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채로운 사람이고 싶다
아무 옷이나 사줘도 생각 없이 입었던 유아기를 지나, 샤랄라 공주옷을 선호했던 6살 딸의 모습은 정말 찰나의 순간으로 지나갔다. 초등학교 때는 청바지에 꽂혀 온갖 종류의 진을 사준 적도 있고, 티셔츠는 꼭 루주핏을 선호해 나보다 더 큰 옷을 입었던 적도 있다.
당시에는 딸의 취향 변화 속도가 빨라 잘 몰랐지만 다양한 옷을 사준 것도 하나의 기쁨이었겠구나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요즘 그녀의 옷에 대한 기준은 딱 1가지, 무채색이라는 조건만 남았기 때문이다.
혹시 길을 가다가 청소년 무리들을 유심히 관찰한 적이 있는가?
남편과 동네 산책을 하는데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우르르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남편과 나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 딸만 그런 거 아니네."
어쩜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모두 딱 3가지 색의 옷을 입고 있었다. 검은색, 회색, 흰색. 그중에서도 검은색의 비율이 가장 많았고, 그 색깔도 운동복의 패션으로 완성되었다. 예를 들어 5명이 걸어간다고 하면 검은색을 하나라도 걸친 아이들은 4명이고, 안에 흰색 반팔티를 입거나 가끔 회색 운동복 바지를 입는 식이었다. 혹시나 우리 동네 아이들만 그런가 싶어 그다음부터 유심히 길거리에서 아이들을 관찰했는데, 교복이나 체육복 빼고 무채색의 컬러 코드를 벗어난 적은 거의 없었다. 특히나 단체로 다니는 아이들의 경우 이 현상이 더 심하게 나타났다.
올블랙 패션으로 다니는 아이들을 보며 왜 그렇게 입을까 생각해 봤다. 과학적인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 청소년기가 되어 더 중요해진 친구들이라는 존재 때문이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혼란스러운 청소년기 점점 더 흑화 되는 그들의 내면을 표현하는 색으로는 검정, 회색만큼 찰떡인 색도 없으리라. 게다가 한 명이 그렇게 입으면 덩달아 따라 입는 비율도 청소년이 가장 높은 것 같다. 친구들과의 동질감과 소속감을 옷 색으로 표현한달까.
딸아이와 또래 아이들을 보며 다른 생각에 잠긴다. 그들의 컬러 코드는 무채색이라면 나는 어떤 색으로 표현되는 사람일까. 개인적 취향으로 연두색과 초록색을 좋아해서, 비슷한 느낌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나에게 연두색은 추운 겨울을 이겨낸 새싹의 싱그러움을 나타내는 색이고, 초록색은 넘실거리는 오월의 신록을 상징한다. 두 가지 모두 봄과 생명력, 성장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선명한 초록색 옷을 즐겨 입는 나에게 가끔 친한 동료들은 솔직하게 얘기해 준다. 초록색 옷을 회사에서도 이렇게 입는 사람은 처음 봤다며. 어제도 초록색 줄무늬 티셔츠를 입고 온걸 보니 그 말도 맞는 것 같다.
아니 그런데, 나를 초록색이나 연두색으로만 표현하자니 무언가 부족한 것 같다.
밝고 활기찬 날의 나는 주황색이고 싶고, 기분이 울적해지는 날은 회색이 되기도 한다. 긴장되고 불안한 순간에는 짙은 자줏빛을 띄기도 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은 날에는 무지개색의 기분이 든다.
나는 때로는 강렬한 채도로 분명하게 나를 표현하고 싶기도 하고, 또 다른 어떤 날에는 한없이 잔잔한 파스텔톤으로 비치고 싶기도 하다.
이런 내 마음을 글로 적다 보니 한 마디로 정리가 되는 기분이다.
어렸을 때 크레파스나 색연필을 사면 학생이라는 한계 때문에 최대 24색이 전부였다. 모든 게 부족하던 시절이었고 더 좋은 건 미대를 준비하는 사람들이나 가질 수 있는 사치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나 더 많은 색을 갈구했던 사람이다. 24색 사이에 있는 그 수많은 색상들을 가져보고 싶었다. 빨강과 주황 사이에는 10가지도 넘는 색이 있을 수 있는데 그냥 빨강 혹은 주황이라는 이름으로 묶이는 게 싫었다. 같은 빨강이라도 미묘하게 다른 차이를 느끼고 사용하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그 소망은 딸을 통해 풀기는 했다. 아이는 전혀 필요 없다고 했지만 72색 색연필을 사서 아이의 책상에 놔두고 대리 만족을 했다. 나중엔 72색도 성에 안 차 156색으로 확장하기도 했다. 아이는 색연필을 잘 열어보지도 않아 엄마의 잘못된 욕망 투여를 반성하기도 했지만, 결국 엄마인 나는 큰 만족감을 얻었다. 수국 꽃잎 하나를 그리더라도 연한 하늘색과 보라색에 더 가까운 파란색, 그리고 살짝 옅은 노란색을 섞어 가며 그리니 표현이 잘 되는 것 같았다. 미술 도구의 좋고 나쁨을 떠나 여러 가지 색상이 있으니 섬세한 내 감정과 느낌을 잘 나타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나의 가장 큰 표현 수단은 바로 글이다. 꾸준히 글을 쓰면서 때로는 매일 똑같은 얘기만 똑같이 쓰는 것 같아 고민했다. 그러다 색깔에 대한 생각을 하며, 나는 글을 통해 조금씩 미묘하고 섬세하게 바뀌는 나의 색을 잘 표현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 어제가 진한 청록색이었다면 오늘은 조금 더 가벼운 초록색으로 표현하듯이 얼마든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겠다 생각해 본다.
#몹글 #몹시쓸모있는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