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풀림 Aug 19. 2024

낀세대 꼰대의 고민

세대 차이일까 생각 차이일까

얼마 전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A팀에서는 일주일 전 B팀에게 이메일로 업무 협조 요청을 보냈다. A팀의 업무 특성상 여러 팀과 협업을 하고 있던 터라 그다지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우리 부서는 B2B(Business to Business - 기업과 기업 사이의 거래)를 주로 하고 있고, 속한 산업군과 비즈니스 특성상 내부 업무 협조가 유기적으로 진행되어야만 고객사와의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다. 그래서 A팀, B팀뿐 아니라 다른 팀도 독립적으로 일하다가도, 필요에 따라 지속적으로 여러 팀과 업무 도움을 주고받는다.

그런데 이렇게 일상적인 업무 협조를 받은 B팀에서 갑자기 A팀에게 화를 내는 사건이 발생했다. 메일 참조자로 지켜보고 있던 나조차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메일로만 봤을 때는 평범한 업무 요청이라 이게 왜 화가 날 일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다른 동료들을 통해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내용이 문제가 아니었다.

B팀에서 가장 화가 난 부분은 바로 '소통 방식'이었다. 이메일에는 'OO까지 피드백을 부탁드립니다. 만약 OO까지 답변이 없다면 저희가 제안한 방식대로 처리하겠습니다.'라는 느낌의 문장이 적혀 있었다. A팀에서는 제시한 기한까지 B팀의 답이 없자 이메일 내용대로 처리하겠다고 다시 메일을 보냈고, 그 메일을 뒤늦게 확인한 B팀에서 갑자기 폭발한 것이다. 

기존의 비슷한 업무에 대한 협조 방법은 보통 '만나서 설명하기'였다. 따로 회의를 잡은 후, 이런 사유로 이렇게 업무를 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상대방의 생각을 묻는다. 여기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은 다음 결론을 같이 정하는 형식이다. 만약 외근 일정 등으로 만남이 힘들다면, 전화로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상대방이 반대를 하면 왜 그런지 물어보고, 같이 해결책을 마련한다. 이렇게 협의된 내용을 그제야 이메일로 기록을 남기고 형식상의 '알겠습니다'라는 느낌의 회신을 한다. 이메일은 거들뿐이지 이미 논의가 완료된 내용이라 서로 충돌이 일어날 건덕지가 없다. 


당연히 전(前) 설명, 후(後) 이메일을 예상하고 기대했던 B팀은, 반대의 방식에 당황을 넘어 분노의 감정을 느낀 것 같다. 마치 그 메일이 업무 협조가 아니라 업무 통보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우리 부서는 이렇게 할 테니, 혹시 다른 의견 있으면 주고 그렇지 않으면 이 방식으로 하겠다는 통지 말이다.  

반대로 A팀의 입장을 들어보니 효율적인 업무를 위해 이메일을 고심해서 쓰고 최대한 내용을 잘 정리해서 보낸 것이라고 한다. 당연히 B팀을 화나게 할 목적은 아니었다. 이메일로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내용이고, 회사를 다니는 모든 사람들은 이메일을 자주 보니 피드백도 이메일로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다. 만나거나 전화로 말하는 시간을 아끼고 보다 정돈된 내용을 이메일에 적는다면 소통에 오해가 없을 것이라 예상했다. 이 소통 방식 때문에 다른 팀이 화가 났다는 것을 A팀에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A팀이 기존과 다르게 최근 이메일 소통을 주 채널로 선택한 이유를 생각해 보니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세대교체. 부서 이동과 조직 개편으로 주 팀원 구성이 Z세대(Generation Z)로 변경된 것이다. 기존 A팀에서는 M세대의 팀장급이 다른 팀들과 주로 대면 소통을 하고, Z세대의 팀원에게는 결정된 업무를 지시했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협업의 주최가 된 Z세대가 대면 소통이 아닌 다른 방식의 소통을 선택한 것이다. 타 팀들은 대부분 M세대 혹은 그 이상의 연령대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Z세대의 새로운 소통 방식과 충돌을 일으켰다. 대면 소통을 통해 배경 및 맥락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먼저 해주길 바랐다. 주요 의사 결정자로서 자신의 의견을 먼저 들어주기를 원했다. 이메일로 소통하면 할 말을 다 할 수 없고, 놓치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했다. 반면 Z 세대는 이런 대면 소통 과정이 정말 필요한 것인지 질문했다. 만약 이메일을 읽고 이해가 안 된다면 회신 메일로 다시 묻는다거나, 반대 의견이 있다면 그 역시 이메일로도 가능하다 생각했다. 그것조차 힘들다면 회사 메신저도 있지 않은가 되물었다.


