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이 없는 1시간을 경험하다
지난 주말에는 갑자기 쏟아지는 비로 남편의 모든 야외 활동이 취소되었다. 자전거 동호회의 성수기는 여름으로, 아침 반나절 타는 것으로만은 부족한지 종종 지방으로 원정 라이딩을 가고는 했다. 이번에도 강원도인지 충청도인지 어딘가를 가서 자전거를 탈 생각에 신나 했는데, 비가 발목을 잡았다. 그리고 주말 계획이 사라진 남편은 오랜만에 주말을 나와 보내겠다며 아침부터 부산을 떤다. 별건 아니었고 내가 토요일마다 들리는 한의원과 마트에 데려다준다며 운전기사를 자처했다. 나야 운전이나 주차를 안 해도 되니 옳다구나 하고 따라나섰다.
아침부터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부리나케 우산을 챙겨 차에서 내리면서, 한의원 진료가 끝나면 만나자 약속했다. 진료 대기를 걸고 의자에 앉아 당연한 듯 스마트폰을 꺼내 확인하려는데, 아뿔싸. 남편 차에 두고 내린 것 같다. 간호원 분에게 양해를 구하고 한의원 전화기로 남편에게 전화를 거니, 다른 목적지로 이미 향하고 있다며 한 시간 후에 보자고 한다.
이때부터 예상치 못한 디지털 디톡스 챌린지가 시작되었다.
가방을 보니 다행히 책 한 권이 있었다. 글쓰기 모임 작가님께서 추천해 주신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사놓고 표지만 쳐다본 지 일주일 째였다. 평소에는 스마트폰을 더 가까이 두고 사느냐 선뜻 책에 손이 안 갔는데, 차라리 잘됐다 싶어 병원 대기실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디지털 기기들이 없는 세상에서는 집중이 훨씬 잘되야 하는데 머릿속에 잡념들이 둥둥 떠다닌다. 한 줄을 읽고 나서 다음 줄로 넘어가기 전에 버퍼링이 걸린다. 내가 지금 뭘 읽은 거지? 방금 읽은 글자들과 어제 회사에서 있었던 일의 잔상들이 뒤죽박죽 섞인다. 그러다가 지금 스마트폰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살짝 불안감도 올라오기 시작한다. 누가 나한테 급하게 연락하면 어떡하나, 평소 바쁘다는 핑계로 잘 못 보던 다른 작가님들 글에 댓글도 달아야 하는데. 카톡도 보고 웹툰도 보고 싶은데 내 손에는 스마트폰 대신 책이 들려져 있으니 이질감이 든다.
그러다가 이내, 한 몸과도 같이 생활했던 스마트폰이 내 곁에 없음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래, 어쩔 수 없어. 지금 추구할 수 있는 가장 큰 재미는 바로 독서거든.'
스마트폰이 주던 즉흥적이고 강렬한 자극에 얼마나 물들어 있었는가 깨달았다. 책에 그리 집중은 잘 되지 지않았지만 주변을 둘러봐도 긴 대기 시간 스마트폰 대신 차선책으로 즐길 수 있는 것은 내가 가져온 책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다시 책을 펼쳐 표시해 둔 다음 줄을 읽기 시작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마음가짐이 달라져서 그런가 아니면 적응이 돼서 그런가, 아까보다 술술 잘 읽힌다. 책에 대해 이런 관점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작가님의 생각의 깊이에 감탄하며 읽어 내려갔다.
"OOO님,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호출을 받고 들어간 침대에 누워서도 책을 계속 읽었다. 솔직히 유튜브나 웹툰처럼 엄청나게 재미나지는 않았지만, 한 번 제대로 읽기 시작하니 멈출 수가 없었다.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가 궁금했고, 작가님의 생각과 같거나 혹은 다른 내 생각을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곧이어 들어온 한의사님은 손에 책이 들린 나를 보고 흠칫 놀라셨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 보이던 나의 원래 포즈는, 누워서도 열심히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거의 디지털 중독자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손에 침을 맞을 때만 제외하고는 누워 있던 엎드려 있던, 치료 중간에도 마치 한 몸처럼 스마트폰을 지니고 다녔었다. 그러나 이날만큼은 치료가 끝날 때까지 책을 놓지 않았다.
진료를 마치고 다시 남편을 기다리는데, 지금 이 순간의 느낌을 빨리 브런치 메모장에 기록해 놓고 싶었다. 내 자유 의지로 스마트폰이 없는 삶을 얼마나 살겠나 싶어서였다. 비록 한 시간 남짓한 짧은 시간이지만 느낀 점이 많았다. 눈앞에 활자가 있는데도 집중하지 못한 나 자신을 느꼈고, 독서가 아니라 명상을 한다면 처음에는 얼마나 집중이 잘 안 될지 상상이 되었다. 디지털 기기 없이 살아 보니 불편하긴 하지만 평소 스마트폰에게 빼앗겼던 나의 관심사를 다시 나 자신으로 돌릴 수 있어 좋기도 했다. 눈앞에 펼쳐지는 콘텐츠를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생각 없이 계속 다음 콘텐츠를 넘기게 되는데, 책을 읽으니 잠깐씩 멈추고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더 나아가 내 주위의 사람들, 그들을 둘러싼 세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어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스쳐 지나갈 나의 이런 생각들을 빨리 기록하고 저장해야 하는데, 내 손에는 스마트폰이 없었다.
간호사분께 메모지와 펜을 빌려 간단한 단어만 나열해 본다. 얼마만의 손글씨인가. 책 위에 메모지를 올려놓고 생각들을 써 내려가는데 마치 중세 시대에 태어나 편지를 쓴다면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데리러 왔고, 나의 디톡스 체험기는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끝났다. 바로바로 카톡으로 연락하고 앱도 들락날락거리고 싶은 마음이 시간이 지날수록 잠잠해지는 게 신기했다.
지금도 잘은 모르겠다. 일주일이나 격리된 채 살 수 있을지는. 스마트폰을 강제로 못 썼던 한 시간 조차도 불쑥불쑥 연결하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은 알 것 같다. 왜 디지털 디톡스가 우리에게 필요한지 말이다. 일주일은 못할지라도, 하루에 10분 정도는 해볼까 살짝 생각을 하며 오늘을 시작해 본다.
#몹글 #몹시쓸모있는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