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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림 Aug 26. 2024

결코 가볍지 않은, 일에 대한 열정과 무게

왜 다르게 느낄까

평소와 다른 느낌이 팍팍 온다.

팀원들의 중간평가 시즌, 일대일 면담을 하는 중이었다. 평소 의욕이 넘쳐흐르고 긍정적이던 팀원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인데  웬걸, 미팅시간 초반이 회사에서 일어난 사건들로만 채워졌다. 누군가의 퇴사 소식, 공평하지 않은 평가 기준, 근거 없는 조직개편 뉴스 등 여러 가지가 언급되었다. 이런 이야기만 듣다가 오늘의 미팅이 끝나버릴 것 같아 질문을 건네본다. 

"요즘 평소와 다르게 얼굴이 어두워 보이던데 혹시 이런 소식들 때문이었어요?"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고 대답한다. 무언가를 해보려고 시도해도, 잘못된 조직문화 때문에,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에 의욕이 절로 꺾인다고 했다. 한편으로는 그들의 대답이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이 겪는 우울감이 주변 상황 때문이라는 것이 안타까웠다. 내 의아함이 전달되었는지 팀원들은 여기에 덧붙여 설명을 잇는다.

"회사에 대한, 일에 대한 애정이 많아서 영향을 더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열정이 없다면 이렇게 실망할 일도 없을 것 같아요. 그냥 입 다물고 내 일 아니다고 했을 거니깐요"


듣고 보니 하나같이 맞는 말이다.

이런 팀원들의 깊은 마음도 모르고, 잔소리부터 한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스트레스 관리를 잘해야 된다는 둥, 일과 나를 분리하지 않으면 힘들어진다는 둥 말이다. 생각해 보니 내가 요즘 이런 회사 뉴스에 덜 영향받는 이유는, 일에 대한 열정이 점점 사그라들었기 때문이다. 이 일이 내 일이 아니다는 생각이 들고, 자꾸만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에 관심이 더 많아서이다. 

반면 팀원들은 지금의 일에 그야말로 진심이다.

A만 해도 될 걸 여기에 덧붙여 아이디어를 마구 쏟아낸다. B, C 뿐만 아니라 Z까지 가면 종종 감당이 안 돼 제발 그만하자고 얘기를 꺼내는 건 늘 팀장인 나였다. 팀원들의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일에 그대로 투영되는 것이다. 아직 부족하다 생각해서 내 시간과 돈을 들여 일과 관련된 공부를 계속해나가곤 한다. 그러나 일의 결과가 생각만큼 나오지 않아 실망도 하고, 좌절도 한다. 어디 결과뿐이랴. 누가 퇴사한다고 하면 그 사람과 잘 협업해 같이 해보려고 했던 프로젝트가 끝나 버리니 충격이 크다. 퇴사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조직 문화와 일이 본인과 맞지 않는다고 하니, 남아 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나의 일과 길이 맞는지 다시 고민하게 된다. 새로운 조직 개편이 자신의 일과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걱정되고 불안해진다. 


일에 대한 열정과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종종 일의 결과만 보고, 팀원들에게 잘 못한다며 비판하거나 나무라지 말아야겠다. 그들이 가진 일에 대한 진심은 나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때로는 일에 대한 무게가 너무 커 일을 하다가도 가끔 멈출 때가 있다. 책임감이 그 사람을 잠식해, 부정적으로 보일 때도 있다. 뭘 해도 안된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 일을 망칠까 봐 두려워서일 수도 있다. 일을 대충 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그건 표면적인 것이다. 모두의 내면에는 '더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자리한다는 알고 있어야 한다. 

하루의 삼분의 일을, 아니 때로는 그 이상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 직장이다. 그리고 그 직장에서 작정하고 나는 일하기 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대부분의 회사원들은 일에 진심이기 때문에, 주변에서 벌어지는 작은 사건들에도 요동치고 분노하며 영향을 많이 받는 거라 생각한다. 팀원들이 현재 겪고 있는 우울감이 안타깝긴 했지만, 그들이 가진 일과 회사에 대한 열정을 알게 되어 한편으로는 감사했다. 그리고 지금 느끼는 좌절감을 더 이상 겪지 않도록, 팀장인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먹고살기 위해 일한다,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일한다, 그만두지 못해 일한다는 표현 뒤에 숨어있는 의미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잘 해내고 싶다는 것과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누군가의 일하는 태도와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한다. 일을 잘해보고 싶어 하는 그 무게와 열정을 동료인 내가, 상사이자 부하직원인 내가 알아준다면 상대방은 수용받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다. 아니, 우선 나부터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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