낀세대이자 꼰대에 더 가까운 나는 고민이 된다.

B팀에서 이야기하는 소통 방식이 그들뿐 아니라 나도 이 부서에서 계속해온 방식이다. 고맥락 문화에서 나도 이해하고 남도 이해시키려면 대면 소통이 필수적이었다. 이메일로 보내면 왜인지 모르게 계속 오해를 낳는 일이 생겼다. 이메일을 보내고도 수습을 하기 위해서 전화를 돌리고 회의를 다시 잡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A팀에서 생각하는 소통 방식이 결코 잘못된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도 한다. 불필요한 대면 소통의 시간만 줄여도, 업무 효율이 올라갈 것이다. 이메일로 최대한 우리 팀의 입장을 잘 정리하고 이렇게 추진하려는 이유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한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그것을 제대로 안 보고 오해하는 상대방이 오히려 이상한 한 것 아닐까. 

하지만 A팀에서 소통하는 다른 부서 사람들은 대부분 대면 소통에 익숙하고, 그 방식을 선호하다 보니 사소한 것들이 문제로 불거진다.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린가. 아니, 이건 양분법적 사고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이해와 양보가 있어야 풀 수 있을 것 같다. 


얼마 전 팀원과 사담을 나누다 우리 팀은 연령대 상관없이 모두 꼰대라는 농담이 나왔다. 

연령과 직급상 꼰대에 더 가까운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30대 팀원이 왜 스스로를 꼰대라고 부를까. 몇 명 되지 않는 우리 팀은, 내가 시키거나 혹은 나의 상사가 시키는 일들에 웬만하면 'Yes'라고 대답한다. 왜 이 업무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위에서 시키면 어쩔 수 없이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를 피해 가는 방법은 퇴사뿐이라는 자조 섞인 말장난을 하며 말이다. 이메일 소통을 더 잘할 수 있고 문서로 무언가를 보여주는 것에 최적화되어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선호하는 소통 방식에 맞춘다. 연령을 떠나 윗사람들의 지시 업무에는 윗사람들의 소통 방식으로 일을 해야 한다고 비슷하게 생각하다 보니, 팀 내에서는 업무 하는데 큰 이슈가 없었다. 어떤 소통 방식이 더 낫다는 것은 어찌 보면 주관적 선택의 문제인 것 같다. 내가 해보고 더 효율적인 방법을 택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런 면에서 우리 팀은 다른 팀을 설득하고 그들의 행동을 이끌어내야 하는 업무를 주로 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기존의 방법을 계속할 것 같다.


 A팀과 B팀의 일화에 대해 팀원들과 이야기를 같이 나눈 적이 있다. 이때 나온 단어 중 하나는 '낀세대'이다. 양쪽의 입장을 들어보면 모두 이해되는데, 이런 상황에서 양쪽의 생각을 조율하고 이해시키며 일을 해야 되면 낀세대가 아닌가 싶어서다. 

나도 선배들이 일한 방식이 소름 끼치도록 싫을 때가 많아 이를 답습하지 않겠다 생각한다. 그러나 낀세대로서 기존 세대에게 '당장 내일까지 이 업무를 하라'는 지시를 받는 상황에 새로운 세대에게 일을 아예 안 시킬 자신은 없다. 내일까지 하라는데 일일이 이걸 왜 해야 되는지 설명하고 설득하고 이 일의 중요성과 비전을 말할 확신도 없고... 누군가 쓴 글에서, 낀세대는 양쪽을 이해시키는 문화사절단이라는 문구를 읽었다. 꽤나 그럴듯한 문장이라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문화사절단 역할을 하다 보면 너무 힘들어 사절단이 아니라 나부터 사달날 것 같은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왜 서로를 이해 못 하는지 답답하고 제발 자기들끼리 직접 해결했으면 좋겠다 생각한다.  


차리리 내가 낀세대가 아니라면, 꼰대 마인드를 갖고 있지 않다면 고민이 덜했으려나.

기존 세대와 새로운 세대의 갈등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다만 그것을 보는 시선이 이해의 시선이냐 혹은 질타의 시선이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세대 간의 다름 뿐 아니라 개인의 다양함과 다름을 인정하는 문화, 그리고 개인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몹글 #몹시쓸모있는글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