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오래된 내 친구
이상한 날이다.
예전부터 내가 보러 가자고 노래를 불러도 꿈쩍 안 하던 가족들이, 인사이드 아웃 2를 먼저 보러 가자고 한다. 스릴러나 액션, 좀비 영화 등을 좋아하는 남편과 딸의 취향은 나와는 정반대이다. 그들에게 이 영화는 소위 '어린애들이나 보는' 장르로, 고려 대상이 도기본 적도 없다. 그러나 영화의 인기가 점점 높아지자 생각이 바뀌었나 보다. 엄밀히 말하면 중학생 딸은 결국 친한 친구들과 보러 가긴 했지만, 그래도 가족들이 이 영화를 선정한 것만으로도 기뻤다.
첫 영화 이후 몇 년간 기다렸던 속편이었다. 인상 깊게 봤던 영화였고, 그래서 기대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당시 6살이었던 딸도 재밌게 보고 나서, 같이 캐릭터 놀이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내 남동생이자 눈치 없는 삼촌이 사준 '슬픔이' 인형을 받고, 자기가 원하던 캐릭터가 아니라며 엉엉 울었던 귀여운 추억도 있다.
남편과 오랜만에 극장에서 데이트를 하며, 고대하던 영화를 봤다.
그러나 보는 내내 마음이 이상하다. 재미와 추억과 신선함을 기대하며 보는데, 그것보다 더 큰 느낌이 나를 지배했다. 그 이상한 감정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불편함'이었다. 특히 '불안이(anxiety)'가 주인공을 컨트롤하는 장면에서는 거북한 감정이 훅 하고 치밀어 올라왔다. 주인공이 더 잘하려고 애를 쓸 때마다 불안이는 어김없이 등장했다. 만약 내일의 경기를 내가 망치면 어쩌지, 주장에게 잘못 보이면 어쩌지, 새로운 고등학교에 가서 친구가 없으면 어쩌지... 등등의 걱정과 초조함이 주인공을 잠 못 들고 계속 움직이게 했다. 더 잘하려고 애쓰며 노력하는 주인공의 스토리를 따라가며 영화를 보는 나에게도, 그 감정은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아니, 그 감정을 느끼는 주인공을 보는 것 자체가 힘들 정도로 나에게 오는 파장이 더 컸다.
아이들도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 한 편으로, 이런 불편한 감정이 생길 줄 몰랐다.
그래서 당황했고 어떤 장면에서는 눈을 감고 싶었다. 딸아이와 똑같은 나이의 주인공의 특정 감정에 왜 이리 몰입이 되었을까. 불안 말고도 까칠, 부럽 등 많은 감정들의 캐릭터로 사춘기 아이들의 변화를 정말 잘 표현했다고 머리로는 생각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자꾸만 다른 느낌이 들었다. 불안하다, 불편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불안'은 나와 거의 평생을 함께한 감정이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막연한 두려움과 초조함은 계속 나를 따라다녔다. 아니, 지금도 나와 같이 존재한다.
직장인이 돼서도 이런 나의 성향은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 내가 맡은 일이 잘 안 될까 봐 걱정하는 것이 버릇이었다. 내일 발표를 망치면 어떡할까, 고객 앞에서 한 마디도 못하고 어버버 되면 어떡할까 불안해했다. 아무도 나에게 더 잘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스스로 다그쳤다.
완벽주의자를 자처하며 더 잘하도록 스스로를 밀어붙였다. 처음에는 인정욕구 때문에 그런가 싶었는데, 이것도 계속하다 보니 인정욕구를 넘어선 것 같았다. 불안하니까 그 불안한 감정을 없애기 위해 더 잘하려고 애쓴 것이다. 그리고 인사이드 아웃 2를 보며, 애써 묻어 놓은 마음속 나의 불안함이 슬며시 고개를 들고일어났다. 나를 직면하기 어려웠는데 영화를 보니 마치 불안한 내 모습을 거울로 보는 것 같았다. 영화 주인공이 저 멀리로 쏘아 올린 감정의 구슬들처럼, 나도 저 멀리 미뤄 놓았던 감정이었다.
이제는 괜찮다, 나는 불안하지 않다 생각했는데 그 감정들이 영화의 한 장면으로 마구 되살아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딸과 친구들이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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