라와 스크롤을 내리며 보는데, 주인공의 친구가 이런 대사를 했다.
"나는 딱히 잘하는 게 없거든. 어렸을 대부터 공부든, 예체능 쪽이든 재능이 전혀 없었어서. 성취감 같은 걸 느껴본 적이 전혀 없어. 근데 남들이 어려워하는 게임을 내가 노력해서 깼을 때 느껴지는 그 특유의 성취감. 나도 뭔가를 이뤘다는 느낌? 뭐 나만 느끼는 작은 성취감이긴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주인공은, 어려운 게임의 마지막 관문을 통과한 친구에게 게임을 잘하는 것도 재능이라 진심으로 칭찬한다. 오히려 자기는 게임마저도 못하는데? 라며 현타가 온 표정이다.
끝을 아쉬워하면서 댓글을 읽는데, 예상치 못한 문장이 있었다.
"미소(주인공 이름)의 재능은 호기심, 애정 어린 시선, 짜장 라면 잘 끓이기"
주인공의 친구가 게임을 하며 작은 성취감을 느끼는 것도 뿌듯하고 아름다웠는데, 이를 지켜보는 주인공에게 해주는 베댓의 응원이 더 좋다고 생각되었다. 주인공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보아야 쓸 수 있는 글이다. 애정 어린 시선이 재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짜장라면 잘 끓이는 게 뭐라고, 호기심은 피곤한 거 아닌가 생각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웹툰의 댓글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재능이 별거인가 뭐.'
크건 작건, 남들이 부러워하건 말건,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이면 되지 않을까. 사회로부터의 잘못된 시선 때문에, 인정욕구 때문에 재능에 대해 나도 모르게 높은 기준을 세웠던 것 같다. 웹툰의 예시에서처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는 특징들이, 그만이 가진 고유한 재능이 되기도 한다.
얼마 전 글쓰기 수업을 하는데 이런 주제를 받았다.
'나의 어떤 성향이나 특징 중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남들은 칭찬하거나 부러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나의 친절함이었다. 단어를 친절로 써서 그렇지, 아주 오래전 학교 선배에게 가식적으로 행동하는 것 같다는 말을 듣고 그 이후부터는 친절이 아닌 가식으로 정의 내려 버렸다. 내가 저 사람한테 잘 보이려고 이렇게 웃으며 말하고 행동하나?라는 생각이 들어 그다음부터는 조심하고 경계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주위에서 '너는 친절하고 배려 깊은 것 같아'라는 말을 듣게 되면서 다시 친절은 가식이 아닌 친절 그 자체로 나에게 의미를 찾아갔다.
웹툰 주인공의 '애정 어린 시선'이 재능이 될 수 있듯이, 나에게는 '친절함'이 그동안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재능인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친절도 부지런해야 되는 것이다. 남들의 표정을 읽고, 남들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하고, 그들의 니즈를 파악해야만 내가 친절하게 행동할 수 있으니 말이다.
지금도 내 재능이 뭔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작은 것부터 찾아보시면 어떨까 숙제를 드리고 싶다. 어쩌면 내 안에 꽁꽁 숨겨져 있을 수도 있고, 남들이 아무리 잘한다 하더라도 나 스스로 인정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봉인해제 하거나 발견하는 방법은,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것이다. 작은 것을 찾아보고, 나 자신에게 잘한다고 살짝쿵 칭찬 한번 해주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데, 셀프 칭찬은 나를 날아다니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니 말이다!!!
#몹글 #몹시쓸모있는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